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 1미터 육박... 거제 강수량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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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집중호우 및 강남역 폭우와 비교해봤더니...
경남 거제에 사흘간 90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로 1명이 숨지고 도심 곳곳이 물에 잠기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강수량만 놓고 보면 1만 명 넘는 사망자를 낸 해외 대참사와 맞먹는 수준이지만 비가 잦은 지역이라 대비가 갖춰진 덕분에 인명 피해가 더 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0시부터 18일 오전까지 거제의 누적 강수량은 956.1㎜에 달했다. 평년 여름 한 철에 걸쳐 내릴 비가 사흘 만에 한꺼번에 퍼부었다. 같은 기간 통영에 766.9㎜, 부산 가덕도에 518.0㎜, 제주 성산에 477.0㎜, 경남 사천에 430.5㎜, 고성에 429.5㎜의 비가 내렸다.
거제에 내린 비의 위력은 세계적 재난과 견줘 보면 더 뚜렷해진다. 1999년 12월 남미 베네수엘라 바르가스 주에서는 사흘간 911㎜의 비가 내리면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가 발생했다. 최대 3만 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낸 남미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이번 거제의 강수량은 그 바르가스의 비극과 맞먹거나 오히려 웃도는 규모다.
2024년 미국 텍사스주에서 90여 개 카운티가 재난지역으로 선포되고 휴스턴 등 동남부가 광범위하게 침수됐을 때의 강수량이 일주일간 최대 400~600㎜였던 점을 감안하면 거제에는 그 두 배 가까운 비가 절반도 안 되는 기간에 집중된 것이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 일대를 마비시킨 '강남역 폭우' 당시 강수량이 350~400㎜ 수준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체감은 더 커진다. 당시에도 강남 도심이 물에 잠기고 지하 공간에서 인명 피해가 났는데, 이번 거제에는 그 두 배가 훌쩍 넘는 비가 쏟아졌다.
시간당 강우 강도 역시 관측 이래 최고 수준이었다. 거제에는 17일 새벽 1시간 동안 124.5㎜의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하루 강수량으로 보면 거제는 17일 하루에만 654.3㎜의 비가 내려 전국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 기준 국내 기상관측 이래 일강수량 3위를 기록했다. 이보다 많았던 사례는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가 상륙했을 때 강원 강릉(870.5㎜)과 대관령(712.5㎜)에 하루 동안 내린 비가 유일하다.
이번 폭우의 원인으로 기상청은 한반도 북동쪽 고기압이 저기압의 이동을 가로막은 점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남서쪽에서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화한 저기압이 다가오고 남동쪽에는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서 가강수량(특정 상공의 공기 기둥에 포함된 모든 수증기를 물로 바꿨을 때의 깊이)이 70㎜에 이르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남쪽에서 강하게 유입됐다. 서쪽 저기압과 동쪽 고기압 사이에서 강한 남풍이 불며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가 남해안으로 밀려들었다. 이 기류가 육지와 마찰해 속도가 느려지면서 해안 대기 하층에 공기가 쌓여 강한 비구름대가 만들어졌다. 해발 500m 안팎의 산맥이 늘어선 거제의 지형도 기류 수렴에 영향을 줬다. 여기에 일본 남쪽 제17호 태풍 낭카에서 약화한 저기압이 고기압의 확장을 도우면서 기압 차가 벌어졌고, 그 사이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안타까운 인명 피해는 전날 새벽 산사태에서 나왔다. 이날 오전 4시 42분쯤 거제시 옥포동 삼도로얄맨션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가 아파트 1층을 덮쳐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이 아파트 61세대 140명은 추가 산사태 우려로 옥포초등학교와 옥포종합사회복지관, 옥포2동 행정복지센터 등에 이틀째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통영시 산양읍에서도 산사태로 주택 1채가 매몰돼 주민 1명이 구조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를 보면 이번 호우로 인한 피해 신고는 2574건을 넘어섰다. 안전조치가 2010건, 급·배수 지원이 402건, 구조가 162건이다. 인명 피해는 사망 1명, 부상 4명으로 부상자는 거제 2명, 통영 1명, 울산 1명이다. 정전은 4161호에서 발생해 대부분 긴급 복구됐고, 통영 1개 면 약 1000세대와 거제 6개 면·동 약 4177세대에서 단수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재민도 이틀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남도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거제와 통영에서 274세대 498명이 대피했고, 이 가운데 145세대 245명이 여전히 임시 시설에 머물고 있다. 농경지 365㏊와 육상 양식장 2건,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등 국가유산 5건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교육시설 피해도 거제 33건, 통영 8건 등 41건이 접수됐으나 학생 인명 피해는 없었다.
통영에서는 침수 피해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수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전날 완전히 잠긴 뒤 이틀째 배수 작업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까지 예상 침수량 1만6000t의 25%가량만 빠져나갔고 내부에는 1만2000t 상당의 물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떠다니는 토사와 쓰레기가 배수펌프를 수시로 막으면서 작업이 더디게 진행됐다. 지하에는 미처 빼내지 못한 차량 70여 대가 잠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가 많이 와서 해당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방당국은 완전 배수까지 하루에서 이틀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경남에 단 1대뿐인 대용량 배수펌프차는 피해가 가장 큰 거제에 배치돼 있는 까닭에 울산과 충남 서산의 배수펌프차가 통영에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다.

거제는 본래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배수 시설과 산사태·침수 대응 체계가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었던 점이 피해를 줄인 배경으로 추정된다. 이날 새벽 아파트 안내방송을 듣고 곧바로 차를 빼낸 통영 주민들의 사례처럼 사전 대피와 통제가 비교적 빠르게 이뤄진 점도 인명 피해를 억제한 요인으로 보인다. 폭우가 집중된 지역들에서 사전 대피와 위험구간 통제가 광범위하게 이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폭우가 그친 뒤 2차 피해가 우려된다. 하천과 상수도가 오염되고 하수와 빗물이 뒤섞이면서 수인성·식품매개감염병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장티푸스, 세균성이질, A형간염, 노로바이러스 등이 오염된 물이나 음식, 손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역당국은 침수된 물에 닿은 음식은 겉보기에 이상이 없어도 버리고, 식수는 끓여 마시며, 복구 작업 때는 장화와 방수장갑을 착용해 렙토스피라증 등을 예방하라고 당부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재난은 지방정부의 행정력과 재정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피해 범위와 규모가 너무 크다"며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조속 선포를 촉구했다. 변 시장은 "무너진 시민 일상을 회복하고 파손된 도로와 하천 등 공공시설을 신속히 복구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거제·통영 소재 1200여 개 중간예납 대상 중소기업의 법인세 납부 기한을 직권으로 두 달 미뤄 11월 2일로 연장하고, 통영세무서와 거제지서에 전용 창구를 마련해 피해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거제시는 이날 오전 호우특보가 전면 해제되면서 일부 통제 구간을 제외한 시내·시외버스 전 노선을 정상 운행한다고 밝혔다. 철도와 항공기, 여객선도 정상 운행 중이다. 다만 국립공원 3개 공원 255개 구간과 하천변 산책로, 세월교 등 위험지역 306곳은 여전히 통제되고 있다. 도와 거제시, 통영시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39사단 군 지원 인력을 동원해 복구에 나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