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행위는 사실이지만…” 배우 하영 증조부 논란 속 '日 교수 발언'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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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 일본 언론도 조명
안상호 군포 2700평 토지 기록 확인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을 두고 일본 언론이 국내에서 불거진 ‘연좌제’ 논쟁을 다뤘다. 조상의 과거를 이유로 후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문제와 함께, 이번 논란이 커진 배경에도 시선을 돌렸다.

“후손 책임 묻는 건 부당”… 日 매체 ‘현대판 연좌제’ 주장
일본 아베마타임즈는 지난 20일 하영의 증조부 친일 논란과 이후 국내에서 이어진 반응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매체에 출연한 도카이대 김경주 교수는 한국에서 ‘친일파’가 일제강점기 역사진상규명특별법에 근거해 다뤄져 온 법률 용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의 명단을 정립했다.
김 교수는 하영 증조부의 친일 행위 자체는 사실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도, 친일 행위의 책임은 당사자에게 한정해야 하며 자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시각이 한국 내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 JB프레스와 후지TV 해설위원 등 일부 현지 매체도 만난 적도 없는 증조부의 과거 때문에 광고 영상이 비공개된 점 등을 두고 ‘현대판 연좌제’라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다만 아베마타임즈는 이번 논란이 단순히 혈연 문제만으로 커진 것은 아니라고 봤다. 김 교수는 당시 친일 행위자들이 일본 정부에 협력해 토지를 불하받는 등 자산을 축적한 점을 짚었다. 하영이 방송에서 집안의 부와 내력을 자랑스럽게 언급한 내용과 맞물려 해당 자산의 출처가 조명받으면서 비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4대째 의사 가문’ 언급 뒤 증조부 행적 논란
논란은 하영이 지난 7일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 이야기를 꺼내면서 시작됐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는 1872년 태어나 1927년 사망한 의사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의사 자격을 취득했고 고종과 순종의 촉탁의로도 일했다.
이후 안상호가 1916년 내선융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정친목회에서 평의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샀다.
파장이 이어지자 하영이 모델로 나선 삼성전자와 의류 브랜드 아티드의 홍보 영상이 비공개 처리됐고, 넷플릭스 신작 ‘이 엿같은 사랑’ 관련 인터뷰 일정도 취소됐다.
결국 하영은 지난 12일 자필 사과문을 통해 “증조부와 관련된 일들로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무지한 상태로 여러 자리에서 증조부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의 자랑처럼 꺼내 왔다”고 고개를 숙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전 미수록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조상의 과오를 성찰 없이 미화한 태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군포에 2700평 논 소유 기록
이처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안상호가 일제강점기 초기 경기 군포 일대에 2700평 규모의 논을 소유했던 기록도 확인됐다.
지난 20일 주간경향 보도에 따르면 일제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경기도 시흥군 남면 금정리 토지조사부 235번지 소유자란에는 안상호의 한자 이름인 ‘安商浩’가 적혀 있다. 지목은 논을 뜻하는 답(畓), 지적은 2700평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지적원도에서도 같은 번지가 확인된다. 해당 토지는 이미 개통돼 있던 경부선 철도 바로 옆에 있었으며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경기 군포시 금정동 일대다.
옛 지번을 현재 등기 기록과 지도까지 따라가면 일부 토지는 금정IC 도로부지와 철도용지로 편입된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현재 확인되는 전산 등기기록은 1980년대 시흥군이나 국가가 해당 토지를 취득한 시점부터 시작한다.
안상호가 소유했던 토지가 이후 후손에게 상속됐는지, 중간에 제3자에게 넘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983년 협의수용 당시 안씨 일가가 보상금을 받았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