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10명 중 4명이 무조건 암에 걸리는 나라' 한국에도 큰 파급력

작성일

전 세계 들썩이게 만든 모더나 암 백신... 얼마나 효과 있을까

암 수술을 받은 환자와 가족이 가장 오래 안고 사는 걱정은 '혹시 다시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수술로 눈에 보이는 암을 다 떼어냈어도 몸 어딘가에 숨어 있던 암세포가 훗날 되살아나 다른 장기로 퍼지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을 크게 줄여줄 새로운 치료법이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으로 불리는 임상 3상을 통과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18년 10월 14일 '2018 핑크런 서울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핑크런'은 유방 건강에 대한 인식 향상을 목적으로 매년 5개 도시에서 릴레이로 개최되는 러닝 축제다. 참가비 전액은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돼 유방암 환자의 수술 치료비 지원 사업 및 유방암 예방 검진 사업에 사용된다. / 뉴스1 자료사진
2018년 10월 14일 '2018 핑크런 서울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핑크런'은 유방 건강에 대한 인식 향상을 목적으로 매년 5개 도시에서 릴레이로 개최되는 러닝 축제다. 참가비 전액은 한국유방건강재단에 기부돼 유방암 환자의 수술 치료비 지원 사업 및 유방암 예방 검진 사업에 사용된다. / 뉴스1 자료사진

다국적 제약사 모더나와 머크가 함께 개발한 개인 맞춤형 암 백신이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멜라노마)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임상에서 재발과 전이를 막는 효과를 입증했다고 최근 발표한 바 있다. mRNA 방식의 암 백신이 임상 3상에서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코로나19 백신으로 널리 알려진 mRNA 기술이 암 치료로 넘어와 마지막 관문을 넘은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 발표 직후 모더나 주가는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를 만큼 전 세계 의학계와 시장의 관심이 쏠렸다.

관심의 초점은 '그래서 효과가 얼마나 뛰어나느냐'다. 앞서 진행된 중간 규모 임상에선 해당 백신을 면역항암제와 함께 맞은 환자의 5년 뒤 재발 없는 생존 비율이 68.8%인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항암제만 맞은 환자(49.1%)를 크게 앞선 수치다. mRNA 방식의 암 백신이 임상 3상까지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발표 직후 모더나 주가가 하루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를 만큼 시장도 들썩였다.

이 백신은 지금까지 나온 어떤 항암제와도 원리가 다르다. 핵심은 '개인 맞춤형'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 무슨 뜻인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하나씩 풀어본다.

같은 암이라도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 손을 떠올려보자. 손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손끝의 지문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다. 암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흑색종이라는 이름이 붙어도 그 암을 이루는 세포의 유전자 변이는 환자마다 제각각이다. 겉보기엔 같은 병처럼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암인 셈이다.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모더나의 코로나19 백신

그동안은 같은 이름의 암이면 대체로 같은 항암제를 썼다. 그러다 보니 어떤 환자에게는 약이 잘 듣고 어떤 환자에게는 거의 듣지 않는 일이 흔했다. 암의 '지문'이 서로 다른데 하나의 열쇠로 모든 자물쇠를 열려고 한 셈이다.

이번 백신은 발상을 뒤집었다. 환자 몸에서 떼어낸 암 덩어리를 직접 분석해 그 사람의 암에만 있는 특징을 찾아내고, 오직 그 환자만을 위한 주사약을 새로 만든다. 말 그대로 지문처럼 한 명 한 명에게 딱 맞춘 약이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환자마다 다른 지문 같은 약이라고 표현했다.

내 암에만 맞는 약, 이렇게 만든다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수술로 떼어낸 환자의 암 조직과 그 환자의 정상 조직을 나란히 비교한다. 그러면 정상 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만 생긴 돌연변이가 드러난다. 이 돌연변이들은 우리 몸의 면역세포가 '이건 원래 내 몸에 없던 것'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표적, 이른바 신생항원(네오항원)이 된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면역세포가 특히 잘 알아보고 공격할 만한 것을 최대 34개까지 골라낸다. 어떤 표적을 고르느냐가 이 기술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그런 다음 코로나19 백신에 쓰였던 mRNA 기술로 이 34개 정보를 담은 주사제를 만든다. mRNA는 우리 몸의 세포에 '이런 단백질을 만들어라'라고 전달하는 일종의 설계도다. 코로나19 백신이 바이러스 겉모습의 설계도를 몸에 알려줘 면역력을 키웠듯, 이 암 백신은 '내 암의 표시'를 몸에 알려주는 것이다.

이 주사가 몸에 들어가면 면역세포에 '이런 모양의 세포를 찾아내 공격하라'는 정보가 전달된다. 그 결과 암을 겨냥하는 새로운 면역세포가 만들어지거나, 원래 있던 항암 면역세포가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눈에 보이지 않게 몸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훗날 재발의 불씨가 될 수 있는 암세포를 미리 없애자는 전략이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임상시험에 참여한 실제 환자를 보면 이해가 쉽다. 영국의 음악 교사 스티브 영(52)은 머리에 난 작은 혹을 오랫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문제는 그 혹이 흑색종이었던 것. 처음에는 병원에서도 심각하게 보지 않았지만 결국 위험한 피부암으로 진단됐다. 수술로 암을 떼어낸 뒤 영은 이 백신과 면역항암제를 함께 맞는 임상에 참여했다. 영처럼 수술은 잘 끝났지만 재발 위험이 남아 있는 환자가 바로 이 백신의 대상이다. 영은 백신을 맞은 뒤 자신의 음반을 새로 내며 투병 대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기존 면역항암제와는 뭐가 다른가

이번 백신의 특징은 기존 치료제와 견줘보면 더 뚜렷해진다. 암세포는 교묘하게도 면역세포의 눈을 가린다. 면역세포가 자기를 적으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위장하는 것이다. 이 위장을 벗겨내 면역세포가 암을 다시 알아보게 만든 약이 이미 널리 쓰이는 면역항암제다. 이번 임상에서 백신과 짝을 이룬 머크의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가 대표적이다.

면역항암제가 면역세포의 '가려진 눈'을 다시 뜨게 해주는 약이라면 이번 백신은 환자의 암에 딱 맞는 '새로운 눈'을 아예 만들어주는 약에 가깝다. 원리가 서로 다르니 둘을 함께 쓰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임상의 성과는 백신만 단독으로 쓴 결과가 아니라 면역항암제와 백신을 함께 쓴 결과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면역을 깨우는 두 약을 나란히 투입해 상승 효과를 노린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근거는 앞서 진행된 중간 규모 임상(2b상)에서 나왔다. 이 임상에는 미국과 호주에서 모집된, 수술을 마친 고위험 흑색종 환자 157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107명은 면역항암제와 백신을 함께 맞았고, 50명은 면역항암제만 맞았다. 두 집단을 오래 추적 관찰하며 재발 여부를 비교하는 방식이었다.

초기 결과부터 차이가 나타났다. 치료 1년 반 시점에 재발 없이 지낸 환자 비율은 백신을 더한 쪽이 78.6%, 면역항암제만 맞은 쪽이 62.2%였다. 시간이 지나도 이 격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5년 뒤 결과를 보니 백신을 함께 맞은 환자는 68.8%가 암이 재발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데 반해 면역항암제만 맞은 환자는 그 비율이 49.1%에 그쳤다. 재발하거나 사망할 위험 자체는 백신을 더한 쪽이 49% 낮았고, 암이 다른 장기로 퍼지는 전이 위험을 줄이는 효과도 함께 확인됐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 백신을 신속 심사 대상인 혁신치료제로 지정하기도 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이 결과를 더 많은 환자에게서 다시 확인하려고 진행한 것이 이번에 성공한 임상 3상(INTerpath-001)이다. 전 세계에서 수술로 흑색종을 제거한 고위험 환자 1137명이 참여했다. 앞선 임상보다 참여 인원이 일곱 배가량 많은 대규모 시험이다. 모더나와 머크는 이 임상에서 백신과 면역항암제를 함께 쓴 환자가 면역항암제만 쓴 환자보다 재발·사망 위험과 전이 위험 모두에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개선을 보였다고 밝혔다. 새로운 부작용 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회사 측은 아직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확한 재발률과 생존율 같은 상세한 데이터는 앞으로 열릴 국제 학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각국 규제당국에 정식 판매 허가를 신청하는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실제 환자에게 쓰이는 시점도 앞당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없는 것일까

기대가 큰 만큼 오해도 경계해야 한다. 이 백신은 현재로선 이미 퍼진 암을 없애는 치료제라기보다 수술 뒤 남은 암세포로 인한 재발과 전이를 막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직 암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 예방 삼아 미리 맞는 백신도 아니다. 처음 진단받은 환자에게 곧바로 1차 치료제로 쓸 수 있을지는 추가 연구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

만드는 방식 자체도 숙제를 안고 있다. 환자 한 명마다 암 조직을 떼어내 분석하고 그 사람만을 위한 약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만큼 제작에 걸리는 시간, 비용, 대량 생산 문제를 어떻게 풀지가 상용화의 관건이다. 누구나 약국에서 사서 맞는 기성품과는 성격이 다르다.

40%가 암 걸리는 한국인에게 갖는 의미

흑색종은 서양에 비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드문 암이다. 그렇다고 이번 소식이 한국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같은 mRNA 맞춤형 기술을 폐암, 방광암, 신장암, 피부 편평세포암 등 다른 암으로 넓히는 임상 8건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폐암은 한국인에게 특히 흔하고 사망자도 많은 암이어서 이 기술이 폐암에서도 효과를 보인다면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한국의 암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새로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28만8613명으로, 남성이 15만1126명, 여성이 13만7487명이었다. 전년보다 7296명(2.5%) 늘어난 수치다. 국민이 기대수명(2024년 기준 남성 80.8세, 여성 86.6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평생 암에 걸릴 확률은 남성이 약 44.6%로 2명 중 1명, 여성이 약 38.2%로 3명 중 1명꼴이다. 남녀를 합치면 41.2% 수준이다. 가장 많이 생기는 암은 남녀 전체로는 갑상선암, 남성은 전립선암, 여성은 유방암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평생 한 번은 암과 마주하는 현실에서 '내 암에만 맞는 약'을 만들어 재발을 막는다는 접근법이 앞으로 어떤 암까지 넓어질지가 관건이다.

모더나와 머크는 흑색종 외에 폐암과 신장암 등에서도 임상 결과를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신장암(신세포암) 임상 결과가 이르면 연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흑색종 임상 3상의 상세 데이터는 예정된 국제 학회에서 공개되며, 허가 신청 절차도 함께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