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박 돌아왔었지만…'4할 타자' 백인천 전 감독 끝내 16일 오전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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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서 하루 동안 사투

백인천 전 감독. / 연합뉴스
백인천 전 감독. / 연합뉴스

한국프로야구 불멸의 4할 타자인 백인천 전 감독이 뇌경색 악화로 중환자실에서 하루 동안 사투를 벌이다 끝내 눈을 감았다. 향년 83세.

15일 천안 단국대병원 측은 중환자실에서 실낱같은 숨을 이어가던 백 전 감독이 이날 오전 6시 41분에 운명했다고 밝혔다.

뇌경색으로 장기간 투병 중이었던 고인은 병세가 악화해 전날 오전 심정지 상태로 천안시 거주지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다시 평소 치료를 받아왔던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백 전 감독은 전날 밤 한때 혈압이 정상인 수준으로 돌아와 주변에 희망을 안기기도 했으나 더는 진전 없이 영면에 들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공적을 기려 역대 두 번째 KBO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1942년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태어난 백 전 감독은 한국전쟁 때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라 서울 경동중·경동고에서 방망이를 잡았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출신으로 하체가 탄탄했던 백 전 감독은 1961년 실업야구 농협에 입단한 뒤 이듬해 자유계약으로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즈(현 닛폰햄 파이터즈)에 진출했다.

이후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즈(현 세이부 라이온즈), 롯데 오리온즈(현 지바 롯데 마린스), 긴테쓰 버팔로스를 거치며 1981년까지 일본 무대를 누볐다. 다이헤이요 시절인 1975년에는 타율 0.319로 퍼시픽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일본 시절 성적은 1969경기 1831안타에 209홈런, 212도루로 통산 200홈런-200도루를 동시에 달성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백 전 감독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고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 나이 41세로 원년 최고령 선수였던 백 전 감독은 그해 타율 0.412(72경기 250타수 103안타)라는 불멸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백 전 감독의 장타율 0.740은 2015년 NC 에릭 테임즈가 넘어서기 전까지 33년간 깨지지 않았고, 출루율 0.502 역시 2001년 롯데 펠릭스 호세가 경신하기 전까지 최고치였다.


고인은 지도자로서도 굵직한 획을 그었다. 1990년 LG 트윈스 창단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1996년 삼성 라이온즈, 2002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을 역임했던 고인은 1997년 삼성 감독 시절 처음으로 뇌경색 증상이 나타나 한때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지도자 생활을 그만둔 뒤 고인은 그동안 사기를 당하는 등 큰 고초를 겪었고, 4차례의 뇌경색, 한 차례의 뇌출혈로 장기간 투병 생활을 했으나 초인적인 의지로 버텨왔다. 근년엔 입원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으나 3월 초 주변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명언으로도 유명한 메이저리거 요기 베라를 좋아했던 고인은 현역 시절 ‘투혼의 야구’를 부르짖으며 한국 프로야구에 정신력과 투쟁심을 심어줬다는 평을 들었다.

백 전 감독이 세상을 등지면서 1982년 한국 프로야구 6개 구단 초대 감독 가운데 생존한 이는 이제 박영길(85)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