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수능도 AI 앞에 흔들린다…논·서술형 도입 현실성 집중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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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선다 수능 한계 지적…대치동은 벌써 논술 사교육 경쟁
수십만 명 답안 채점 공정성까지…공교육 준비가 최대 변수
‘초보 컴퓨터도 쉽게 할 수 있는 시험’이라는 지적까지 나온 현행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변화의 기로에 섰다. 인공지능(AI)이 객관식 문제의 정답을 순식간에 찾아내는 시대가 열리면서 30년 넘게 이어진 오지선다형 수능이 앞으로도 학생의 역량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커지고 있다.
8일 방송되는 MBC ‘PD수첩’은 ‘A.I 시대, 기로에 선 수능’ 편을 통해 수능 논·서술형 도입을 둘러싼 논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객관식 중심 평가가 안고 있는 한계부터 사교육 확대 우려, 공교육의 준비 상황, 논·서술형 시험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채점 공정성까지 차례로 짚는다.
“초보 컴퓨터도 쉽게 할 일”…30년 넘은 수능 흔들리나

수능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지난 8월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행 객관식 수능을 두고 “이거 초보 컴퓨터가 해도 쉽게 할 일이잖아요”라고 말하며 평가 방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국가교육위원회가 ‘수능 논·서술형 도입’을 공론화하면서 교육계 안팎에서도 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빠르게 확산됐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다음 달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힌 만큼 수능 체제 변화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수능은 1993년 처음 시행돼 단순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종합적인 사고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얼마나 많은 문제를 접했는지, 정해진 풀이법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적용하는지가 성적을 좌우하는 시험으로 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예상 문제와 문제 풀이 기술을 제공하는 사교육 시장도 함께 커졌다. 문제를 많이 풀어본 수험생이 유리하다는 인식 속에 재수와 이른바 ‘N수’도 흔한 일이 됐다. 실제로 지난해 치러진 수능에서는 검정고시 출신을 포함한 N수생이 전체 응시자의 32.56%에 달했다.
AI는 정답을 1초 만에…수능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나

AI의 발전은 현행 객관식 시험을 둘러싼 논쟁에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정해진 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시험에 익숙해지지만, 생성형 AI를 비롯한 각종 기술은 사람이 오랜 시간 고민하던 문제의 답을 짧은 시간 안에 찾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교육에서는 정답 자체를 아는 능력보다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여러 정보를 종합해 새로운 결론을 만들어내는 역량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PD수첩’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행 오지선다형 수능이 AI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제대로 측정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수능을 논·서술형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정답 하나를 고르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시험 방식 변화가 실제 교육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학교 수업과 평가 체계 전반이 함께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치동은 벌써 논술 준비…“입학시험 대기만 1000번”

수능 논·서술형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벌써 새로운 사교육 경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PD수첩’이 찾은 대치동에서는 이미 논술학원을 알아보는 학부모들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고, “지금 논술학원 입학시험을 신청하면 대기 번호가 1000번 정도”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논술 과외에 한 달 50만 원 넘는 비용이 든다는 학부모들의 하소연도 전해진다. 논·서술형 시험은 문제를 풀고 정답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대비하기 어렵고, 학생이 직접 쓴 글을 교사나 강사가 읽고 구체적으로 첨삭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승해 입시 컨설턴트 역시 논술에서는 개별 첨삭이 핵심이며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미 이를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새로운 평가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공교육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는다면 그 빈자리를 사교육이 먼저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 개인별 첨삭과 글쓰기 훈련을 학교에서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경우 경제력에 따라 교육 기회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토론하고 글 쓴다…공교육의 새로운 실험

반면 학교 현장에서는 기존 시험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시도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PD수첩’은 광주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학생들이 직접 자료를 찾고 토론한 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수업 현장을 취재했다.
교사가 탐구 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이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작성하고 친구들의 글을 함께 평가하는 과정까지 수업에 포함된다. 저학년 때부터 토론과 글쓰기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말하거나 글로 표현하는 데도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고 제작진은 전했다.
문제는 이런 수업을 일부 학교의 시도에 그치지 않고 모든 학교에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다. 논·서술형 수업은 교사가 학생 개개인의 답안을 읽고 피드백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객관식 수업보다 준비와 평가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교사 인력과 업무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 방식만 먼저 바뀔 경우 부담이 학교 현장에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십만 명 답안 누가 채점하나…공정성 최대 난제

논·서술형 수능 도입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꼽히는 것은 채점이다. 객관식은 정답이 명확해 대규모 응시자의 답안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논·서술형은 답안 하나하나를 사람이 직접 읽고 평가해야 한다. 같은 답안을 두고도 채점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어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한 교육 유튜버는 “몇십만 명을 사람이 다 채점해야 한다”며 실제 수능에 논·서술형 평가를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수십만 명의 답안을 일정한 기준으로 평가하려면 대규모 전문 채점 인력과 세밀한 평가 기준, 채점자 간 편차를 줄이기 위한 검증 절차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도 논·서술형 평가 운영 방식과 결과는 서로 다르게 나타났다. 중국은 대규모 답안 채점을 위해 복수의 채점자가 답안을 평가하는 교차 채점과 재검증 절차를 오랜 기간 운영해왔다. 반면 일본은 약 50만 명에 이르는 응시자의 서술형 답안을 안정적으로 채점할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학입학공통테스트의 서술형 문항 도입을 철회한 바 있다.
한국 역시 논·서술형 수능을 도입하려면 채점 기준을 얼마나 세밀하게 만들 것인지, 평가 인력을 어떻게 확보하고 교육할 것인지, 채점자에 따른 점수 차이를 어떤 방식으로 줄일 것인지 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특히 대학 입시에서 1점 차이가 당락을 가를 수 있는 만큼 채점 결과에 대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신뢰를 확보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논·서술형 수능, 공교육 전환점 될까 또 다른 입시 경쟁 될까

수능을 논·서술형으로 바꾸자는 논의의 중심에는 결국 ‘AI 시대에 어떤 능력을 평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놓여 있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는 데에는 교육계에서도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다만 시험 형식만 바꾼다고 교육이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학교 수업과 교사 업무 여건을 충분히 개선하지 않은 채 논·서술형 평가를 도입할 경우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확대될 수 있고, 수십만 명의 답안을 공정하게 평가할 채점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PD수첩’은 수능 논·서술형 도입이 공교육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학생과 학부모에게 또 다른 입시 불안과 경쟁을 안길지 국내외 사례와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살펴본다. MBC ‘PD수첩-A.I 시대, 기로에 선 수능’은 8일 오후 10시 20분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