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있으면 도망간다”…이주노동자 여권 빼앗아 보관한 전북 지자체

작성일

“MOU에 여권 보관 내용 있다”더니 확인 요구하자 “없다”…거짓 해명 논란
이주노동자 여권 60여 개 수개월 보관…출입국 조사관 요구·SBS 취재 뒤 전량 반환

한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여권을 수개월간 보관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근로자들의 작업장 이탈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이 나왔지만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22일 SBS 단독보도에 따르면 전북 정읍시는 필리핀에서 입국한 외국인 계절근로자들의 여권을 보관해 왔다. 필리핀 출신 계절근로자 카렌(가명) 씨는 지난 5월 초 입국 첫날 외국인 등록 등을 위해 정읍시에 여권을 제출했지만 이후 넉 달이 넘도록 돌려받지 못했다.

매체에 따르면 취재진이 카렌 씨와 함께 정읍시청을 찾아가 여권을 돌려주지 않은 이유를 묻자 시 관계자는 처음에는 필리핀 현지 지방자치단체와 체결한 양해각서(MOU)에 여권 보관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협약서를 보여 달라고 하자 해당 내용은 MOU에 없다고 말을 바꿨다.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이탈 방지 위해 보관”…출입국 조사관 요구 뒤 반환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정읍시는 과거 계절근로자들의 작업장 이탈 사례가 많아 이를 막기 위해 여권을 보관했다고 설명했다. 정읍시 관계자는 SBS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며 “여권은 여기 출국할 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동안에 저희가 여기서 보호하고 있는데”라고 말했다.

해당 근로자의 고용주도 “만약 여권 있었으면 아무 말 없이 도망갔을 거 아닙니까”라며 “오히려 시청에 맡겨 놓는 게 더 나았다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출동한 법무부 출입국 조사관은 시 관계자에게 여권 반환을 요구했다. 조사관이 “여권 지금 주셔야 돼요”라고 거듭 말한 뒤 시 측은 보관하고 있던 여권을 가져와 돌려줬다.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카렌 씨와 함께 정읍시로 온 계절근로자는 160여 명이다. 정읍시는 이 가운데 60여 명의 여권을 보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읍시는 SBS 취재 이후 보관 중이던 여권을 모두 반환했다고 밝혔다. 여권을 보관한 경위에 대해서는 “업무상 미숙”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정읍시는 지난 5월 말 외국인 계절근로자 인권 실태 점검에도 나섰다. 법무부가 마련한 인권 실태 점검 지표에는 계절근로자가 여권을 빼앗겼는지를 확인하는 항목도 포함돼 있다.

정읍시 관계자는 취재 과정에서 “이 근로자분이 성실하게 일을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기복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 대표는 SBS에 “인권 실태 체크리스트가 있다”며 “그것만 해봐도 자기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여권 압수’ 인권침해 신고 대상

SBS 보도화면 캡처
SBS 보도화면 캡처

여권은 국적과 신분을 확인하고 출입국 과정에서 사용하는 신분증명 문서다. 외국인 노동자가 자신의 여권을 직접 소지하지 못하거나 반환을 요구했는데도 돌려받지 못한 사례는 정부의 외국인 인권침해 점검 대상에 포함돼 있다.

법무부는 외국인 인권침해 신고 사례 가운데 임금체불과 폭행, 성폭력 등과 함께 여권 압수를 안내하고 있다. 외국인은 외국인종합안내센터 1345를 통해 관련 상담과 신고를 할 수 있다.

정부가 인신매매 피해자를 식별할 때도 여권이나 신분증 등을 본인이 직접 소지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한다. SBS는 여권을 소지하지 못하게 하거나 반환 요구를 거절하는 행위가 정부의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기준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과거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여권 압류 문제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대상이 된 사례도 있다. 인권위는 2024년 필리핀 출신 계절근로자들이 중개업자에게 여권을 압류당하고 임금을 착취당한 사건을 조사한 뒤 관계기관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외국인 계절근로자 제도는 농번기 등 단기간에 인력이 필요한 농어촌에서 외국인을 일정 기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지자체가 해외 지방정부와 협약을 맺어 근로자를 모집·배치하는 방식도 활용되고 있다.

법무부는 계절근로자 사업장을 대상으로 임금 지급과 주거 환경, 폭행·폭언 여부, 여권·통장 보관 등 인권침해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유튜브, SBS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