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외 고가 화장품, 알고 보면 한국에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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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뒤엔 'K-ODM'… 코스맥스·한국콜마, 세계 화장품 공장으로
올리브영 매대에 놓인 화장품 브랜드의 이름은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크림과 세럼을 실제로 개발하고 찍어낸 공장은 몇 곳으로 좁혀진다. K뷰티 수출이 사상 최대로 불어나는 사이 브랜드 뒤에서 제품을 만드는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 화장품 수출이 빠르게 늘면서 제품을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ODM 업체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진 데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인디 브랜드 시장이 커지면서 제품 개발과 생산을 전문 업체에 맡기는 수요가 늘고 있다.
코스맥스와 한국콜마가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국내 브랜드의 제품을 단순히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원료와 제형을 연구하고 시제품을 만든 뒤 대량생산까지 맡는 방식으로 사업을 넓혀 왔다. 최근에는 국내 브랜드뿐 아니라 해외 브랜드와의 거래도 늘고 있다.
코스맥스는 국내외 5000여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널리 알려진 거래처로는 세계 1위 화장품 기업 로레알을 비롯해 에스티로더, 존슨앤드존슨 등 글로벌 대형 브랜드가 있다. 여러 글로벌 브랜드의 쿠션·베이스 메이크업 생산에서도 강점을 보인다.
한국콜마도 해외 다국적 기업의 주문을 늘리고 있다. 증권가 분석을 보면 올해 2분기 미국 법인에서는 글로벌 다국적 기업 계열의 색조 브랜드가 상위 5개 고객사에 새로 진입했다. 국내에서는 선케어 기술이 강점으로 꼽힌다. 미국에서 한국산 선크림 수요가 사재기 수준으로 번지는 가운데 여러 인디 브랜드의 선케어 제품이 한국콜마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114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24년(102억 달러)보다 11.8% 늘어난 규모다. 한국은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수출국에 올랐다.
최대 수출 대상국도 바뀌었다. 대미 수출액이 지난해 22억 달러로 중국(20억 달러)을 넘어섰다. 일본 수출액은 11억 달러였다. 중국에 집중됐던 수출 시장이 미국과 일본, 유럽 등으로 빠르게 분산되고 있다.

수출을 이끄는 주체도 달라졌다.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액은 지난해 83억2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21.5% 늘었다. 전체 수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72.5%까지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에도 중소기업 화장품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7% 증가한 50억7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인디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 수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ODM 업체의 역할도 커졌다.
ODM은 주문받은 제품을 그대로 찍어내는 OEM과 업무 범위가 다르다. 브랜드가 제품 콘셉트와 목표 소비자, 가격대를 제시하면 ODM 업체가 조건에 맞는 원료와 처방을 검토해 제형을 개발한다. 이어 시제품을 만들어 품질과 안정성을 확인한 뒤 실제 생산공정에 적용한다.
화장품은 원료를 정해진 비율로 섞는다고 완성되는 제품이 아니다. 같은 성분을 써도 원료의 종류와 입자 크기, 배합 비율, 투입 순서, 온도와 혼합 조건에 따라 점도와 발림성, 색상, 안정성이 달라진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처방을 공장에서 수만개 단위로 찍어낼 때도 같은 품질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ODM 업체의 경쟁력은 성분이나 제형 기술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실제 생산까지 연결해 본 경험, 원료와 제형을 다루는 연구개발 인력, 대량생산에서 품질을 관리하는 제조 역량이 함께 필요하다.
한국 ODM 업체가 성장한 배경에는 국내 시장의 특성이 있다. 스킨케어와 선케어, 색조 등 제품군마다 경쟁이 치열했다. 소비자 요구도 빠르게 바뀌었다. 새로운 성분이나 사용감을 앞세운 제품이 잇따라 나오면서, 제조업체들은 짧은 기간 안에 새 제형을 개발해 생산하는 경험을 쌓았다.
선케어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자외선 차단제를 일상 스킨케어처럼 쓰는 소비자가 늘면서 백탁과 끈적임을 줄이고 발림성을 개선한 제품이 계속 개발됐다. 크림 형태를 넘어 에센스나 로션처럼 쓸 수 있는 제품도 등장했다.
다만 자외선 차단제나 스킨케어 제형 기술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도 원료와 제형 연구가 오랫동안 이뤄졌다. 한국 ODM의 경쟁력은 특정 기술 하나보다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제품을 빠르게 개발해 대량생산으로 연결해 온 제조 경험에서 찾는 편이 적절하다.

코스맥스는 올해 2분기 연결 기준으로 매출 7949억원, 영업이익 73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5%, 영업이익은 21.2% 늘어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국내 법인 매출은 5184억원으로 처음 분기 5000억원을 넘어섰다. 미국 법인은 이번 2분기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흑자를 냈다. 미국 시장에서 현지 브랜드와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한 생산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콜마의 성장세도 뚜렷하다. 올해 2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은 606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만 해도 한국콜마의 화장품 부문 매출(3706억원)은 이탈리아 ODM 업체 인터코스(4417억원)에 못 미쳤다. 올해 1분기에는 한국콜마가 4745억원, 인터코스가 3897억원을 기록하며 순위가 뒤집혔다. 2분기에는 한국콜마 6064억원, 인터코스 4658억원으로 격차가 1406억원까지 벌어졌다. 코스맥스는 2분기 7949억원으로 세 회사 가운데 매출이 가장 많았다.
다만 이 수치를 근거로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를 세계 ODM 시장의 1·2위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세 회사의 분기 실적을 비교하면 매출은 코스맥스, 한국콜마, 인터코스 순이지만 기업마다 사업 범위와 매출 집계 방식이 똑같지는 않다. 특히 한국콜마의 6064억원은 회사 전체 연결 매출이 아니라 화장품 부문 매출이다. 각사가 공개한 실적을 같은 기간으로 나란히 놓은 결과일 뿐, 국제기관이 동일한 기준으로 산출한 공식 세계 순위와는 다르다.
그럼에도 국내 두 업체가 글로벌 주요 경쟁사와 견줄 규모까지 커졌다는 사실은 분기 실적에서 확인된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말 인터코스에 뒤졌던 매출을 올해 들어 빠르게 끌어올렸다. 코스맥스도 국내와 중국,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매출을 늘리며 분기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ODM 업체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인디 브랜드의 성장이다. 과거에는 대형 화장품 기업이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브랜드가 마케팅과 유통에 집중하고, 연구개발과 생산은 전문 업체에 맡기는 방식이 널리 쓰인다.
인디 브랜드는 자체 연구소나 공장을 갖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ODM 업체와 손잡으면 콘셉트와 가격, 목표 소비자를 정한 뒤 전문 업체의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시장 반응이 확인되면 생산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울 수도 있다.
온라인 유통과 소셜미디어의 성장도 이런 구조를 강화했다. 새 브랜드가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확보해 특정 제품을 중심으로 빠르게 크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출시 속도가 중요해졌다. ODM 업체는 이미 확보한 원료와 제형, 생산공정 경험을 활용해 새 브랜드의 요구에 대응한다.
브랜드가 많아질수록 ODM 업체가 확보할 고객군도 넓어진다. 한 브랜드에 의존하는 제조업체와 달리 여러 브랜드 제품을 동시에 만드는 ODM 업체는 특정 브랜드의 판매 변동에 따른 충격을 분산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브랜드가 한꺼번에 해외 판매를 늘리면 제조업체 생산량도 함께 불어난다.
수출 시장이 미국과 일본 등으로 확대된 것도 ODM 업체에는 기회다. 수출 대상국이 달라지면 성분과 표시, 품질관리에서 고려할 조건도 달라진다. 해외를 겨냥하는 브랜드로서는 제품 개발·생산뿐 아니라 각 시장 요구에 맞춘 품질관리와 생산 체계를 갖추는 일이 중요해진다.

국내 ODM 업체가 해외에 생산시설을 두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물린다. 한국에서 개발해 국내에서 생산·수출하는 방식뿐 아니라 현지 시설로 해당 시장에 직접 공급하는 방식도 가능해진다. 고객사가 어느 지역에서 파느냐에 따라 생산 거점을 고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K뷰티의 성장세는 제조업체를 넘어 유통·브랜드 기업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유통업체 실리콘투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830억원을 기록했다. 유통업체 실적이 좋아졌다는 것은 국내 브랜드의 해외 판매가 늘었다는 뜻이다. 판매 증가는 다시 ODM 업체의 생산 주문으로 이어진다.
브랜드 기업의 성장도 제조업체와 연결된다. 에이피알은 올해 2분기 매출 7675억원, 영업이익 1906억원을 기록했다. 해외에서 팔리는 제품이 늘면 제품을 공급하는 제조업체 생산량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이런 구조 탓에 최근 K뷰티에서는 브랜드와 유통, ODM이 따로 노는 산업이 아니라 하나의 공급망으로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브랜드가 해외 판매를 늘리면 유통업체 거래가 증가하고, 판매량이 늘면 ODM 생산 주문도 늘어나는 흐름이다.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ODM 업체의 역할은 단순 생산 하청과 달라졌다. 콘셉트를 실제 상품으로 구현하는 연구개발부터 원료·제형 선택, 시제품 제작, 생산공정 설계, 품질관리까지 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 단계의 상당 부분을 맡는다. 올해 2분기 화장품 ODM 매출은 코스맥스 7949억원, 한국콜마 화장품 부문 6064억원, 인터코스 4658억원 순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