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33살. 알 거 다 아는 나이”…하영 공개적으로 저격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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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세 성인의 책임, 검증 없는 가족사 자랑이 부른 역사 논란

배우 하영의 증조부 고 안상호의 친일 행적을 두고 공개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인물이 있다. 바로 역사강사 배기성이다. 하영이 방송에서 밝힌 가족사가 논란으로 번진 지 며칠이 지났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확산하는 모양새다.

증조부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 / 뉴스1
증조부 친일 논란에 휩싸인 배우 하영. / 뉴스1

발단은 방송에서 나온 가족 자랑

하영은 지난 7일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한 뒤 한양에서 양의원을 열고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는 내용의 가족사를 소개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의사 안상호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의 과거 행적이 하나둘 재조명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하영 측은 처음에는 관련 의혹을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추가 확인을 거친 뒤 입장을 정정했다.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답변해 혼란을 줬다며 사과했다.

배기성 "알 거 다 아는 나이"

12일 오후 공개된 '최욱의 매불쇼'에서 배기성은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을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안상호가 속했던 대정실업친목회에 대해 고문이 이완용이고 회장이 민영기였다고 소개하며, 일제가 식민지배에 순응하는 여론을 형성하고 산업 진흥을 명분으로 이 단체 설립을 인가했다고 설명했다.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인 상류층 친일 단체로 성격이 바뀌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배기성은 하영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도 이어갔다. 그는 하영의 나이가 33세라는 점을 언급하며 "알 거 다 아는 사람이다. 어려서 그런 게 아니다. 나와서 할아버지 이야기 한 건 자기 책임이다"라고 말했다.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인터넷을 조금만 살펴봐도 관련 기사가 여럿 나오는데 그런 확인 절차 없이 집안이 4대째 의사였다는 식으로 방송에서 이야기한 것은 진실을 알았다면 부끄러워서라도 하지 못했을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역사강사 배기성. / 유튜브 '매불패밀리'
역사강사 배기성. / 유튜브 '매불패밀리'

안상호의 구체적 행적

배기성은 안상호가 일본 유학 후 조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1919년 1월 21일 고종이 쓰러진 뒤 서양의학을 배운 안상호가 왕진에 나섰는데, 그 이후 3시간 동안 일어난 일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으며 이 과정에서 안상호가 고종 독살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1909년 이재명 의사에게 저격당한 이완용을 살려낸 6명의 의사 중 한명이 안상호였고, 그가 이완용의 회복을 도운 인물이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안상호가 이런 행적에도 불구하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사전이 관직과 경제인 위주로 작성됐기 때문이라는 게 배기성의 설명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문제"

배기성은 하영이 방송에서 밝힌 가족사가 집안에서 좋은 쪽으로만 전해졌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친일파 강의를 하면서 늘 느끼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가 고종 황제를 진단했고 조선 최초의 양의원을 세웠다는 이야기만 반복되면 어린 세대는 나라를 팔아먹은 행위조차 그저 당시 전문직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지적이다.

배우 하영. / 뉴스1
배우 하영. /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등재는 아니지만 친일파 맞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처장은 13일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과 인터뷰에서 안상호의 친일 행적은 팩트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그는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한 뒤 경성에서 일제가 연 추모대회 준비위원회에 안상호의 이름이 올라갔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안상호가 조선총독부 총독 자문기구 성격의 경성부협의회 의원이었고, 항일 운동을 방해하며 조선을 일본에 완전히 통합하려는 내선융화 정책을 뒷받침한 친일 단체 동민회에도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일본의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해 피해를 끼친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이 등재돼 있다. 방 사무처장은 안상호가 등재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인명사전은 개인 집필자의 주관이 담기는 평전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1차 사료만으로 등재하는 자료이며, 친일 행위의 적극성과 지속성·반복성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안상호는 당시 활동한 다른 친일·반민족 행위자에 비해 적극성과 반복성이 다소 떨어져 등재 기준에는 맞지 않았지만, 친일 행적 자체는 팩트로 계속 확인되고 있어 친일파가 맞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하영. / 뉴스1
하영. / 뉴스1

"개인 비난보다 맥락을 봐야"

방 사무처장은 하영의 행동이 적절치 않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역사에 대해 얼마나 성찰하고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응원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 배재고 야구부 사례를 함께 언급하며, 하영 개인이나 특정 단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구체적인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는 취지다.

방 사무처장은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말도 인용했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친일 행위 자체보다 해방 이후 반성과 화해, 참회가 없었던 현실이 더 큰 문제이며, 이를 바꾸지 않으면 민족사의 기강은 헛말이 되고 부끄러운 조상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사과 이후에도 식지 않는 논란

하영은 지난 12일 직접 자필 사과문을 공개했다. 그는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관련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친일 행적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여러 자리에서 가족의 자랑처럼 이야기한 것을 반성한다며 앞으로 역사를 대하는 데 있어 더욱 신중한 태도를 갖겠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사과 이후에도 온라인상에서는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관련 게시물에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자랑했다면 마찬가지로 하지 않은 일로 비난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으며 확산됐다. 방송에서 조상의 행적을 자긍심의 근거로 내세운 이상, 그 행적에 대한 검증과 비판 역시 함께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반응이다. 이 댓글은 하영 논란을 둘러싼 여론의 핵심을 짚은 발언으로 꼽히며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창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하영 자필 사과문. / 하영 인스타그램
하영 자필 사과문. / 하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