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역 숨 막히는 퇴근길, 한 여성이 쓰러지자 벌어진 일…댓글창 난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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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한 여성을 살린 시민들의 기적 같은 사연
“인터넷을 보면 서로 미워하고 분노하는 것 같지만, 현실의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일 뉴스 사회면을 장식하는 흉흉한 소식들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요즘이다. 인터넷과 SNS 등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분노하며, 타인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도와주면 오히려 덤터기를 쓴다'는 서글픈 괴담이 마치 상식처럼 퍼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대한민국은 온라인 속 삭막한 세상과는 전혀 달랐다.
최근 스레드에 올라온 뒤 국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쓰러진 여성을 곁에서 지킨 옥수역 퇴근길 시민들’이라는 제목의 게시물로 퍼진 사연 하나가 수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고 있다. 혼잡하고 더운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낯선 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땀방울을 흘리며 생명을 구한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다.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한 성숙한 시민의식과 그날의 긴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평범한 저녁 약속 그리고 엄습한 불길한 예감
사건은 지난달 27일 저녁 6시 30분에서 7시 30분 사이 퇴근 인파로 발 디딜 틈 없는 서울 지하철 옥수역 경의중앙선 환승통로에서 발생했다. 사연의 작성자이자 쓰러진 여성의 언니인 A씨는 이날 동생과 오랜만에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했다. 각자 퇴근 후 이동하여 옥수역에서 만나기로 한 평범하고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A씨가 약속 장소에 도착해 먼저 와 있을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수화기 너머로는 신호음만 길게 울릴 뿐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상황이지만, A씨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동생이 지난 6월 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간헐적인 실신 증세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여러 번 전화를 걸어도 묵묵부답이자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A씨는 정신없이 역사 안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통카드를 찍고 개찰구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옥수역 환승통로, 철렁했던 심장과 눈앞에 펼쳐진 광경
옥수역 환승통로는 유동 인구가 많고 구조상 통풍이 잘되지 않아 여름철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으로 악명이 높다. 먼지도 많고 열기로 가득한 그 길목 한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둥글게 겹겹이 모여 있는 모습이 A씨의 시야에 들어왔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사이를 뚫고 들어간 A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는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동생이었던 것이다. 동생은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과 체력 저하로 인해 쓰러졌고,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위급한 상태였다.
하지만 A씨가 목격한 것은 차가운 바닥에 홀로 방치된 동생의 모습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동생의 주변에는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달라붙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동생의 생명을 붙잡고 있었다.
먼지투성이 바닥에 깔린 한의사의 재킷과 가방
가장 먼저 A씨의 눈에 띈 것은 동생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맥을 짚으며 상태를 살피고 있는 한 젊은 남성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질에 시커멓게 먼지가 쌓인 환승통로 바닥에 주저함 없이 자신의 겉옷(재킷)과 가방을 벗어 던져 놓은 상태였다. 딱딱하고 더러운 바닥에 쓰러진 동생의 머리가 다칠세라, 자신의 소지품으로 푹신하게 베개를 만들어 받쳐준 것이다. 이 따뜻한 손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서울특별시한의사회의 손지훈 기획이사였다. 그는 퇴근길에 우연히 환자를 발견하고 즉각적으로 의료인의 본분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동생의 얼굴을 부여잡고 간절하게 외치는 한 젊은 여성이 있었다. "환자분, 계속 숨 쉬세요! 눈 감으면 안 돼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그녀는 의식이 넘어가려는 동생을 끈질기게 붙잡으며 호흡을 유도하고 있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여성은 삼육서울병원 중환자실(ICU)에서 근무하는 베테랑 간호사였다.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들을 매일 마주하는 그녀였지만, 병원 밖 열악한 환경에서도 망설임 없이 환자에게 달려든 것이다.
이날은 퇴근 시간대 교통체증이 겹치면서 119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려 1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의사와 간호사 두 사람은 찜통 같은 통로에서 비 오듯 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단 한 순간도 동생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구급대원이 도착해 앰뷸런스에 환자를 싣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의 상태와 응급처치 내역을 완벽하게 인계했다.

"신발을 벗기고 얼음물을 나르고"...기적을 만든 이름 모를 천사들
현장의 기적은 두 명의 의료진만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현장을 지켜본 목격자들과 A씨의 동생이 전한 당시 상황은 그야말로 시민 영웅들의 총출동이었다.
동생이 처음 갑작스러운 과호흡과 어지러움으로 비틀거리며 주저앉으려 할 때, 뒤에서 묵묵히 걷고 있던 중년의 여성 세 명이 반사적으로 달려들어 동생을 부둥켜안았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는 2차 사고를 막아낸 것이다. 이들은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고, 바닥에 동생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주변에 있던 다른 시민들도 우르르 몰려들었다. 원활한 혈액 순환을 위해 꽉 끼는 신발과 양말을 벗겨주었고, 서너 명의 시민이 동생의 팔과 다리에 하나씩 달라붙어 쉼 없이 주무르며 혈색이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어떤 시민은 땀방울이 맺힌 손지훈 한의사의 이마를 자신의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닦아주었고, 또 다른 시민들은 동생과 두 의료진을 위해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해댔다. 바쁜 걸음을 재촉하던 한 남성은 상황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이 들고 있던 휴대용 선풍기를 한의사와 환자 쪽으로 고정해 주었다. 인근 편의점으로 뛰어가 얼음물을 사다 나르며 열기를 식혀주려 한 시민도 여러 명이었다. 모두가 마치 자신의 가족이 쓰러진 것처럼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방해될까 물러났습니다"...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영웅들의 고백
A씨의 애틋한 사연이 온라인에 퍼지자, 당시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의 훈훈한 증언이 댓글로 이어지며 감동을 더했다.
당시 현장을 지나던 한 커플은 자신들을 간호사와 구급대원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여성분께서 벽을 잡고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고 도와드리기 위해 다가갔다"며 "저희가 갔을 땐 어머니뻘 여성 두 분이 동생분을 잡아주고 119에 신고해 주고 계셨다"고 당시 급박했던 첫 순간을 회상했다.
이어 "바닥에 눕힌 후 과호흡 증상이 보여 남자친구가 호흡을 천천히 유도했고, 지병이 있으신지 물어보며 초기 대응을 했다"고 적었다. 이들은 이내 손지훈 한의사와 ICU 간호사가 달려와 환자를 살피는 것을 보고, "인파가 몰려 복잡한 데다 전문가분들이 계시고 119도 오고 있는 상황이라 혹시 구조에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고 말했다. 혹여나 지장을 줄까 봐 공을 넘기고 홀연히 사라진 숨은 영웅들이었다. 이들은 "며칠 동안 계속 괜찮으신지 신경이 쓰였는데, 무사하다는 소식을 접해 정말 한시름 놓았다"며 따뜻한 인사를 남겼다.
또 다른 퇴근길 목격자도 글을 남겼다. "신발과 양말이 벗겨진 상태로 팔다리를 주물러 주시는 분들, 119와 계속 통화하시는 분들 등 예닐곱 분이 곁에 계셨다"며 "저도 무슨 일인가 싶어 서성였지만 곁에 계신 분들이 전문가 같았고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어 발걸음을 돌렸다"고 말했다. 그는 "저 말고도 지나가던 많은 분들이 걱정되는 마음으로 멈춰 서서 지켜보았다. 만약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도 그곳의 누구든 나서서 도와주셨을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숨은 온정을 대변했다.

환자 가족의 눈물 어린 감사..."저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들의 릴레이 구호 덕분에 동생은 무사히 119 구급차에 올라타 응급실로 이송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뒤 진행한 기본 검사에서는 다행히 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추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언니 A씨는 글을 통해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 여러분이 제 동생을 살리셨습니다." A씨는 특히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 느꼈던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너무 무서웠던 그 순간, 여러분들이 계셔서 '아, 나 지금 혼자 아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나와 함께 싸워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의 힘을 얻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을 숨긴 채 묵묵히 선행을 베푼 삼육서울병원 ICU 간호사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A씨에 따르면, 이 천사 같은 간호사는 동생이 응급실로 옮겨진 이후에도 "추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며 연락을 취해왔다. 심지어 자신의 동료들을 통해 응급실 검사 결과를 함께 알아봐 주고, 진료가 예약된 병원의 지인들을 동원해 돕겠다는 의사까지 밝혔다.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다시 이런 일이 있어도 뛰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간호사의 선한 마음에 A씨 가족은 깊은 위로를 받았다.
"낯선 타인을 위해 한 시간 넘게 그 덥고 더러운 바닥에 기꺼이 무릎과 자신의 물건을 내어주시고, 자신의 딸과 동생인 것처럼 곁을 지켜주신 마음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명감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있어 아직 대한민국은 살만한 것 같습니다."
A씨의 마지막 인사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팩트 체크 & 데이터] 응급처치의 생명줄, '골든타임'과 시민 대응의 중요성
이번 옥수역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시민들의 즉각적인 '초기 대응' 덕분이다. 길에서 누군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 옆에 있는 일반 시민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환자의 생사를 180도 바꿔놓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통계와 의학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뇌 손상을 막는 운명의 4분, '골든타임'
사람이 심정지나 호흡 곤란으로 쓰러져 뇌로 가는 혈류와 산소 공급이 끊기게 되면, 뇌세포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 시작한다. 대한심폐소생협회(KACPR), 미국심장협회(AHA), 소방청 ‘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 등에 따르면 응급처치의 '골든타임'은 단 4분이다. 4분이 경과하면 뇌 손상이 시작되고, 10분이 넘어가면 심각한 뇌사 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퇴근 시간대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119 구급차가 4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따라서 쓰러진 직후 곁에 있는 시민의 즉각적인 대처가 유일한 생명줄이 된다. 옥수역 사건에서도 시민들이 환자가 쓰러지자마자 눕히고, 기도를 확보하며 호흡을 유도한 조치가 뇌 손상을 막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생존율을 2배~3배 끌어올리는 '시민 심폐소생술'
질병관리청과 소방청이 공동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급성심장정지조사' 최신 통계에 따르면 일반인 목격자가 구급대원 도착 전 응급처치(심폐소생술 등)를 시행했을 때 환자의 생존율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을 때의 환자 생존율은 통상적으로 5~6%대에 머물지만, 일반인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즉각 시행했을 경우 환자의 생존율은 11~12% 이상으로 수직 상승한다. 즉, 곁에 있던 낯선 시민의 손길 하나가 생존 확률을 2.4배에서 최대 3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기적을 낳는 것이다. 뇌 기능 회복률(퇴원 후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 역시 일반인 응급처치 시 3배 이상 높아진다.
"주무르고 벗기고 말 걸어라" 초기 처치의 중요성
옥수역에 모인 시민들이 보여준 행동은 응급처치의 정석과도 같았다.
의식 확인과 호흡 유도 : 간호사와 의료진이 계속해서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눈 감지 마세요"라며 말을 건 것은, 환자의 의식 저하를 막고 스스로 자발적 호흡을 하도록 뇌를 깨우는 매우 중요한 처치다.
혈액 순환 보조 :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팔다리를 강하게 주무른 시민들의 행동은, 심장에서 뿜어져 나가는 혈액이 말초신경까지 원활하게 돌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응급 보조 행위다. 혈액 순환이 급격히 떨어지는 실신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신속한 119 신고와 분업 : 쓰러지는 순간을 목격한 시민이 즉각 119에 신고하고, 또 다른 시민은 부채질로 체온을 조절하며,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 원활하게 처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준 분업화된 시민의식은 2차 손상을 완벽하게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