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시기에 갑작스럽게 물러난 '청와대 최고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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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정책 주도한 책임 지고 물러난 '청와대 정책 컨트롤타워'
개각 명단에서 이름이 빠졌던 인물이 이틀 만에 스스로 자리를 내려놨다.

사퇴 시점이 이례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 등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단행했다. 부동산·증시 정책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김 실장은 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직도 전원 유임됐다. 당시만 해도 정부 정책 기조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김 실장이 개각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 관측은 뒤집혔다.
김 실장의 사퇴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첫 실장급 교체다. 부처 장관 교체와 달리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진의 변화는 국정 운영 방식에 직접 영향을 준다. 이 때문에 이번 사퇴가 단순한 문책을 넘어 정책 노선의 조정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김 실장은 금융·거시경제 정책 분야에서 오래 일한 관료 출신이다. 정책실장에 오르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 등을 지냈다. 초대 정책실장에 임명된 뒤 15개월 동안 경제·산업·재정·부동산·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재임 기간 추가경정예산 등 확장 재정을 통한 경기 진작과 자본시장 활성화,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 정책을 주도했다. 법인세율과 증권거래세를 종전 수준으로 되돌려 세입 기반을 넓힌 것도 성과로 꼽힌다. 한미 관세협상을 마무리 짓는 데도 일조했다. 최근 발표된 정부 최대 역점 사업인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런 이력 탓에 한때 김 실장이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발목을 잡았다. 이 상품은 지난 7월 말 국내 시장에 등장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종목에 두 배로 투자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환율 안정을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큰 코스피 시장에 레버리지 ETF가 상장된 뒤 증시는 급등락을 반복했다. 상품 상장 이후 코스피는 짧은 기간에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변동성이 커지면서 개인 투자자의 피해 우려도 커졌다. 레버리지 ETF 도입을 주도한 인물이 김 실장이라는 점에서 책임론은 곧바로 그를 겨냥했다. 야당은 충분한 검토 없이 상품이 상장돼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김 실장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ETF 3인방'으로 지목해 사퇴를 요구했다.
김 실장의 발언도 논란을 키웠다. 그는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서 상장회사 이익이 800조~900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근거로 코스피가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 증시 시가총액이 2~3년 뒤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 3강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도 내놨다. 이후 증시가 출렁이자 다른 나라 시장도 비슷하다는 취지로 대응했다. 이 발언은 이른바 '개미 탓' 논란으로 번졌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내 증시가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였다며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부동산 정책에서도 김 실장 발언은 파장을 낳았다. 그는 반도체 호황을 근거로 낙관론을 폈다. 반도체가 벌어들인 국부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흡수되면 호황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매매가와 전·월세가 동시에 오르는 '트리플 강세'가 나타났다. 김 실장은 이에 대해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 초고가 1주택은 실거주용이라도 일반 주택과 다르게 봐야 한다는 발언은 정부 세법 개정안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초고가 주택 보유세 인상 기조는 유지했다. 보유세를 올리는 대신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낮춰 매물을 유도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이 방향이 오히려 매물 잠김을 부추긴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기업 초과이익을 나누는 이른바 '국민 배당금' 구상은 시장에 혼선을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동산 공급 정책의 혼선도 책임론에 더해졌다. 정부는 출범 이후 주택 공급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다. 8·13 대책은 신규 택지 10만가구를 포함해 수도권에 23만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대책이 나올 때마다 보완책이 뒤따랐다.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수도권에 150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신규 공공택지 7만3000가구 공급을 비롯한 후속 절차는 새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몫으로 넘어갔다.
김 실장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되면서 야당의 사퇴 요구를 받아왔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책임론이 불거졌다. 정책 책임자인 김 실장의 유임을 두고 강한 비판이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짊어질 인물이 필요하다는 기류도 감지됐다.
배경에는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 하락이 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처음으로 30%대까지 떨어진 뒤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 내부의 부담도 커졌다. 여당 내부에서는 지지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당 지도부와 소속 의원들의 동요가 커진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이 35% 아래로 내려가면 올리기 어렵고 당부터 균열이 생긴다는 우려가 청와대로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실장이 이 같은 기류에 큰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을 유임시킨 결정이 논란을 키웠다. 정책 실패의 핵심 책임자를 그대로 둔 채 실무진만 바꿨다는 비판이 여야 양쪽에서 나왔다. 개각이 여론을 진정시키기보다 김 실장을 향한 사퇴 압박을 되살렸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경제부총리와 국토교통부 장관에 이어 정책 컨트롤타워인 정책실장까지 물러나면서 2기 국정운영을 위한 경제라인 재정비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부처 장관 6명을 교체할 때만 해도 인적 쇄신의 범위는 내각에 한정되는 듯했다. 김 실장의 사퇴로 쇄신은 청와대 정책라인으로 옮겨붙었다. 집권 2년 차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는 이 대통령의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실장의 사퇴로 정부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 부동산 세제개편안 원안을 상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날 수정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안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공제액을 거주 여부에 따라 차등하는 내용이었다. 실거주자에게는 14억원, 비거주자에게는 9억원을 공제하는 방식이다. 이 가운데 비거주 공제액을 12억원으로 올리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제개편안 상정이 미뤄지면서 정책 방향의 재검토가 시작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청와대는 구체적인 김 실장 사퇴 배경을 설명하지 않았다. ETF 논란만을 사퇴 이유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있다. 다만 야권과 여권 양쪽에서 제기된 책임론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후속 인적 개편도 거론된다. 정책실장 후임 인선을 포함한 정책라인 연쇄 이동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정감사 이후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교체 가능성도 나온다. 국정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청와대 참모진 개편이 추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청와대는 후임 인선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