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죽음 뒤에 권양숙 있다 해도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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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논란에 국힘 문제 제기…제작진 고발당하고 감독은 국감 출석할 판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 하이브미디어코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의 배후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시해 파문을 던진 영화 '암살자(들)'을 두고, 국민의힘 인사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연일 정치 공방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뒤에 권양숙 여사가 있다고 암시하는 영화가 나온다면 어떻겠느냐며 명확한 근거 없는 패륜적 역사 왜곡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가 나올 때마다 진영 간 대립으로 번지는 양상이 이번에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측은 영화 제작진을 경찰에 고발한 데 이어, 허진호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까지 추진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친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뒤에 권양숙 여사가 있다고 암시하는 영화는 어떠냐"고 제안 아닌 제안을 했다. 발언의 대상은 명시되지 않았으나 문맥상 진보 진영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며, 허진호 감독을 좌파 성향으로 규정하는 듯한 뉘앙스도 읽힌다.

김 전 최고위원은 "현직 대통령이던 박정희가 국민적 동정심과 애도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 자녀의 엄마인 자신의 부인 육영수를 암살토록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를 사주하고 경호실을 동원했다고?"라며 "단순한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이런 내용을 아무런 근거 없이 고인이 된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영화랍시고 만들었다고?"라고 거듭 비판했다. 이어 "아무리 세월이 흘러 대부분의 기억이 흐려졌다고 해도 역사적 사실을 이렇게 교묘하게 왜곡해 그 당시를 모르는 관객들을 가스라이팅해도 되는 거냐"고 따졌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도 전날 페이스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권양숙 여사가 사주했다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인가"라고 반문하고, 영화의 표현이 사자 명예훼손에 해당해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며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고 단언했다.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송출되는 영화 ‘암살자(들)’ 홍보 영상. / 뉴스1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송출되는 영화 ‘암살자(들)’ 홍보 영상. / 뉴스1

법적 대응도 시작됐다.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전 서울시의원은 이날 영화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와 허진호 감독, 권기준·이지민 작가를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 전 시의원은 영화 제목이 단수형 '암살자'가 아닌 복수형 '암살자(들)'이라는 점을 들어 문세광 외에 또 다른 암살 주체가 있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육 여사 시해 사건 배후에 있었거나 적어도 범행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며 "고인의 사회·역사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했을 뿐 아니라 유족들의 명예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논쟁은 다음 달 국정감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조은희 의원은 허 감독을 국감에 부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영화 '건국전쟁'의 김덕영 감독이 참고인으로 출석했고,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이 '건국전쟁'의 역사 왜곡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의힘 구미시갑 도·시의원과 당원협의회원들이 28일 상모사곡동 박정희 생가앞에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국민의힘 구미시갑 도·시의원과 당원협의회원들이 28일 상모사곡동 박정희 생가앞에서 영화 '암살자(들)'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뉴스1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일어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북한과 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광복절 연설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을 저격했으나 미수에 그쳤고, 옆에 앉아 있던 육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결론 내렸다. 문세광은 그해 1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반면 영화는 공범과 권력기관 개입 가능성 등을 시사하며 공식 수사 결과와 다른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허 감독은 역사 왜곡 의혹에 "이 작품이 숨겨진 역사적 진실이나 배후의 실체를 파헤쳐 고발하려는 목적으로 접근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유신 말기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진실을 좇아야만 했던 인물들이 느꼈을 지독한 의심, 공포, 인간적인 고뇌의 감정을 스크린에 담아내고 싶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서도 "'당신 어머니는 사실은 아버지가 암살했어'라고 암시하는 영화를 지켜보는 유가족들의 고통은 상관없다는 것이냐"며 "박근혜는 싫어하는 사람 많으니까 이런 영화도 괜찮은가"라고 따져 물었다.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이념 대립의 도구로 소비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국제시장'은 산업화 세대를 미화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서울의봄'이 개봉하자 보수 진영에서는 "군부 독재 이미지를 덮어씌웠다", "12·12 하나회를 척결한 것도 국민의힘의 뿌리인 문민정부"라는 반발이 나왔다. '건국전쟁'과 '건국전쟁2'는 진보 진영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고 제주 4·3 사건을 폄하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치권의 공방과 별개로 영화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암살자(들)'은 개봉 직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27일 기준 누적 관객 156만 명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