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사표 냈다…‘테크볼 금메달’ 27세 이준석, 뜻밖의 ‘과거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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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 포기하고 도전한 27세, 테크볼로 금메달 꿈 이루다
축구 실패에서 테크볼 성공까지, 이준석의 역전 드라마
테크볼 국가대표 이준석(27)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선수단에 세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축구선수를 그만둔 뒤 족구를 거쳐 테크볼에 뛰어들고, 생업까지 포기하며 태극마크를 향해 달려온 끝에 만들어낸 결과다. 특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대기업 계약직 생산직원으로 일하던 직장에 사표까지 냈다는 그의 이력이 알려지면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이준석은 20일 일본 나고야 히가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테크볼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알리 잘릴 메즈헤르 알레야위(이라크)를 세트 점수 2-0(12-11 12-5)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대회에서 따낸 세 번째 금메달이다. 앞서 근대5종 여자 개인전 성승민과 근대5종 남자 단체전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0-3 열세 뒤집었다…첫 세트부터 극적인 역전
결승 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준석은 경기 초반 긴장한 듯 연이어 서브에 실패하며 0-3으로 뒤처졌다. 하지만 이내 집중력을 되찾았다. 상대 실수를 끌어내는 경기 운영으로 점수를 좁혔고, 5-9에서는 힘을 뺀 공격으로 득점한 뒤 두 팔을 들어 올리는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이후 상대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공격 강도를 높여 연속 득점을 올렸고 결국 10-9로 승부를 뒤집었다. 11-11에서는 강한 공격으로 마지막 점수를 따내며 1세트를 12-11로 가져갔다.

흐름을 잡은 이준석은 2세트에서는 상대에게 반격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3-2에서 상대의 연속 실수를 유도해 6-2까지 달아났고, 강한 공격을 성공시킨 뒤에는 승리를 예감한 듯 포효했다. 이후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은 채 격차를 벌여 12-5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테크볼 남자 단식의 금메달이 한국 선수 이준석에게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축구선수 꿈 접고 족구로…그때 눈에 들어온 ‘테크볼’
금메달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이준석이 이 자리까지 온 과정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그는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다. 다른 축구 유망주들처럼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월드컵 무대에 서는 것을 꿈꿨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지 못했다. 결국 21세 때 성인 4부리그 격인 K4리그를 끝으로 축구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국가대표를 향한 미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준석은 이후 족구 선수로 전향했지만 이 길 역시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새롭게 눈에 들어온 종목이 테크볼이었다. 2012년 헝가리에서 고안된 테크볼은 곡선형 특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축구공을 주고받는 스포츠다. 축구선수들이 훈련 목적으로 즐기면서 관심을 얻기 시작했고, 2017년 국제테크볼연맹이 창설되면서 전문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과거 직업은 ‘대기업 생산직’…아시안게임 위해 사표 냈다

이준석은 처음부터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생업과 테크볼 선수 생활을 병행해야 했다. 당시 그의 직업은 대기업 계약직 생산직원이었다. 그러다 올해 2월 테크볼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뒤늦게 채택됐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준석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테크볼 훈련에 전념했다. 안정적인 생업을 내려놓고 아시안게임 메달이라는 목표에 승부를 건 셈이다. 그러나 준비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테크볼 대표팀은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진천선수촌에 입촌하지 못한 채 대회를 준비했다. 이준석은 사비를 들여 테크볼 강국인 헝가리까지 향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현지 선수들에게 직접 연락해 지도를 받기도 했다.
그가 테크볼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지원도 있었다. 이준석은 “처음 테크볼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없는 살림에도 200만원의 거금을 들여 테크볼 테이블을 사주셨다”며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고,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는 집념으로 버텼다”고 밝혔다.
축구장의 1400분의 1…결국 태극마크 꿈 이뤘다

이준석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메달을 따면 테크볼이라는 종목을 널리 알릴 수 있고, 나처럼 생업을 포기하고 뛰어든 동료들이 걱정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경기 무대는 축구 경기장에서 테크볼 테이블로 바뀌었다. 규모로만 따지면 축구 경기장의 약 1400분의 1에 불과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태극마크와 메달을 향한 목표는 그대로였다.
조별리그를 무실세트 전승으로 통과한 그는 19일 준결승에서 자이드 에이단(쿠웨이트)이 경기 도중 왼쪽 허벅지 근육 파열로 기권하면서 결승행 티켓을 확보했다. 그리고 하루 뒤 열린 결승에서 우승 후보로 꼽힌 알레야위를 2-0으로 꺾었다. 축구선수 생활을 접고, 족구를 거쳐 테크볼을 선택하고, 대기업 생산직이라는 생업까지 내려놓은 끝에 이준석이 그토록 바라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축구장에서 이루지 못했던 태극마크의 꿈은 결국 테크볼 테이블 위에서 현실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