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차례 지낸다" 10가구 중 3가구도 안 된다

작성일

10년간 절반 이상 감소한 추석 차례, 무엇이 바뀌었나
전통 예법 포기하고 간소화 선택하는 현대 가족들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는 가구가 10곳 중 3곳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이 발표한 ‘2026년 추석 성수기 주요 과일류 구매 행태 및 공급 전망’에 따르면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이 있다고 답한 가구는 27.3%로 조사됐다. 지난해 40.4%보다 13.1%포인트 감소한 수치다. 2016년 조사 당시 차례상을 차리겠다는 응답이 74.4%였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47.1%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이 없다고 답한 가구는 65.3%였다. 차례를 지내겠다는 가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명절이면 으레 차례상을 차리고 조상에게 예를 올리던 가정의 모습이 점차 달라지고 있는 셈이다.

차례를 지내는 가구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차례를 지낼 계획이 있는 가구 가운데 ‘전통 예법에 맞춰 간소화’하겠다는 응답이 50.9%로 가장 많았다. ‘전통 예법에 따른 준비’는 20.1%에 그쳤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이어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한다는 응답이 13.2%, ‘가족이 직접 준비하는 음식과 구매 제품을 혼합한다’는 응답이 8.8%였다. 차례를 유지하더라도 음식 종류와 준비 방식은 가족의 상황에 맞춰 줄이는 가구가 많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2025년 조사에서 차례를 지내는 가구 가운데 ‘전통 예법을 따라 차례를 간소하게 차린다’는 응답이 58.4%로 가장 많았다. 차례를 완전히 없애는 가구가 증가하는 동시에 차례를 유지하는 가구에서도 상차림을 줄이는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차례를 지내는 장소도 조사됐다. 본가에서 차례를 지낸다는 응답이 51.3%로 가장 많았고, 본인 집이 21.2%, 친인척 집이 18.7%, 성묘지·종중 시설이 7.7%였다. 차례를 지내는 가구에서는 여전히 부모나 집안의 중심이 되는 공간에 가족이 모이는 형태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명절 음식과 식재료에 쓰는 비용은 20만원대가 가장 많았다. 추석 명절 음식과 식재료 예상 지출액을 묻자 20만원대라는 응답이 31.7%를 차지했다. 20만원 미만은 24.7%, 30만원대는 22.3%, 40만원대는 13.2%, 50만원 이상은 8.2%였다.

이번 조사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전국 가구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는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단순히 차례를 지내느냐, 지내지 않느냐의 문제를 넘어 음식 준비와 비용, 장소 등 전반적인 명절 문화에서도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명절마다 '제사'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이유

명절마다 반복되는 갈등의 중심에는 차례 준비를 둘러싼 가족 간 역할 분담 문제가 있다.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수용품을 구입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만들고 과일과 각종 음식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동이 들어간다. 차례가 끝난 뒤에는 설거지와 음식 정리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특정 가족 구성원에게 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집중되면 명절이 휴식이나 가족 모임이 아니라 노동 부담이 큰 일정으로 느껴질 수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차례 준비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누가 음식을 만들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며 누가 뒷정리를 맡을지를 놓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명절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과정 자체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거주지가 서로 멀리 떨어진 가족들은 명절마다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상황에서는 명절 연휴 동안 이동과 음식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하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연휴가 길어도 가족 구성원마다 근무 일정이나 개인적인 일정이 달라 모두가 같은 시간에 모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세대 간 인식 차이도 차례를 둘러싼 갈등의 원인이 된다. 윗세대에게 차례는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 모이는 전통적인 의례라는 의미가 크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명절에 가족이 만나는 것과 차례를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진행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는 양가의 명절 문화가 달라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한쪽 집안은 전통적인 차례상을 요구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간소화하거나 차례 자체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집에서 명절을 보낼지, 음식을 누가 준비할지,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치면서 차례가 가족 간 갈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제사를 꼭 지내야 한다는 인식도 약해져

제사와 차례를 둘러싼 인식이 달라진 것도 변화의 배경이다. 과거에는 제사와 차례가 가족 구성원이 지켜야 할 의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조상을 기리는 방식이 반드시 전통적인 제례 형식일 필요는 없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가족 구성원의 규모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여러 세대가 한 지역이나 가까운 거리에 함께 거주하면서 제사와 명절 의례를 이어가는 가정이 많았다.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로 가족 구성원이 흩어져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특정 장소에 모여 제례를 지내는 방식 자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고령화 역시 제사 문화의 변화와 연결된다. 제사나 차례를 주로 준비해 온 부모 세대가 고령이 되면서 직접 많은 음식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 자녀 세대가 이를 이어받더라도 직장과 가사, 육아 등을 병행해야 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의례를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명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명절 연휴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기간이라는 의미가 강했다면, 최근에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 자체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졌다. 여행이나 외식, 간단한 식사 등으로 명절을 보내는 가구도 늘면서 차례상을 중심으로 한 명절 문화가 유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제사 음식에 대한 인식 변화도 관련이 있다. 전통적인 제례 음식은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족 수가 줄어든 상황에서는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 남기는 것보다 가족이 실제로 먹고 싶은 음식을 적당량 준비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비용과 음식 준비 부담도 변화의 배경

경제적인 부담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명절에는 과일과 육류, 생선, 전 등 여러 식재료를 한꺼번에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식비가 증가할 수 있다.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음식을 일부 구매하는 방식은 시간뿐 아니라 음식 준비에 드는 비용과 노동을 줄이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차례를 지내겠다는 가구가 27.3%까지 줄어든 가운데 차례를 지내는 가구에서도 절반 이상이 전통 예법에 맞춰 간소화하겠다고 답한 것은 이런 변화가 차례의 존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례를 유지하면서도 음식과 절차를 줄이는 방식과 차례 자체를 생략하는 방식이 동시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명절의 가족 모임이라는 의미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차례를 지내지 않더라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거나 성묘를 하거나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가정이 있을 수 있다. 전통적인 제례 절차를 줄이는 대신 가족이 실제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를 두는 방식으로 명절 문화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도 차례를 둘러싼 가족들의 선택은 서로 다를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차례상을 유지하는 가정이 있는 한편, 음식 가짓수를 줄이거나 구매 제품을 활용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중심으로 명절 식탁을 차리는 가정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