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사망한 육군 병사 추모식...“다음에도 엄마 아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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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병으로 쓰러진 장병, 의료진 부재와 군의 부실 대응

지난해 여름 폭염 속에서 부대가 계획한 마라톤 훈련에 참가했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진 육군 장병의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유가족은 이날 군을 향해 “어떤 훈련과 행사도 장병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며 재발 방지를 거듭 호소했다.

지난달 30일 국립대전현충원 충혼당에서는 지수혁 육군 일병(상병 추서)의 추모식이 열렸다. 지 일병이 숨진 지 약 1년 만이다.

지 일병은 지난해 8월 부대가 마련한 9.13㎞ 달리기 훈련에 참가했다가 쓰러졌다. 이후 열사병에 따른 장기 손상 등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지 일병은 당시 입대한 지 약 4개월 된 취사병이었다. 평소 일반 병사들과 달리 야전훈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부대 일과에서도 취사 업무 때문에 별도의 체력단련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 지수혁 상병 / 유튜브 'YTN'
고 지수혁 상병 / 유튜브 'YTN'

문제의 훈련은 기존에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체력단련이 아니었다. 당시 육군 8사단은 6·25전쟁 당시 영천대첩 승리를 기념한다는 취지로 승전일인 9월 13일을 상징해 9.13㎞를 달리는 행사를 계획했다.

JTBC가 공개한 당시 부대 내부 문건에는 해당 행사의 목적이 ‘부대 단결과 장병 체력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러닝’으로 기재돼 있었다. 하지만 참가율과 완주율에 따른 포상까지 마련되면서 단순한 친선 행사보다는 사실상 부대 훈련의 성격이 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기존 간부 체력검정의 달리기 거리가 3㎞였던 것과 비교하면 9.13㎞는 세 배가 넘는 거리였다. 당시 사단장이었던 이수득 전 8사단장이 해당 행사를 기획했고, 각 부대의 참여를 독려하면서 지 일병 역시 훈련에 참가하게 됐다.

훈련 당일의 기상 조건도 좋지 않았다. 당시 최고기온은 31도까지 올랐고, 전날 비가 내린 영향으로 습도는 약 70%까지 높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높은 기온과 습도가 겹치면 땀의 증발이 어려워져 체온을 낮추기 힘들기 때문에 장시간 달리기에서는 열사병 등 온열질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지 일병에게는 특히 부담이 컸다.

취사병이었던 그는 대회 당일에도 새벽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오전 7시까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정리한 뒤 곧바로 달리기 훈련에 참여했다. 평소에도 이른 시간부터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차례로 준비하고 막내 병사로서 청소까지 맡으면서 체력 회복에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지 일병은 달리기를 시작한 뒤 약 8㎞ 지점에서 쓰러졌다. 결승선까지는 약 1㎞가 남은 상황이었다.

유튜브 'KNN NEWS'
유튜브 'KNN NEWS'

그러나 당시 현장에는 군의관이 없었다. 당일 군의관이 비번이었던 데다 부대가 별도의 구급차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훈련에 참가했던 간호장교가 뒤늦게 현장에 도착해 대응했고, 지 일병은 응급장비가 갖춰진 구급차가 아닌 군 차량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이미 상태가 심각하게 악화된 뒤였다. 지 일병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닷새 뒤 열사병으로 인한 장기 손상 등의 이유로 숨졌다.

열사병은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체온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겨 심부체온이 위험할 정도로 상승하는 질환이다. 심한 경우 뇌·간·신장 등 여러 장기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신속한 응급처치와 체온을 낮추는 조치가 중요하다.

군 당국은 사건 수사 과정에서 부대 관계자들의 과실을 인정했다. 영관급 장교 1명과 위관급 장교 1명 등 지휘관 2명은 경찰에 이첩됐다.

다만 최초로 훈련을 기획하고 지시를 내린 이 전 사단장은 처음에는 입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가족과 정치권에서는 책임 범위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유가족은 이 전 사단장 등을 직접 고소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추가 수사를 진행한 뒤 이 전 사단장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모두 4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당시 위험성 평가와 관리·감독 의무를 규정한 군 내부 규정이 있었음에도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 등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육군 8사단 공식 마크
육군 8사단 공식 마크

위험성 평가는 훈련이나 작업을 실시하기 전에 예상되는 사고 위험을 미리 확인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절차다. 특히 폭염과 같은 기상 조건에서 장시간 체력을 소모하는 훈련을 실시할 경우 참가자의 건강 상태와 훈련 강도, 의료지원 및 응급이송 체계 등을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전 사단장은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에도 자리를 유지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육군 8사단 소속 부사관 1명이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육군은 부대 지휘와 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지난달 25일 이 전 사단장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지 일병 유가족은 이 과정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이미 지 일병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를 통해 이 전 사단장의 책임이 인정됐는데도 장기간 지휘관 직을 유지했고, 이후 또 다른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 지수혁 상병 / 유튜브 'YTN'
고 지수혁 상병 / 유튜브 'YTN'

지 일병의 어머니는 1주기 추모식에서 아들을 군에 보낼 당시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는 “국가가 부른 우리 아들이 맡겨진 임무를 다한 뒤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 지휘부를 향해 장병을 단순히 숫자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옆에 있는 병사들을 한 명의 병력으로만 바라보지 말아 달라”며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뒤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어떤 훈련도, 어떤 행사도, 어떤 성과와 실적도 한 사람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추모식에 참석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청년들이 국가의 관리와 보호가 부족해 희생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사건을 두고 국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 일병의 죽음은 군 훈련에서 ‘얼마나 많이 참여했는가’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훈련을 진행했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되돌아보게 한다.

지 일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빈소에 남긴 마지막 글에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다음에 우리 꼭 만나자. 그때도 꼭, 엄마 아들 하자. 사랑한다, 우리 아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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