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공업 장기파업, 개별 노사갈등 넘어 국가 반도체 공급망까지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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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도체특별법, 소재·부품·장비 등 공급망 생태계까지 ‘반도체산업’에 포함
- 중국 반도체 자립 속도전 속 국내 핵심 부품기업 생산 안정성도 경쟁력
- 이재명 정부 ‘반도체 초격차’ 대규모 투자…노동권과 산업경쟁력 해법 함께 찾아야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부산을 대표하는 반도체 부품기업 리노공업의 노사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이번 사태를 단순한 개별 기업의 임금·단체협상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공급망과 국가 산업 경쟁력 차원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리노공업이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 건립 중인 신공장 전경. 신공장은 반도체 검사 핵심부품인 테스트 소켓과 리노핀 등의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생산 거점으로 조성되고 있다. / 사진=위키트리DB
리노공업이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 건립 중인 신공장 전경. 신공장은 반도체 검사 핵심부품인 테스트 소켓과 리노핀 등의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생산 거점으로 조성되고 있다. / 사진=위키트리DB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리노공업지회는 지난 7월 23일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금속노조가 지난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당시 파업은 36일째였다. 노조는 노동환경 개선과 이채윤 대표이사의 직접 교섭 등을 요구하며 정부와 국회, 부산시에도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노동자의 노동권과 정당한 처우 개선 요구는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리노공업이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생산 차질이 가져올 산업적 영향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리노공업은 반도체와 전자부품의 전기적 이상 여부를 검사하는 리노핀(LEENO PIN)과 IC 테스트소켓을 자체 개발·생산하는 기업이다.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는 사업영역이 다르지만 반도체 검사 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을 공급한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 공급망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실제로 파업에는 근무 대상 직원 665명 가운데 34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주요 생산인력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핀과 소켓 제조 공정에도 상당한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리노공업 사태를 단순한 부산지역 한 기업의 노사분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이미 기업 간 경쟁의 수준을 넘어 국가 간 기술·산업 패권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막대한 정책자금과 정부 지원을 앞세워 메모리와 첨단 반도체 분야의 기술 자립과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확보한 기술 우위를 유지하려면 완성 반도체 기업뿐 아니라 소재·부품·장비와 검사·패키징 등 후방 공급망의 경쟁력까지 함께 유지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 역시 반도체를 대한민국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투자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가 지난 6월 29일 공개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에는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을 토대로 서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신규 조성하는 등 8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는 내용이 담겼다. 충청권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패키징 거점을 육성하기 위한 156조원 규모 투자 계획도 제시됐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재정·세제 지원을 통해 민간 투자를 뒷받침하고 청와대 내에 전담 조직까지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7월 3일 국가우주위원회 회의에서 “최근 반도체, 조선 등 ‘대체불가 대한민국’이라 불리는 영역이 생겨나고 있다”고 밝히며 반도체 산업이 갖는 전략적 가치를 직접 강조했다.

정부와 삼성전자·SK 등 국내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초격차 유지에 나서는 상황이라면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부품기업들의 생산 안정과 연구개발 능력을 유지하는 문제 역시 국가 산업전략의 한 축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

리노공업 역시 부산 에코델타시티에 2000억원을 투자해 기존 공장의 약 두 배 규모인 신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회사는 분산된 생산라인을 통합하고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신공장을 추진했으며 신규 고용 계획도 약 200명 규모다.

문제는 이 같은 미래 투자가 진행되는 시점에 장기파업이 겹쳤다는 점이다.

노사 간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는 임금과 성과급 체계다.

회사 측은 노조 요구안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고정비 성격의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해 향후 투자와 경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앞선 교섭 과정에서 회사는 노조가 요구한 정기상여금 확대와 별도의 연말 경영성과급 등이 동시에 반영될 경우 지속 가능한 비용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조합원에 한정한 타결금 지급과 일부 경영·인사 사항에 대한 사전 합의 요구 등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요구를 과도하게 부풀려 해석하고 있으며 업황에 따라 급여 변동 폭이 큰 현행 구조를 보다 안정적인 임금체계로 개선하려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의 정당한 노동권과 처우 개선은 보장돼야 한다. 동시에 세계 각국이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상황에서 국내 핵심 반도체 부품기업의 생산 차질이 장기간 이어지는 것 역시 가볍게 볼 수 없다.

더욱이 정부가 ‘반도체 초격차’를 국가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하면서 수백조원 규모의 투자를 끌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리노공업 노사 모두가 한발씩 물러나 책임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정치권 역시 노사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대변하기보다 장기파업이 지역경제와 기업의 투자, 고용 그리고 국가 반도체 공급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반도체 초격차를 지키기 위해 멈춰 설 여유가 없다.

노동권 보호와 국가 산업 경쟁력은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지가 아니다. 노사가 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하고 정부와 정치권도 개별 기업의 노사분규라는 시각을 넘어 대한민국 반도체 공급망 안정이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들여다봐야 한다.

리노공업의 장기파업이 부산의 한 기업에서 벌어진 노사갈등으로만 끝날 것인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인지 산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