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자산서원·제동고분, 문화유산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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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림 정신과 영산강 마한문화 간직한 역사자원 가치 재조명

함평군은 함평 자산서원과 엄다리 제동고분이 지난 23일 시지정문화유산 기념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28일 밝혔다.
두 유산은 각각 조선시대 호남 사림의 학문과 정신문화, 영산강 유역에서 꽃핀 고대 마한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역사문화 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지정 예고는 함평 지역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활동 공간인 서원과 고대 사회의 장례문화와 정치적 위상을 보여주는 고분이 함께 조명되면서 함평의 역사적 층위가 한층 입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기대된다.
◆ 호남 사림의 중심지였던 자산서원
함평 자산서원은 조선 중기 호남 사림을 이끌었던 곤재 정개청(1529~1590)을 추모하고 그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자산서원은 1616년 처음 세워졌으며, 1679년에는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사액을 받았다. 사액서원은 임금으로부터 현판과 서적, 토지 등을 하사받은 서원으로, 조선시대 교육과 제향, 지역 유림 활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자산서원 역시 정개청의 학문을 기리는 제향 공간이자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며 호남 유림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서원에 모셔진 인물과 관련된 학문적 전통은 지역 선비들의 사상과 교육 활동에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시대 호남 지역의 유교문화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어졌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되고 있다.
특히 자산서원은 조선시대 정치적 변화 속에서 다섯 차례에 걸쳐 훼철과 복설을 반복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서원이 철거됐다가 다시 세워진 과정은 단순한 건축물의 변동을 넘어 당시 중앙정치의 흐름과 서원 정책, 지역 유림의 대응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록으로 평가된다.
◆ 훼철과 복설의 역사 담긴 공간
조선 후기 서원은 학문과 교육의 장소인 동시에 지역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인물을 추모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과 서원에 대한 국가 정책 변화에 따라 일부 서원은 훼철되거나 기능이 제한되기도 했다.
자산서원이 여러 차례 훼철과 복설을 거친 사실은 조선 후기 정치사와 서원 제도의 변화, 호남 유림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서원이 어떤 인물을 배향했는지, 지역 유림이 어떻게 서원을 지켜왔는지, 시대 변화에 따라 서원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산서원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건축 공간에 정개청의 학문과 사상, 지역 유림의 활동,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변화가 함께 담겨 있는 역사문화 공간이다.
자산서원에는 정개청의 저술인 『우득록』 목판도 보존돼 있다. 이 목판은 1987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자료로, 정개청의 학문적 성과와 당시 호남 사림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록유산으로 꼽힌다.
『우득록』 목판은 정개청의 사상과 학문을 후대에 전승하는 매개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자산서원과 함께 보존되고 있는 관련 기록유산은 서원의 역사성과 인물의 학문 세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 5~6세기 영산강 마한문화 보여주는 제동고분
함평 엄다리 제동고분은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 사이에 조성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고대 마한문화와 당시 함평 지역 세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고대사와 고고학 분야에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제동고분에서는 무덤의 형태와 내부 구조, 출토 유물이 함께 확인됐다. 이러한 자료는 고분이 조성된 시기의 장례 방식과 사회 구조, 지역 세력의 성격을 살펴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고대의 무덤은 단순한 매장 공간이 아니다. 무덤의 크기와 구조, 부장품의 종류, 매장 방식 등은 당시 사회의 계층과 권력 관계, 주변 지역과의 교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제동고분 역시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당시 함평 지역에 독자적인 세력이 존재했으며, 영산강 유역의 다른 세력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무덤 내부에서 확인된 청동거울은 제동고분의 가치를 높이는 주요 유물이다. 해당 청동거울은 영산강 유역 옹관고분 가운데 옹관 내부에서 출토된 최초 사례로 알려졌다.
청동거울은 당시 사회에서 장식품을 넘어 신분과 권위, 의례적 의미를 지닌 물품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제동고분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와 당시 함평 지역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자료로 해석된다. 또한 외부 지역과의 교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 고대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장소성 확인
제동고분 주변에서는 조선시대 태항아리도 확인됐다. 이는 고대에 무덤이 조성된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해당 공간이 의례적 장소 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로 인식되고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하나의 유적에서 고대 고분과 조선시대 유물이 함께 확인됐다는 점은 제동고분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정 공간이 시대가 바뀐 뒤에도 매장이나 의례의 장소로 사용됐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그 장소를 단순한 땅이 아니라 역사적·상징적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같은 장소성은 제동고분을 특정 시대에 한정된 유적이 아니라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지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바라보게 한다. 영산강 유역의 고대사회와 후대 지역민의 인식 변화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미가 크다.
함평군은 이번 지정 예고를 계기로 자산서원과 엄다리 제동고분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에 힘쓸 계획이다. 문화유산의 원형을 지키는 한편,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역사적 가치를 군민과 방문객에게 알릴 수 있는 활용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지역 문화유산은 보존만으로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일상 속에서 향유할 때 더욱 큰 생명력을 갖는다. 함평군은 앞으로 교육과 전시, 해설, 답사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두 유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이남오 함평군수는 “이번 지정 예고를 계기로 함평군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군민과 함께 향유할 수 있는 역사문화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함평군은 자산서원과 엄다리 제동고분이 각각 조선시대 호남 사림문화와 영산강 유역 고대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만큼, 두 유산을 연계해 함평의 역사성을 알리는 문화관광 자원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역사문화 정체성을 강화하고, 군민과 관광객이 함평의 오랜 시간과 이야기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넓혀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