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 산사태에 묻힌 어머니 살리려고 맨손으로 흙 파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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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폭우 속 '산과 가까운 집'의 숨겨진 위험
1분 만에 토사에 매몰된 모자, 3시간 뒤 가까스로 구조됨

경남 통영시 산양읍 곤리도에서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주택에 있던 모자가 함께 토사에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들은 가까스로 빠져나왔지만 60대 어머니는 허리까지 흙에 묻힌 채 약 3시간 뒤 구조됐다.

18일 오전 소 모 씨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밑동과 흙더미가 쏟아졌다”며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토사에 깔렸다”고 말했다.

소 씨와 어머니가 살던 집 뒤편에는 과거 학교로 사용되던 폐교 운동장이 있었다. 사고 당시 이곳의 지반이 무너지면서 비탈에 있던 나무와 흙이 한꺼번에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왔고, 옹벽까지 무너지면서 주택 마당을 덮쳤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17일 새벽이었다. 전날 오전 4시께 마을에 정전이 발생하자 소 씨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마당 배수로가 막힌 것을 발견한 그는 빗물이 빠질 수 있도록 배수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약 30분이 지나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도 마당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뒤편에서 굉음이 들렸고, 순식간에 토사가 쏟아졌다.

소 씨는 무릎까지 흙에 묻혔지만 흙더미를 헤치며 빠져나왔다. 반면 어머니는 허리까지 묻혀 움직이기 어려운 상태였다. 소 씨는 주변을 향해 구조를 요청했고, 인근 낚시객에게 신고를 부탁한 뒤 직접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맨손으로 흙을 파냈다.

해경에는 오전 5시 5분께 산사태로 사람이 매몰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과 해경이 구조에 나섰고 오전 7시 26분께 어머니를 구조해 병원으로 옮겼다. 어머니는 골절 등의 부상을 입었고, 소 씨 역시 구조 과정에서 손과 무릎 등을 다쳤다.

사고 이후 소 씨의 집에는 허리 높이까지 토사가 들어찼다. 당장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워 소 씨와 어머니는 이웃의 도움을 받아 임시로 거처를 옮겼다.

이번 사고는 통영만의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광복절 연휴 기간 거제와 통영을 비롯한 경남 남해안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집중됐다. 거제에서는 17일 하루 577.4㎜의 비가 내려 1972년 관측 이래 일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했고, 통영도 409.7㎜로 1968년 관측 이래 가장 많은 하루 강수량을 기록했다.

실제 사고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AI 생성 이미지
실제 사고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AI 생성 이미지

왜 경남 남해안에 비가 집중됐나

이번 비의 특징은 단순히 비가 많이 내렸다는 데 있지 않다. 짧은 시간에 매우 많은 비가 좁은 지역에 집중됐다는 점이 피해를 키웠다.

기상 분석에 따르면 태풍 돌핀에서 약화한 저기압이 접근하는 과정에서 고온다습한 남풍이 남해안으로 유입됐고, 남해의 높은 수온으로 수증기 공급도 늘어난 것이 이번 집중호우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남해안의 지형이 영향을 미치면서 유입된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강한 비를 내리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특히 거제에서는 1시간 동안 124.5㎜, 통영에서는 97.4㎜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당시 강수 강도가 거제의 경우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 통영은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으로 분석했다.

이런 비가 산지에 집중되면 토양이 물을 흡수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빗물이 공급될 수 있다. 토양 내부에 물이 차면 흙 입자 사이의 마찰력이 약해지고, 사면을 아래쪽으로 끌어내리는 힘이 커진다. 결국 경사면이 버티지 못하면 흙과 돌, 나무가 함께 아래로 움직이는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산사태는 산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산지와 맞닿은 주택, 도로, 옹벽, 절개지, 계곡 주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곤리도 사고처럼 주택 뒤편의 지반이나 옹벽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주거지로 밀려드는 경우도 있어 산과 가까운 곳에서는 폭우 때 주변 지형의 변화까지 살펴야 한다.

18일 극한 호우로 유실된 경남 통영시 봉평동 용화사 인근 한 도로에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6.8.18/뉴스1
18일 극한 호우로 유실된 경남 통영시 봉평동 용화사 인근 한 도로에서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6.8.18/뉴스1

산사태 전에 확인해야 할 것

산사태 위험이 예상되는 날에는 ‘비가 그치면 괜찮겠지’라고 판단하기보다 사전에 위험지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선 산사태 예보와 호우특보를 확인해야 한다. 산사태 위험지역이나 급경사지 인근에 거주한다면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한 대피 장소와 이동 경로를 평소에 확인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밤이나 새벽처럼 주변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시간대에는 대피 안내가 내려졌다면 즉시 이동하는 것이 원칙이다.

집 주변의 배수로와 집수정이 막혀 있는지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빗물이 한곳에 고이면 지반으로 물이 집중적으로 스며들어 사면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폭우가 이미 시작된 뒤에는 직접 배수로를 정리하거나 산비탈에 접근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산사태 취약지역에서는 산림청의 산사태정보와 재난문자 등을 통해 위험 상황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산림청은 올해 산사태 대책에서도 주민 대피를 강화하고 위험지역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8일 극한 호우로 수해 피해를 본 경남 통영시 봉평동의 한 식당에서 육군 제39보병사단 8358부대 2대대 장병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18일 극한 호우로 수해 피해를 본 경남 통영시 봉평동의 한 식당에서 육군 제39보병사단 8358부대 2대대 장병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산사태가 시작됐다면 ‘대피’가 먼저

산사태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 가장 위험한 행동 중 하나는 토사가 밀려오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산사태는 한 차례 흙이 내려온 뒤 끝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위쪽 사면에 남아 있던 토사가 추가로 무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몰자를 발견했다고 해서 주변 사람이 곧바로 토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주택이나 건물 안에 있다면 산사태가 발생하는 방향과 반대쪽의 안전한 장소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산비탈 아래쪽이나 계곡, 낮은 지대로 이동하기보다 산사태 진행 방향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피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차량을 이용해 위험지역을 빠져나가려 하기보다 공식적인 대피 안내에 따라야 한다. 산사태로 도로가 끊기거나 토사가 도로를 덮으면 차량이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몰자가 발생했다면 먼저 119 등 관계기관에 신고하고 정확한 위치와 매몰 인원, 주변 지형을 전달해야 한다. 구조대가 도착하기 전 무리하게 굴착하면 추가 토사가 내려오거나 매몰자의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이번 곤리도에서도 소 씨는 어머니가 매몰된 뒤 주변에 구조를 요청하고 신고를 부탁했다. 이후 소방과 해경이 현장에 도착해 구조 작업을 진행했다.

18일 극한 호우로 수해 피해를 본 경남 통영시 봉평동의 한 식당에서 육군 제39보병사단 8358부대 2대대 장병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18일 극한 호우로 수해 피해를 본 경남 통영시 봉평동의 한 식당에서 육군 제39보병사단 8358부대 2대대 장병들이 수해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2026.8.18/뉴스1

산사태가 지나간 뒤에도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건 위험

산사태가 멈췄다고 해서 현장이 곧바로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사면이 이미 약해진 상태라면 추가 붕괴가 발생할 수 있고, 무너진 옹벽이나 건축물도 붕괴 위험이 남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관계기관의 안전 확인과 귀가 안내가 있기 전에는 피해 주택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기와 가스 시설이 손상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침수되거나 토사에 덮인 건물에서 임의로 전기 스위치를 조작하거나 가스시설을 확인하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피해 현장에 들어가야 할 경우에는 관계기관의 안내를 받고 안전장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토사 속에 깨진 유리나 금속, 나뭇가지 등이 섞여 있을 수 있어 맨발이나 일반 슬리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주택 내부로 토사가 유입됐다면 사진이나 영상 등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지자체 등 관계기관의 현장 확인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이후 복구 과정에서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산사태 복구 체계도 피해 발생 직후 조사에서 끝나지 않는다. 올해 산사태 방지 대책에 따르면 피해가 발생하면 시·군·구가 1차 조사를 진행하고 중앙정부가 2차 조사를 실시한 뒤 복구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는 현장조사단을 파견하는 체계도 마련돼 있다.

무엇보다 이번 곤리도 사고는 산사태가 먼 산속에서만 일어나는 재난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집 뒤편의 비탈면과 옹벽, 폐교 부지처럼 평소에는 생활공간의 일부로 보였던 곳도 극한호우가 발생하면 위험지역으로 바뀔 수 있다.

기록적인 강수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우리 집은 산 바로 밑이 아니다’라는 판단만으로 안전을 장담하기 어렵다.

호우특보가 내려졌거나 산사태 위험이 커졌다면 배수로를 확인하는 것보다 먼저 대피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피 안내가 내려졌다면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것이 인명피해를 줄이는 가장 기본적인 대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