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리타 린 판사, 앤트로픽 '공급망 위험' 제재는 위헌적 보복이라며 영구 금지

작성일

미 법원, 앤트로픽 “공급망 위험” 지정 위헌 판결…펜타곤 보복 조치 영구 금지
자율무기·감시 거부한 앤트로픽, 클로드 두고 국방부와 소송전서 첫 승기

앤트로픽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앤트로픽 관련 이미지 / AI 생성 일러스트(삽화)

미국 연방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 제재 조치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캘리포니아북부지방법원 리타 린(Rita Lin) 판사는 목요일(현지시각) 국방부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고 연방기관 전반에서 이 회사와의 거래를 끊으려 한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보복이라며 이를 영구적으로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린 판사는 59페이지 판결문에서 해당 조치들이 수정헌법 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수정헌법 5조의 적법절차 조항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앤트로픽이 자사 AI 모델 클로드(Claude)의 군사적 사용에 제한선을 두겠다고 버틴 데에서 시작된 몇 달째 이어진 법적 분쟁에서 나온 결과다. 앤트로픽 측은 “공급망 위험 지정이 불법이었다는 법원 판단을 반긴다”며 “국가 안보를 위해 정부와 생산적으로 협력하는 데 계속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자율무기·감시 거부가 부른 보복

지난 겨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Pete Hegseth)는 AI 기업들과 맺은 계약을 다시 협상해 국방부가 “합법적인 용도라면 무엇이든” AI를 쓸 수 있도록 권한을 넓히려 했다. 대다수 AI 기업은 새 조건에 서명했지만 앤트로픽은 두 가지 선을 넘지 않겠다며 버텼다. 미국인들에 대한 대규모 감시와, 인간의 개입 없이 표적을 정해 살해할 수 있는 자율무기에는 클로드를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최종 통첩이 나오기 채 24시간이 되지 않은 시점,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는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는 성명을 냈다. 그는 “특정 군사작전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기술 사용을 임의로 제한한 적이 없다”면서도 “일부 좁은 사안에서는 AI가 민주적 가치를 지키기는커녕 훼손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후 앤트로픽은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됐다. 통상 외국의 적대세력이 미국의 핵심 시스템을 방해할 위험이 있을 때 붙이는 분류다. 국방부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스페이스X 등 7개 AI 기업과 새로 계약을 맺어 앤트로픽의 자리를 대체하려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연방기관이 앤트로픽 기술 사용을 “즉시 중단하라”는 글을 올렸고, 헤그세스는 2월 소셜미디어에 어떤 군사 계약업체도 앤트로픽과 “어떠한 상업적 거래”도 할 수 없다고 못 박아 사실상 보이콧을 촉발했다.

판사가 “위헌”이라 본 근거 / AI 생성 이미지
판사가 “위헌”이라 본 근거 / AI 생성 이미지

판사가 “위헌”이라 본 근거

린 판사는 앤트로픽이 법적으로 정의된 “공급망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정부 측은 앤트로픽이 협상 과정에서 완강한 태도를 보인 점을 근거로 소프트웨어에 “킬 스위치”를 심어 향후 “사보타주”를 벌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지만, 린 판사는 이를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못박았다. 앤트로픽이 시스템에 “백도어” 접근 권한을 유지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린 판사는 정부의 다른 행동과의 모순도 지적했다. 헤그세스가 국방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앤트로픽에 적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오히려 이 회사를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존재로 취급한 셈이고, 국방부가 여전히 앤트로픽과 계약을 추진하고 새 모델 미토스(Mythos)를 사이버보안 분야에서 함께 활용하려 한 점도 사보타주 우려와는 맞지 않는다고 봤다. 판결문에는 “정부의 당시 언행을 보면 이번 조치가 정부를 비판한 앤트로픽의 ‘오만함’에 공개적으로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였을 뿐, 실제로 앤트로픽이 자사 모델을 사보타주할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는 게 확인된다”고 적혔다. 이어 “국가 안보를 형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정부 비판자를 처벌하고 보복할 백지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IT 업체가 “꼬치꼬치 캐묻거나 특정 계약 조건을 고집스럽게 요구한다고 해서 미국의 잠재적 적대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도 판결문에 담겼다.

다만 린 판사는 정부에 앤트로픽 기술을 반드시 써야 한다거나 다른 AI 기업에 사업을 맡기지 말라고 명령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관련 규정과 법률, 헌법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 한 정부가 어떤 AI 벤더를 고를지는 여전히 자유라는 취지다. 린 판사는 헤그세스의 2월 소셜미디어 게시글도 무효로 했다. 이 게시글은 군사 계약업체가 앤트로픽과 어떤 상업적 거래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는데, 군사 업무와 무관한 일로 앤트로픽을 이용하던 업체들까지 거래를 끊는 광범위한 보이콧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게시글에 따라 다른 연방기관들이 앤트로픽과의 거래를 끊은 조치들도 함께 뒤집혔다. 법률적 근거 없이 이뤄진 “적법절차 없는 보복 행위”였다는 게 판단 이유다.

여전히 남은 두 번째 소송과 IPO 변수

앤트로픽은 3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DC 두 곳의 연방법원에 각각 소송을 냈다. 이번에 승소한 것은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 소송이고, 워싱턴DC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앤트로픽은 두 번째 소송이 마무리되기 전까지는 형식적으로 여전히 “공급망 위험” 명단에 남아 있는 상태다. 두 소송 모두 이긴다 해도 국방부가 앤트로픽과의 협력을 다시 시작할 의무는 없다.

이런 가운데 앤트로픽의 사업 자체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달 초 공개된 실적에 따르면 분기 매출이 115억 달러(약 15조 9,000억원, 1달러 1,385원 기준)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14배 늘어난 수치다. 앤트로픽은 올해 안에 대규모 기업공개(IPO)도 계획하고 있다. The Decoder는 정부가 AI 기업 페이블(Fable)에 짧게 금지 조치를 내린 적도 있다며,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업을 상대로 실제 행동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점을 이번 소송의 배경으로 짚었다.

표면화된 정부와 AI 기업의 근본적 시각차

앤트로픽 대변인 다니엘 기글리에리(Danielle Ghiglieri)는 “이번 공급망 위험 지정이 불법이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반긴다”며 “국가 안보를 위해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생산적으로 협력하는 데 계속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아모데이는 앞서 2월 CBS뉴스에 군과 협력하고 싶은 “애국적” 마음이 있다면서도 미국인에 대한 대규모 감시, 인간 개입 없이 표적을 정해 공격하는 자율무기라는 두 가지 절대적 “레드라인”은 지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클로드가 자율무기에 쓰기엔 정확도가 부족하고, 대규모 감시는 미국의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갈등은 정부와 민간 AI 기업이 기술의 이점과 위험을 어떻게 나눠 감당할지를 둘러싼 더 큰 논쟁의 한 단면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강력한 AI 모델에 대한 자발적 수준의 연방 감독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가 혁신을 옥죄고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을 뒤처지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행정부는 일부 AI 모델이 정치적으로 편향됐거나 “워크(woke)”하다는 비판도 여러 차례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