[다시 만날 내일]“곧 재개발 되는데”…세 살 딸 기다리며 47년을 지킨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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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기다리는 어머니의 간절함
우리가 놓친 한 장의 사진이 가족을 만날 수 있다

1979년 10월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당시 만 3세였던 정경진 양이 사라졌다. 실종 당시 정 양은 보라색 멜빵바지와 분홍색 상의를 입고 있었으며, 발에는 어머니의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정 양 가족은 당시 제기동의 2층집으로 막 이사한 상태였다. 새집을 마음에 들어 했던 정 양은 평소 1층과 2층을 자유롭게 오갔고, 1층 안채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와 거의 매일 어울려 놀았다.
실종 당일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1층에서 친구와 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뒤 잠시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약 30~60분 뒤 다시 내려왔을 때 정 양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함께 놀던 친구의 어머니도 정 양이 놀다가 2층 집으로 올라간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정 양은 집에도, 주변에도 없었다. 그렇게 잠깐의 사이에 사라진 세 살 아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어떻게 자랐는지만이라도…” 수십 년째 딸을 기다리는 어머니

딸이 사라진 뒤 어머니의 삶은 정 양을 찾는 일과 함께 흘러갔다. 길을 걷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보이면 혹시 경진이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뒤를 따라가 얼굴을 확인했고, 딸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 싶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번번이 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느꼈던 심정을 두고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딸을 찾는 동시에 가족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다. 당시 남편은 건강이 좋지 않았고, 집에는 어린 아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생활전선에 뛰어든 뒤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정 양을 찾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남은 아들에게 충분히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오랫동안 품고 살아왔다. 어머니는 “산 사람은 목숨이 주어진 대로 살아지더라. 아들에게는 미안하다. 생활전선에 뛰어들고 경진이 찾으러 다니느라…”라고 말했다.
딸이 언젠가는 돌아올 수 있다는 마음에 실종 이후 수십 년 동안 제기동을 쉽게 떠나지도 못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탓에 이제 만나더라도 처음에는 서로 서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남아 있다. 딸을 다시 만나 그동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실종되지 않았다면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지 생각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어머니에게 정 양은 여전히 세 살 무렵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부모가 아이를 찾듯, 아이도 부모를 찾고 있다

장기실종 사건에서 기다리는 쪽이 언제나 부모인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헤어진 뒤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실종아동 가운데에는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의 부모와 가족을 직접 찾아 나서는 이들도 있다.
아주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졌다면 부모의 얼굴이나 이름, 살던 동네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가족과 헤어진 사정을 뒤늦게 알게 되거나, 성인이 된 뒤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가족 찾기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어느 한쪽에서는 부모가 수십 년 동안 어린 시절의 얼굴을 기억하며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같은 시간 다른 한쪽에서는 성장한 아이가 희미하게 남은 기억과 단서를 붙잡고 부모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오래 흘렀다고 해서 가족을 찾는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찾고 있으면서도 연결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보내고 있을 가능성 역시 남아 있다.
한 번 더 눈여겨본 얼굴이 가족을 이어줄 수 있다
장기실종아동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창한 행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종아동의 사진과 이름, 실종 당시 정보를 한 번 더 눈여겨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오래전 기억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관심도 중요하다.
수십 년이 지나 어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달라졌더라도 실종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의 제보나 작은 단서 하나가 가족을 다시 연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사라진 아이를 기다리고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잃어버린 부모와 가족을 찾고 있을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칠 사진 한 장과 이름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찾아 헤맨 가족으로 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위키트리도 실종아동과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에 함께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실종아동의 얼굴과 사연을 기억하고, 작은 단서 하나라도 지나치지 않도록 이들의 이야기를 지속해서 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