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콰도르 3-0 제압] 모레노, 홍명보 전술 싹 뜯어고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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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압박·체력… 데뷔전에서 남미 강호 에콰도르 ‘3-0’ 완파
재킷 벗고 열정 지휘… 하프타임 전술 수정으로 후반에만 3골
로베르트 모레노 한국 축구대표팀 임시 감독이 데뷔전에서 꺼내 든 4-4-2 포백 전술이 남미 강호 에콰도르를 상대로 무실점 3골 완승을 이끌었다. 역습, 세트피스, 지공까지 득점 루트도 다양했다.

모레노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FIFA 랭킹 32위)은 24일 경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25위)와의 평가전에서 오현규(베식타시), 손흥민(LAFC), 이동경(울산)의 연속골을 앞세워 3-0으로 이겼다. 9~10월 A매치 4연전의 첫 경기였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 한국 축구가 새 사령탑 체제에서 거둔 첫 승리다. 대표팀으로서는 간절했던 반등의 1승이다. 모레노 감독 개인에게도 의미가 작지 않다. 모레노 감독은 11월까지 계약한 임시 감독이다. 에콰도르전을 포함한 6경기 결과에 따라 정식 감독을 노려볼 수 있는 처지에서 첫 단추를 깔끔하게 끼웠다.
준비 여건은 넉넉하지 않았다. 모레노호는 지난 21일 처음 소집됐다. 주축 선수들의 소속팀 일정 탓에 제대로 된 훈련은 경기 하루 전에야 가능했다. 짧은 시간에 새 전술을 입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치른 경기였다.
"K리그서도, 국제 무대서도 유용"…정통 4-4-2 가동
모레노 감독은 지난 1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4-4-2를 대표팀의 기본 전술로 천명했다. K리그 경기를 분석해 보니 많은 팀이 이 전형을 쓰고 있다는 점, 국제 무대에서도 여전히 유용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홍명보호 시절 스리백으로 북중미 월드컵에 나섰던 태극전사들은 소집 첫날부터 4-4-2를 가다듬었다. 대표팀 전술의 뼈대가 바뀐 셈이다.
모레노 감독은 에콰도르를 상대로 변칙 없는 정통 4-4-2를 가동했다. 손흥민과 오현규가 투톱을 이뤘다. 중원은 이재성(마인츠)과 박진섭(저장)이 지켰다. 좌우 날개에는 송민규(나시오날)와 정승원(서울)이 섰다.
포백은 김민재(뮌헨)와 이한범(브루게)이 중앙을 맡았다. 좌우 풀백에는 조현택(울산)과 설영우(아우크스부르크)가 나섰다. 골문은 김승규(도쿄)가 지켰다.
간격 유지, 강한 압박, 왕성한 체력이 전술 핵심
모레노호 전술의 핵심은 간격 유지, 강한 압박, 왕성한 체력으로 압축된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자 대표팀은 최후방부터 최전방까지 좁은 간격을 유지한 채 전방 압박에 나섰다. 에콰도르의 빌드업을 초반부터 강하게 몰아붙이며 기선 제압에 나섰다.
공격할 때도 수비할 때도 4-4-2 대형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며 공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대형이 무너지지 않으니 상대가 파고들 틈도 좁았다.
에콰도르 역시 포백으로 나서며 수비벽을 단단히 세웠다. 대표팀은 중원에서 빠르게 좌우로 공격 방향을 바꾸며 틈을 노렸다. 속도감 있는 전환으로 상대 수비를 좌우로 흔들었다.
선수들의 위치 변화도 눈에 띄었다. 오현규가 오른쪽 측면으로 빠지면 정승원이 그 자리로 파고들었다. 상대 수비수의 마크를 흐트러뜨리기 위한 약속된 움직임이었다.

다만 전반은 쉽지 않았다. 조직력이 완전히 다져지지 않은 탓에 역습 상황에서 공격 자원의 수비 복귀가 늦어지는 장면이 나왔다. 순간적으로 수적 열세에 몰리는 문제도 드러냈다. 에콰도르의 압박도 매서웠다. 전반은 0-0으로 끝났다.
하프타임 처방 적중…두 번의 패스로 만든 선제골
흐름을 바꾼 건 모레노 감독의 하프타임 처방이었다. 모레노 감독은 라커룸에서 전반에 드러난 문제점을 선수들과 공유했다. 득점 기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태극전사들은 후반 들어 곧바로 그라운드에서 이를 실천했다.
후반 시작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선제골이 터졌다. 후방에서 공을 잡은 김민재가 중원의 송민규에게 빠른 전진 패스를 건넸다. 송민규는 지체 없이 전방으로 뛰어드는 오현규에게 공을 연결했다.
속도가 붙은 오현규는 페널티아크 정면에서 수비수 2명의 견제를 이겨냈다. 이어 과감한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후방에서 중원을 거쳐 전방까지 단 두 번의 패스로 완성한 교과서 같은 골이었다.
기세가 오른 대표팀은 몇 분 뒤 추가골을 뽑았다. 후반 13분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직접 차 넣었다. 각도가 거의 없는 위치에서 나온 골이었다.
2골에 만족하지 않았다. 교체로 들어간 이동경이 후반 41분 쐐기골을 꽂았다. 상대 수비진이 모두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대표팀은 정확하고 간결한 패스 연결만으로 밀집 수비를 무너뜨렸다. 지공 상황에서도 골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장면이었다.
빌드업으로 만든 선제골, 개인 기량이 빛난 추가골, 유기적인 패스로 완성한 쐐기골까지 모레노호는 월드컵 내내 이어졌던 팬들의 득점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줬다.
체력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후반 들어 에콰도르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해졌다. 반면 대표팀은 끝까지 간격과 압박 강도를 유지했다.
재킷 벗고 벤치 앞으로…"선수들이 못 보는 디테일 전달"
모레노 감독은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 있지 않았다. 경기 시작 10분도 지나지 않아 재킷을 벗어 던졌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쉴 새 없이 지시를 쏟아냈다.
모레노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감독에게는 경기 플랜이 있다. 상대의 위험한 점이 무엇인지, 우리가 준비한 계획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있다"며 "선수는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파악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벤치에서 경기를 보는 코치진은 작은 디테일이나 조정이 필요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선수들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의 위치와 공간 형성, 압박 방법 등을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재킷을 벗은 이유를 묻자 "날씨가 좋아서 벗은 것도 있다"며 웃었다.
하프타임 전술 수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모레노 감독은 "전반에 공간을 찾아 공략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하프타임에 몇 가지 작은 조정을 했다"며 "압박 방식을 조금 바꿨다. 빌드업 과정에서 공간을 더 잘 찾아내도록 했다. 동시에 상대 공격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비할 때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상대 공격을 막았다"고 강조했다.
상대에 대한 평가도 높았다. 모레노 감독은 "에콰도르는 굉장히 강한 팀이다.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실점이 적은 팀 중 하나였다"며 "피지컬이 좋고 남미에서 2, 3위 정도 하는 팀을 상대로 3-0 승리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공은 선수들에게 돌렸다. 모레노 감독은 "선수들의 재능이 차이를 만들어냈다. 불과 3일간 충분하지 않은 훈련을 했는데도 선수들이 잘해 줬다"며 "기회를 잘 만들고 골도 잘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4-4-2를 택한 배경도 설명했다. 모레노 감독은 "실제 경기장에서는 데이터나 관중석에서 보는 것만으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선수들이 현재 전술 안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 시스템(4-4-2)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축구는 팀이 하는 것"…개인 평가는 사양
손흥민의 프리킥 골에 대한 질문에는 개인 평가 대신 팀 훈련을 언급했다. 모레노 감독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페널티지역 안에서 상대 움직임을 막아 주는 스크린플레이 등 여러 움직임을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선수에 관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축구는 개인이 아니라 팀이 하는 것"이라며 "기자 여러분이 특정 선수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앞으로도 특정 선수를 개별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체 때 손흥민과 나눈 대화에 대해서도 "선수들과 나눈 대화는 비공개다. 팀 운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고 말을 아꼈다.
완승에도 들뜨지 않았다. 모레노 감독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기였다. 선수들과 팬들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가족과 함께하는 뜻깊은 휴일에 이런 결과를 선물할 수 있어 기쁘다"면서도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냉정한 태도도 유지했다. 모레노 감독은 "3-0으로 이긴 다음에 평가하는 건 조심해야 한다. 이런 결과가 나오면 좋은 것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승리했든 패배했든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나는 바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호텔에 가서 경기 영상을 보며 세밀하게 분석하는 게 내 일"이라며 "잘되지 않았던 부분,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보완해야 한다. 패배한 경기에서도 잘한 건 분명히 있다. 그런 부분을 제대로 평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강인, 황인범, 조규성은 이날 출전 명단에서 아예 빠졌다. 모레노 감독은 "의료진 권고에 따른 예방 차원이었다. 불편함과 근육 과부하가 있었다"며 "의료진에서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휴식을 줬다"고 설명했다.
패장 마르셀로 가야르도 에콰도르 감독은 "우리가 준비한 건 전반전 정도만 효과가 있었다. 선수들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후반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후반 들어 체력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충분히 휴식하며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모레노호는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