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 8.93, 입소문 제대로 터졌다…2주 연속 한국 영화 ‘1위’ 찍은 작품
작성일
이정은의 눈빛으로 표현한 8년의 한, 박스오피스 1위 독주
평범한 가족이 벌인 복수극, 눈물로 극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이유
“우느라 영화가 끝났는데도 못 나가는 사람이 있더라.”

관객의 이 한 줄 후기가 영화의 흥행을 설명한다. 대규모 상영관을 등에 업은 블록버스터도,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오락영화도 아니다. 묵직한 가족 이야기와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관객을 붙잡은 영화 ‘경주기행’이 2주 연속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의 7일 오전 7시 기준 집계에 따르면 ‘경주기행’은 쟁쟁한 신작과 할리우드 대작들의 개봉 공세 속에서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상대적으로 적은 상영 횟수에도 개봉 2주 차까지 한국영화 정상을 지킨 만큼 관객들의 자발적인 추천과 입소문이 흥행을 견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치로도 반응이 확인된다. ‘경주기행’은 같은 날 네이버 기준 실관람객 평점 10점 만점에 8.93점을 기록 중이다. 먼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한 이야기, 예상 밖의 유머와 깊은 여운을 높게 평가하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추천하고 있다.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최고”…평점 8.93이 보여준 입소문

관객 반응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은 주연 배우 이정은이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한과 분노, 죄책감과 모성애를 폭발적으로 표현한 그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았다는 평가다.
한 관객은 “무거운 이야기지만 중간중간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이정은 배우는 분명 이번 영화로 상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호평했다. 또 다른 관객도 “이정은 배우의 연기에 반했다. 오랜만에 몰입해서 봤고 눈물이 나는 영화”라며 강한 여운을 전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이정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반응도 나왔다. 관객들은 “이정은 배우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네 모녀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모든 배우에게 인생 필모그래피가 될 것 같다”며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에 높은 점수를 줬다.
작품을 관통하는 가족 이야기에 공감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형제자매가 있다면, 아니 그냥 가족이 있다면 무조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후기는 복수극이라는 강렬한 외피 안에 가족의 상처와 사랑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짚은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한 관객은 “이런 한국영화만 보고 싶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력, 탄탄한 이야기까지 모두 좋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객은 “올해 본 한국영화 중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며 작품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예상하지 못한 작품을 발견했다는 놀라움도 입소문의 힘을 키우고 있다. “예상치 못한 영화를 마주했다”, “우느라 영화가 끝났는데도 못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는 후기는 관객이 극장에서 받은 충격과 여운을 고스란히 전한다.
할리우드 대작과의 경쟁 속에서 ‘경주기행’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관객은 “오디세이에 부디 이 영화가 밀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단순히 영화를 잘 봤다는 감상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관람하기를 바라는 자발적인 응원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연기와 연출, 가족에 대한 공감, 눈물과 여운을 언급한 호평이 온라인을 타고 확산하면서 ‘경주기행’은 상영 횟수의 열세를 입소문으로 극복하고 있다. 제목에 붙은 ‘평점 8.93’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실제 관람객들이 만들어낸 흥행세를 보여주는 지표다.
여행은 알리바이, 진짜 목적은 8년 만의 복수

지난 8월 26일 개봉한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떠나보낸 뒤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나는 네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 가족 복수극이다.
엄마 옥실과 세 딸 장주·영주·동주는 막내 경주의 생일을 맞아 단체 티셔츠를 입고 경북 경주로 향한다. 겉으로 보면 오랜만에 여행을 떠난 평범한 가족이지만 봉고차 트렁크에는 의문의 남자가 실려 있다.
이들의 가족여행은 알리바이일 뿐이다. 진짜 목적은 8년 전 수학여행을 떠난 막내딸 경주를 살해한 남자 백상현에게 직접 복수하는 것이다. 네 모녀는 살인범을 납치해 경주 깊은 땅에 묻으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복수 과정에서 오랫동안 감춰왔던 가족들의 본심도 하나씩 드러난다. 같은 상실을 겪었지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견뎌온 네 사람은 복수의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서로에게 품었던 원망과 죄책감, 미처 표현하지 못한 애정을 마주한다.

제목 ‘경주기행’에도 영화의 정체성이 압축돼 있다. ‘경주’는 네 모녀가 향하는 도시이면서 8년 전 세상을 떠난 막내딸의 이름이다. ‘기행’은 여행의 기록을 뜻하는 ‘紀行’인 동시에 기이한 행동을 뜻하는 ‘奇行’으로 읽힌다.
평범한 가족의 여행기와 살인을 계획하는 기이한 여정이 하나의 제목 안에서 겹치는 셈이다.
작품의 출발점에는 김미조 감독의 실제 경험이 있다. 네 자매 중 막내인 김 감독은 십수 년 전 가족과 경주를 여행하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도시의 얼굴을 발견했다. 낮에는 관광객들로 붐비던 공간이 밤이 되자 낯설고 음산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가족여행과 살인 여행을 결합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2021년 데뷔작 ‘갈매기’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김 감독은 두 번째 장편 ‘경주기행’에서 가족극과 로드무비, 스릴러와 블랙코미디를 과감하게 뒤섞었다.
이정은이 끌고 공효진·박소담·이연이 완성한 네 모녀

흥행의 중심에는 극의 단단한 축을 맡은 이정은이 있다. 그가 연기한 옥실은 재봉 솜씨 하나로 네 딸을 키운 어머니다. 막내딸이 세상을 떠난 뒤 감옥에 갇힌 듯 살아왔고,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살인범을 직접 처벌하겠다는 분노를 품고 있다.
이정은은 한과 분노, 지독한 모성애가 뒤엉킨 옥실의 감정을 눈빛과 표정, 굳게 다문 입술만으로 전달한다. 그는 “과연 복수를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 촬영 내내 고민했다”며 모든 것을 쏟아부어 캐릭터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첫째 장주는 공효진, 둘째 영주는 박소담, 막내 동주는 이연이 맡았다. 세 배우는 서로에게 거침없이 말하고 끊임없이 충돌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본능적으로 한편이 되는 현실적인 자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렸다.
살인범 백상현이 엄마를 위협하자 동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든다. 장주와 영주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엄마를 지킨다. 평소에는 티격태격하던 세 자매가 가족의 위기 앞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는 모습은 긴장감 속에서도 강한 쾌감을 만든다.

네 모녀에게 납치되는 살인범 백상현 역은 변요한이 맡았다. 이번 작품에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납치된 뒤 탈출을 시도하는 거친 액션과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눈빛으로 인물의 불안정한 내면을 표현했다.
배우들을 움직인 것은 시나리오의 힘이었다. 공효진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완성도가 높았고 유머와 날카로움이 잘 섞였다. 계속 생각나는 시나리오였다”고 평가했다. 박소담도 “연습하지 않아도 대사가 입에 붙어 나를 알고 쓰셨나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살인범을 납치하고도 밥부터 챙기는 가족
‘경주기행’은 전형적인 복수극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네 모녀는 살인범을 트렁크에 납치해 놓고도 끼니부터 걱정한다. 사람을 땅에 묻으러 가면서 작은 벌레 한 마리에도 놀란다.
누군가를 해쳐본 적 없는 평범한 가족이 나름대로 치밀한 복수 계획을 세웠지만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설프고 인간적인 행동이 예상 밖의 웃음을 만들고, 그 웃음이 멎는 순간 딸과 동생을 잃은 가족의 상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권선징악이나 강렬한 액션에만 기대지 않는다. 스릴러의 팽팽한 긴장 사이에 현실적인 가족의 감정과 유머를 배치한다.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네 배우의 충돌과 애틋함은 실제 가족을 지켜보는 듯한 생생함을 만든다.
복수라는 강렬한 소재 뒤에는 상실 이후의 삶과 위로에 관한 질문도 자리한다. 네 모녀는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상처를 꺼내고 서로의 고통을 처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머물지 않고 남겨진 사람들이 무너진 일상을 딛고 어떻게 다시 살아갈지를 따라간다.
봉준호도 극찬한 작품…“좋은 교과서 같은 영화”

봉준호 감독도 ‘경주기행’의 완성도에 찬사를 보냈다.
봉 감독은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죽이는 GV 2탄-봉준호 감독 편’에 참석해 “좋은 배우들이 좋은 각본과 연출을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사건의 무게와 인물의 감정은 깊지만, 때로는 폭소를 자신 있게 선사하는 감독의 패기가 느껴졌다”며 무거운 복수극과 유머, 가족극을 자유롭게 오가는 작품의 톤앤매너를 짚었다.
‘경주기행’은 2024년 8월 촬영을 마친 뒤 약 2년의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났다. 김미조 감독은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나보다 더 오래 기다린 분들도 많다”며 “오랫동안 꿈꿔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화려한 물량보다 배우들의 얼굴과 탄탄한 이야기, 관객들의 진심 어린 후기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경주기행’은 현재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