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남편, 누군가 했더니 바로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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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용혜인 “육아휴직한 남편, 경력단절 걱정”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내로남불' 행태를 둘러싼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용 후보자가 사실상 사당(私黨)처럼 운영해 온 기본소득당에 자신의 남편을 핵심 당직자로 앉혀놓고, 과거 언론을 향해서는 ‘남편의 육아휴직에 따른 경력단절’을 우려하는 발언을 내놓은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고 보조금을 받는 정당을 '가족기업'처럼 운용하며 감성 정치에 활용해 왔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장관 적격성 논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31일 기본소득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용 후보자의 남편은 박기홍 기본소득당 전략기획부총장이다. 그는 2020년 1월 창당부터 기본소득당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고, 기본소득당에서 전략기획실장과 기획조정실장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후보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사실상 기본소득당은 용 후보자의 ‘1인 정당’이나 다름없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용 후보자는,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똑같은 ‘위성정당 꼼수’를 재연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총선 국면에서 대표직을 잠시 내려놓았을 뿐, 창당 이후 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으로서 원내대표와 당대표를 번갈아 맡으며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더욱이 용 후보자가 위성정당 합류를 위해 당대표직을 일시 비웠을 때,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았던 인물 역시 남편인 박 부총장이었다. 부부가 교대로 정당을 주무르며 당권과 당직을 나눠 가진 셈이다.
부부가 핵심 역할을 해온 기본소득당에서 용 후보자의 남편인 박 부총장은 2021년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도 했다. 용 후보자가 자녀를 출산하면서다.
용 후보자는 2023년 5월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 부총장의 육아휴직을 거론하며 "저 같은 경우는 선출직이기 때문에 실제로 육아휴직 해당사항이 없고, 50일이 되기 전에 사무실 복귀했다"면서 "저희 남편이 선택권이 없이 강요된 육아휴직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남편이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했는데,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 복직 이후 적응에 대한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남편은 아내가 대표인 당에서 육아휴직 복귀 이후에도 요직을 거치며 사실상 경력이 끊기지 않았던 셈이다.
문제는 용 후보자의 1인 정당으로 평가받는 기본소득당이 다양한 국가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는 점이다. 기본소득당은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정당 운영을 위한 지원금과 경상보조금을 지급받는다. 기본소득당은 2026년 3분기에도 보조금으로 약 2억7709만원을 받았다.
자신이 대표인 곳에 남편이 지속적으로 당직을 맡아온 데다, 이를 두고 남편의 경력단절을 우려한 것부터 전형적인 내로남불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아내가 절대 권력을 쥔 정당에서 사실상 '셀프 고용' 상태로 일하는 남편이 진짜 경력 단절을 우려했겠느냐는 지적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일반 직장인 부부의 육아 고충에 빗대어 자신들의 '가족정당 운영'을 포장하는 데 활용했다는 질타가 쏟아지는 이유다.
주진우 국민의힘의 의원은 "남편이 육아휴직으로 경력단절을 걱정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더니, 결국은 걱정 없이 본인이 대표 체제에서 핵심 요직을 거쳤다. 본인이 남편의 경력 단절 해결사인 셈"이라면서 "국가 지원을 받는 정당에 남편을 당직자로 월급 받게 했다면 장관으로 자격이 있느냐"고 했다.
한편, 용 후보자는 장관 임명 후에도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고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직을 겸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무위원 겸직이 가능하다. 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아도 다음 순번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해 의정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만큼 입각 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관례로 통했다.
용 후보자는 1990년 경기 부천 출생으로 경안고등학교와 경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대생으로는 처음으로 장관 후보자에 지명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