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결혼 이상형인데 만날 수 있을까?"라면서 치과의사가 내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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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안 어렵다" vs "식모 구하는 거냐"
치과의사라고 밝힌 한 남성이 '내 결혼 이상형'이라며 조건 열 가지를 적어 올렸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다. "이 정도가 내 이상형인데 어렵겠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지난 16일 올라온 이 글을 두고 네티즌 의견이 크게 갈렸다. 한쪽에선 "이거 완전 나다. 하나도 안 어렵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쪽에선 "아내가 아니라 식모나 비서를 구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글쓴이가 적은 조건은 이랬다. 일요일 아침 한 끼는 아내가 차려 주고, 일요일 낮잠 두 시간을 자게 해주며, 여행지 계획과 예약은 아내가 도맡는다. 외식할 식당도 가격 상관없이 아내가 알아서 고르고 예약한다. 자기는 메뉴를 잘 못 고른다는 이유에서다. 생활비를 비롯한 모든 비용은 자신이 대고, 아내는 일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며 번 돈은 전부 쓰거나 친정에 줘도 상관없다고 했다.
집안일에 관한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글쓴이는 "청소가 필요하면 청소를, 쓰레기를 버려야 하면 버릴 쓰레기를 정확히 지시해 주는 여자를 원한다"며 "'설거지 실시'처럼 정확히 지시를 내려 주면 군소리 없이 바로 하는 관계를 바란다"고 했다. 자녀 교육도 큰 방향만 상의하고 학원 선택 같은 건 아내가 알아서 정했으면 한다고 했다. 명품이든 마사지든 돈은 얼마든 써도 되지만 네일아트와 문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취향도 덧붙였다. 마지막 조건으론 "내가 잘한 게 있으면 칭찬도 잘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반응은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특히 결혼한 여성들이 "이거 나다"라며 줄줄이 댓글을 달았다. 한 약사는 "우리 부부가 이렇게 사는데 잘 지낸다"며 "나는 내 마음대로 해서 좋고 남편은 신경 안 써서 좋아한다. 내가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게 좋아 서로 잘 맞는다"고 했다. 스스로를 '파워 J'라고 밝힌 이용자는 "모두 다 완전 가능하다. 오히려 남편이 참견하면 피곤할 것 같아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고 적었다. 계획하고 이끄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면 오히려 편하다며 "믿고 맡겨 주는 걸 원하는데 딱 맞는다"는 이용자도 있었다.
이쪽에서는 글쓴이를 두둔하는 의견도 나왔다. 한 이용자는 "맞벌이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내가 친정에 보태는 돈까지 못마땅해하는 남자가 대다수“라며 ”생활비를 전부 대고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했다.
다만 이들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결정을 맡겼으면 나중에 딴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나는 다 할 수 있지만 내가 알아서 한 일에 나중에 딴소리가 나오는 건 못 참는다"며 "같이 논의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맡겼으면 불평할 권리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여자가 고른 식당의 음식이 맛없어도 맛있다고 먹고, 여행 계획이 어긋나 하루를 버려도 불평 없이 넘어가고, 자녀 성적이 안 나와도 상대 교육 탓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어렵지 않다"며 "하지만 하나라도 상대 탓을 하는 순간 어려워진다"고 했다.

반대편에선 날 선 반응이 이어졌다. "집에는 신경 쓰지 않고 돈만 벌겠다는 것이니 스스로 ATM을 자처하는 셈"이라는 지적이 대표적이었다. "식모나 비서를 구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도 많았다. 한 공무원은 "결혼이 왜 하고 싶은지 궁금해지는 글"이라며 "인생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돈은 벌어 올 테니 나머지는 다 알아서 하라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애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다 알아서 정하고 계획까지 짜면 힘이 빠질 것 같다. 심지어 지시를 내리고 칭찬까지 해 줘야 하느냐"며 "자녀를 키울 때도 돈만 대겠다는 심보가 별로라 월 1000만 원을 갖다줘도 안 만난다"고 적었다. 글쓴이가 꺼리는 일들을 짚으며 "요즘 말로 '가사 기획 노동'에 해당한다. 가정 운영에 머리 쓰기는 싫고 돈만 대고 편히 쉬고 싶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한 이용자도 있었다.
조건 자체가 서로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행과 외식을 척척 기획하는 능동적인 사람을 원하는 동시에 남편 지시에 군말 없이 따르는 내조까지 바라는 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진취적인 사람을 바라면서 내조까지 잘하길 바라는 건데 이 둘은 같이 가기 어렵다"고 했다. "글에 적힌 조건만 보면 만나기 어렵지 않겠지만 이렇게까지 적어 둔 걸 보면 고집이 셀 것 같다"는 반응도 있었다.
글쓴이는 댓글에 일일이 답을 달며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자신을 'ATM'이라고 한 댓글에는 "행복한 ATM도 ATM이긴 한 거냐"고 받아쳤다. "싫어하는 일은 절대 안 하겠다는 태도가 보인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될 날이 온다"는 지적에는 "정확하게 파악했다"라고 인정하면서도 "싫어하는 걸 너무 안 하고 싶어서 내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들만 적어 뒀다. 모든 걸 안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글쓴이는 자녀와의 시간을 걱정하는 댓글에는 결이 다른 답을 내놨다. "아이는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내야 정서 발달에 좋다는 연구도 있다"는 지적에 글쓴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원을 예약해 뒀으니 주말에 가서 재밌게 놀자는 식으로 안내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지 아이와 잘 노는 건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자녀 교육을 아내에게 맡기겠다는 대목이 지나치다는 지적에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글쓴이는 "우리 아버지가 삼남매 교육에 아예 신경 쓰지 않고 본업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사셨다. 그게 교육 결과와 가정 분위기, 어머니에게 모두 좋았다"며 "원하지 않는 여자는 나와 안 맞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