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없애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5060이 다시 제사를 지내는 '이유'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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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없앴더니 형제와 멀어졌다, 50·60대의 후회
한때 많은 가정에서 제사는 없애고 싶은 부담스러운 행사로 꼽혔다. 하루 전부터 장을 보고 음식을 마련해야 했으며, 특정 가족에게 준비와 뒷일이 몰리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제사를 간소화하거나 완전히 없앤 뒤 몇 년이 지나자 다시 부모님 기일에 가족을 모으기 시작한 50대와 60대도 생겼다. 부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라진 자리에서 예상하지 못한 빈자리를 느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밤늦게까지 음식을 만들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의식을 치르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꺼내 든 것은 제사라는 형식 자체라기보다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던 이유에 가깝다.
1위. 제사를 없애니 형제까지 멀어졌기 때문
가족끼리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생신이나 명절을 이유로 형제자매가 한자리에 모였지만 부모님이 떠난 뒤에는 만남의 횟수부터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는 50대와 60대에게 시간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제사를 없앤 직후에는 오히려 홀가분할 수 있다.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먼 거리를 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르면 형제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시점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일이 생긴다. "언제 한번 보자"는 말은 자주 하지만 막상 날짜를 정하지 못한 채 한 해가 지나기도 한다.
일부 가족은 거창한 제사를 다시 준비하는 대신 부모님 기일에 맞춰 형제들이 식사하는 자리를 만든다. 한 사람의 집에 모여 밥을 먹고 근황을 나누는 정도지만, 날짜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평소에는 연락하기 어려웠던 형제도 그날만큼은 시간을 비워 만날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제삿날이 번거롭기만 한 날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제사를 없앤 뒤 다시 모임을 만든 이유도 조상에게 올리는 의식을 되살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흩어지기 시작한 가족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이어가기 위해서다.
2위. 부모님을 기억하는 날이 사라져서
부모님을 떠나보낸 직후에는 일상 곳곳에서 빈자리가 느껴진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가족끼리 생전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잦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슬픔의 모습도 달라진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바쁜 생활 속에서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든다.

잊으려고 해서가 아니다. 살아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기억을 꺼내는 날이 줄어드는 것이다. 자녀의 결혼과 취업, 자신의 은퇴와 건강 문제 등 새로운 일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돌아가신 부모님의 생신이나 기일도 어느 순간 달력 속 날짜로만 남을 수 있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가까운 사람을 잃은 뒤에도 기억과 삶이 오랜 시간 함께 이어지는 모습을 다뤘다. 떠난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며 바뀌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이야기를 꺼낼 때 기억은 가족 사이에서 새롭게 이어진다.
그래서 일부 가족은 제사상을 크게 차리지 않는다. 부모님이 좋아했던 국이나 과일 한두 가지를 준비하고 사진 앞에 놓는 정도로 시간을 보낸다. 형제들이 모여 "아버지는 이 음식을 좋아하셨지", "어머니가 예전에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부모의 선택과 생활을 자신이 비슷한 나이가 된 뒤에야 이해하는 순간도 있다. 그때 떠올리는 부모님의 모습은 어린 시절 기억 속 인물과 또 다르다.
제사를 다시 지내는 이유에는 이런 마음도 담겨 있다.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부모님을 가족 모두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날 하나쯤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다. 누군가에게는 종교적인 의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떠난 부모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가족 모임이 될 수 있다.
3위. 나까지 없어지면 가족이 흩어질 것 같아서
50대와 60대에 들어서면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는 부모가 가족 모임의 어른이었다. 형제와 조카들이 자연스럽게 모였던 이유도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부모님이 모두 떠난 뒤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형제들 가운데 누군가는 나이가 가장 많아지고, 명절이나 가족 행사를 챙기는 역할도 떠안게 된다. 조카들은 성장해 각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예전에는 자주 마주치던 사촌들 역시 성인이 되면 서로 연락처조차 모르는 사이가 되기 쉽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에서 사람들이 공동체 활동과 관계망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다뤘다. 현대 사회에서는 각자의 생활이 바빠질수록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약속이 줄어들기 쉽다.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50대와 60대가 다시 가족 모임을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형제들이 더 이상 함께 만날 기회가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족 관계가 이어지겠지만 다음 세대로 넘어가면 어떤 모습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걱정도 생긴다.
그래서 옛 방식의 제사를 고집하기보다는 새로운 가족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님 기일에 점심을 함께 먹거나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사진을 나누는 식이다. 장소도 꼭 큰집일 필요가 없다. 음식점에서 편하게 만나 부모님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상 위에 몇 가지 음식을 올렸느냐가 아니다. 가족이 계속 서로의 삶을 알고 지낼 수 있느냐에 더 가까운 관심이 놓여 있다. 제사가 사라진 뒤 비어버린 날짜를 다시 채우려는 이유도 결국 같은 곳에서 찾을 수 있다.
다만 과거의 제사를 그대로 되살리는 방식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남을 수 있다. 누군가는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손님처럼 앉아 있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가족을 모으기 위한 자리가 오히려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제사를 이어가는 집도 방식부터 달라지고 있다.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고 주문하거나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경우도 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의 종류를 줄이고 짧은 시간 동안 부모님을 기리는 방식도 가능하다. 형식은 바뀌어도 가족을 만나고 기억을 나누려는 마음까지 사라질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5060세대가 다시 제사를 생각하는 이유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결국 가족을 오래 이어주는 것은 화려한 제사상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보기 위해 날짜 하나를 비워두는 마음에 더 가까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