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암흑기' 본격 시작인가… 오늘(2일) 들려온 뼈아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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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박지성 입단 이후 21년 만에 '코리안 리거' 부재

2026~2027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여름 이적시장이 2일 오전 7시(한국시간)를 기점으로 공식 종료됐다. 이번 이적시장에서 EPL 구단들은 무려 34억 1000만 파운드(약 6조 3100억 원)에 달하는 총지출액을 기록하며 불과 1년 만에 역대 최고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황희찬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돌파하고 있다. / 뉴스1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황희찬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돌파하고 있다. / 뉴스1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고 역대 가장 활발한 이적이 성사된 화려한 시장이었지만 국내 축구 팬들에게는 깊은 아쉬움을 남기게 됐다. 올 시즌 EPL 무대를 꾸준히 누비는 한국 선수의 모습을 사실상 찾아볼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21년 만에 멈춘 'EPL 코리안 리거'… 2026-27시즌 주전 전멸

이적시장 마감 직전까지 수많은 선수들의 이동이 급물살을 탔으나 끝내 EPL로 새롭게 향하는 한국 선수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축구 팬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황희찬은 지난 시즌까지 울버햄프턴 소속으로 활약했으나 팀의 2부 리그 강등 이후 새로운 둥지를 모색한 끝에 독일 분데스리가의 샬케04로 최종 이적을 확정 지었다. 황희찬의 독일행으로 이번 시즌 EPL 1군 무대에서 활약할 한국인 필드 플레이어의 존재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지난해 대전 유성구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넣은 손흥민 기뻐하고 있다. / 뉴스1
지난해 대전 유성구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초청 국가대표팀 친선경기’ 대한민국과 볼리비아의 경기에서 프리킥 골을 넣은 손흥민 기뻐하고 있다. / 뉴스1

현재 EPL 소속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국 선수는 브렌트퍼드의 김지수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박승수뿐이다. 두 선수 모두 1군 선수단 등록이 완료돼 이론상으로는 언제든 EPL 공식 경기에 출전할 자격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김지수와 박승수는 시즌 초반부터 1군이 아닌 U21(21세 이하) 팀과 동행하며 적응기를 거치고 있다. 각 구단 내 치열한 주전 경쟁 구도를 고려할 때 이들이 빠른 시일 내에 1군으로 도약해 정규 리그 경기에 지속적으로 출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이적시장이 열려 있는 다른 유럽 리그나 하위 리그로의 임대 이적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결국 김지수나 박승수가 극적인 반전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2026~2027시즌 EPL 무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 현실화됐다. 이는 2005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포문을 연 이래 21년 만의 일이다.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황희찬 등으로 이어지며 단 한 시즌도 빠짐없이 지속돼 온 'EPL 코리안 리거'의 계보가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처음 멈춰 서게 됐다.

뉴캐슬 박승수가 지난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쿠팡플레이 시리즈 팀 K리그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고 있다..  / 뉴스1
뉴캐슬 박승수가 지난해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쿠팡플레이 시리즈 팀 K리그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고 있다.. / 뉴스1

이런 상황은 국내 축구 팬덤과 스포츠 미디어 시장에도 상당한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EPL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는 해외 축구 리그로 자리매김해 왔다. 박지성의 맨유 시절을 시작으로 폭발했던 해외 축구 붐은 손흥민이 토트넘 홋스퍼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치면서 최정점에 달했다. 주말 밤마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국내 스포츠 팬들의 대표적인 여가 문화였다.

그러나 최근 손흥민이 미국프로축구(MLS) LAFC로 이적하면서 EPL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도가 일차적으로 감소했고 이번 시즌 1군 무대를 누빌 한국 선수마저 부재하면서 중계 시청률 등 전반적인 관심도는 더 크게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적시장 도중 "박지성과 손흥민이 만들어낸 영광스러운 날들을 지나 2005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EPL 시즌을 맞이할 수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낸 바 있는데 이런 분석이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왔다.

반면 동아시아 라이벌인 일본 축구의 상황은 정반대다. 일본은 이번 시즌 역대 최다인 10명의 선수가 EPL 구단에 이름을 올리며 리그 내 입지를 대폭 확대했다. 2005년 이후 21년 만에 '코리안 리거 제로'라는 성적표를 받아 든 한국과, 무려 10명의 선수를 EPL 무대에 올려놓은 일본의 희비는 그 어느 때보다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 축구 EPL 21년사, ‘코리안 리거’의 역사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 스포츠 팬들의 주말 밤을 책임져 온 풍경이 있다. TV 화면 속 초록색 잔디 위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를 누비는 한국인 선수들의 모습이다.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성으로 시작된 뜨거운 열기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 축구의 자부심이자 스포츠 문화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EPL 내 ‘코리안 리거’의 화려한 계보는 이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자 새로운 과제를 맞이하고 있다.

박지성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인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박지성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에 위치한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인 '치바스 바예 베르데'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2005년, 박지성이 세계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 한국 축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산소탱크'라 불리며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맹활약한 박지성의 성공은 유럽 빅리그가 한국 선수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이어진 이영표의 토트넘 홋스퍼 입단은 한국 축구 선수가 세계 최고 리그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결정적 계기였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연 개척의 길을 따라 수많은 한국 선수가 차례로 잉글랜드 땅을 밟았다. 이동국(미들즈브러)과 김두현(웨스트브롬위치 알비온) 등의 도전이 이어지며 국내 스포츠계에는 ‘코리안 리거’라는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정착했다.

이후 한국 축구의 기술적·전술적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은 이청용(볼턴 원더러스)과 기성용(스완지 시티, 뉴캐슬 유나이티드)이었다. 이청용의 날카로운 측면 돌파와 기성용의 탁월한 경기 조율 능력은 각각 팀의 핵심 자원으로 자리매김하며 현지 언론과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외에도 지동원, 박주영, 윤석영, 김보경 등 다수의 선수가 EPL 무대를 경험하며 한국 축구의 저변을 넓혔다.

FC서울 기성용이 2024년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은행 K리그1 2024 10라운드' 수원FC와 FC서울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후 박수치고 있다. / 뉴스1
FC서울 기성용이 2024년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하나은행 K리그1 2024 10라운드' 수원FC와 FC서울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한 후 박수치고 있다. / 뉴스1

한국인 EPL 잔혹사와 성장사를 넘어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2010년대 중후반에 찾아왔다. 그 중심에는 2015년 토트넘 홋스퍼에 입단한 손흥민이 있었다.

손흥민은 폭발적인 스피드와 양발을 가리지 않는 정교한 골 결정력으로 매 시즌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마침내 2021-2022시즌, 23골을 터뜨리며 아시아인 최초로 EPL 득점왕(골든부트)에 오르는 금자탑을 쌓았다. 나아가 팀의 주장을 맡아 라커룸과 필드 위를 모두 이끄는 리더로 거듭나며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뉴스1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지난 6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 뉴스1

여기에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핵심 공격수로 안착했던 황희찬의 활약이 더해졌다. 황희찬은 특유의 저돌적인 돌파와 뛰어난 득점 감각으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고 주말 밤마다 두 명 이상의 한국인 EPL 1군 주전 선수를 동시에 응원하는 풍경은 팬들에게 즐거운 일상이 됐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화려한 유산도 2026-2027시즌을 기점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2005년 박지성 입단 이후 2026년까지 단 한 시즌도 빠짐없이 이어져 온 EPL 한국인 1군 주전 선수의 맥이 21년 만에 처음으로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