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감독 뽑는 것 맞나"… 벤투가 한국 대표팀 지원 포기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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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포옛도 막힌 '행정 문턱'… 대표팀 공채, 절차인가 장애물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첫 '공개채용(공채)' 방식을 통해 차기 사령탑으로 '엔리케의 오른팔' 로베르토 모레노(스페인) 감독을 최종 선임했다. 선임 과정 전체를 진두지휘한 현영민 전력강화위원회 체제는 잡음 없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했고 축구팬들 사이에서도 "선임될 만한 지도자가 뽑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2024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 뉴스1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 진출에 성공한 아랍에미리트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이 2024년 카타르 도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출사표를 밝히고 있다. / 뉴스1

그러나 이번 공채 제도는 화려한 결과물 뒤편에 짙은 그늘과 숙제를 동시에 남겼다. 축구 현장의 특수성과 행정적 명분이 충돌하면서 세계적인 수준의 지도자들이 서류 심사 단계에서 대거 탈락하거나 아예 지원을 포기하는 기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축구 감독 뽑는 것 맞나"… 벤투마저 발 뺀 빡빡한 서류 조건

이번 공채 과정에서 가장 눈길을 끈 비하인드는 전 한국 대표팀 사령탑 파울루 벤투 감독의 사태다. 스포츠조선 보도에 따르면 당초 벤투 감독은 6경기 임시 체제라는 조건에도 한국 대표팀 감독 공채에 지원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미 자신과 함께할 코칭스태프 사단 구축까지 마친 상태였다.

아랍에미리트 파울루 벤투 감독이 2024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조별리그 3차전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의 경기에서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아랍에미리트 파울루 벤투 감독이 2024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B조 조별리그 3차전 이란과 아랍에미리트의 경기에서 관중석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다. / 뉴스1

하지만 실제 지원 서류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벤투 감독은 끝내 응모를 포기했다. 축구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빡빡한 정량적 기준과 행정 서류 조건에 고개를 저은 것이다. 벤투 감독은 "마치 체육교사를 뽑는 것 같다. 축구 감독을 선발하는 과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촌철살인의 입장을 남긴 채 한국행 타진을 거둬들였다.

이 같은 불만은 벤투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K리그1 전북 현대의 2관왕을 이끌며 지도력을 검증받은 거스 포옛 감독 역시 서류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포옛 감독 역시 서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축구 협회와 체육회의 경직된 기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 기준 준용의 함정… 22명 중 절반 이상이 서류 탈락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가 매주 소집될 정도로 속도를 냈음에도 초기 감독 선임 작업이 더뎠던 이유는 대한체육회의 채용 기준을 축구계 현실에 맞게 ‘축구화’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잉글랜드 축구협회(FA)가 공채를 통해 토마스 투헬 감독을 선임한 사례가 있지만 인프라와 후보군의 저변이 다른 한국 축구 환경에서 대한체육회의 일반 행정 공채 기준을 준용하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 전북현대의 2025 하나은행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2대1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전북현대 거스 포옛 감독이 서포터즈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뉴스1
지난해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 전북현대의 2025 하나은행 코리아컵 결승전에서 2대1로 승리해 우승을 차지한 전북현대 거스 포옛 감독이 서포터즈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뉴스1

결과적으로 유럽 기준의 시각에서 바라본 공채 조건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었다. KFA는 마감 전 서류가 미비한 후보들에게 보충 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했으나 조건 자체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실제로 이번 공채에 도전장을 낸 22명의 지원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류 적격 심사조차 받지 못하고 탈락했다.

특히 사단 단위 지원을 의무화한 구조에서 코칭스태프 개개인의 자격 기준이 발목을 잡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를 경험한 검증된 감독이 EPL 출신 코칭스태프를 대동해 지원했음에도 팀에 포함된 한국인 피지컬 코치 1명이 '2급 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서류 탈락 처리된 허탈한 사례도 존재했다.

현영민 전력강화위원장 역시 이런 한계점을 인정했다. 현 위원장은 "전체 코칭스태프를 공개 형태로 진행하고 정량적인 평가를 적용하다 보니 감독 지원자의 역량은 훌륭함에도 함께 지원한 코치진의 자격 미달로 인해 서류에서 탈락하는 아쉬운 사례들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어떻게'에 매몰된 채 '어떤 축구'는 후순위로… "제도 개선 시급"

전력강화위원회 내부에서도 공채 방식 도입 초기부터 갑론을박이 거셌다. "성인 A대표팀 감독을 단순 공채 시험 보듯 뽑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앞서 U-20 대표팀이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공채로 선발한 경험이 있지만 국가 축구의 최상위 집합체인 A대표팀은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 2025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한 거스 포옛(전북 현대) 감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 2025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한 거스 포옛(전북 현대) 감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현재의 공채 시스템은 감독이 '어떤 축구를 구사하는지', '그 철학이 한국 축구의 지향점과 부합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보다는 서류 절차와 정량적 평가 기준을 충족했는지 여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때문에 축구계 안팎에서는 "지금과 같은 경직된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서류 준비가 완벽한 클린스만이 행정 서류가 부실한 과르디올라를 제치고 합격하는 웃지 못할 기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모레노 감독을 선임하며 급한 불은 껐지만 향후 공채 제도가 지속 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행정 편의주의적 조건과 과도한 정량 평가 기준을 대대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 위원장은 "공채 방식이 국민 여러분께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길이라고 판단해 추진했다"면서도 "향후 우리에게 가장 맞는 최적의 감독을 모셔 오기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틀 안에서 공채 제도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세부 조건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