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은 달라도 한 지붕 아래 사는 형제들…“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그룹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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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홈 운영 10년차, 이시은 원장 인터뷰
남아 7명 돌보며 엄마·고모·이모·삼촌으로 불려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활하며 자립 지원
이번 추석 형제들은 경기 이천과 여주로 2박 3일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와 숙소도 아이들이 함께 의논해서 정했다. 얼핏 보면 '아들 부잣집' 같은 이들은 사실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니다. 둥지에서 날아오를 그날까지, 추억과 함께 한 뼘씩 자라며 더불어 사는 아이들이 있다.

그룹홈(공동생활가정)이란?
학대와 방임, 유기, 가정의 어려움 등 여러 사정에 처한 일부 아이들은 원가정을 떠나 자란다. 이들은 위탁가정, 양육시설 등에서 자라나고 보호가 끝나면 스스로 삶을 꾸려가야 한다. 이 가운데 아동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정과 유사한 주거환경에서 양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소규모 아동보호시설로 역할한다.
오후 4시가 지나자 한적했던 집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집안의 어린 동생들이 하나둘씩 귀가하면서다. 시험기간이라 일찌감치 학교를 마치고 방에서 머물던 사춘기 중학생 형들도 동생들이 오자 얼굴을 비치며 괜스레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여느 형제들 같은 모습이지만 이들은 같은 핏줄이 아니다. 성도 생김새도, 나이도 제각각이지만 또 다른 가족의 모습으로 만났다. 추석 연휴를 앞뒀던 지난 21일, 경기 고양에 위치한 앤하우스 그룹홈을 찾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그룹홈, 어느덧 10년 차

그룹홈은 7인 이하의 아동청소년들이 사회복지종사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아동그룹홈은 520여 곳이다. 경기 고양에서는 5개의 그룹홈이 역할한다. 그중 앤하우스는 남자 아동 그룹홈으로 지금까지 10명의 아동을 품었고 3명은 자립해 퇴소했다. 현재는 초등학생 2명과 중학생 4명, 군 입대한 대학생 1명이 머무르고 있다.
시설장인 이시은 원장(59)은 아이들에게 '엄마'로 불린다. 여성 종사자 2명과 남성 종사자 1명은 각각 고모와 이모, 삼촌으로 지칭된다. 사회복지시설은 특별한 사람들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 원장은 2017년부터 그룹홈을 시작해 어느덧 운영 10년 차가 됐다.
이 원장은 "이전까지 어린이집을 했다. 내가 사회복지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던 선생님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다고 하길래 '나도 해볼까?' 싶어서 공부하게 됐다. 소름 돋게 1급을 한 번에 땄다"고 웃었다. 이때부터 사회복지에 관한 생각을 마음 한편에 두게 된 이 원장은 어린이집을 정리하게 되면서 그룹홈을 운영하게 됐다.
그룹홈은 운영비와 인건비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받지만 초기 진입 시에는 자비 충당도 감안해야 한다. 이 원장은 "본래 신규 시설은 1년 이상 시설장이 자비로 운영하며 역량을 평가받아야 한다. 그 기간에는 지원을 못 받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앤하우스는 지역 내 다른 그룹홈이 폐원하게 되면서 긴급 지원을 받게 돼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이 원장은 "(폐원한 곳으로부터) 아이들이 저희에게로 한꺼번에 오게 되면서 바로 지원받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선배 그룹홈을 하셨던 분들을 보면 목사님이 많다. 주변 아이들 한두 명씩 돌보며 보조금 없이 시작하신 거다"라고 말했다.

원가정 밖에서 모인 아이들

이 원장에게는 아들만 두 명이 있다. 그룹홈에 '앤하우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는 앤처럼 예쁜 딸아이들을 돌보겠다는 마음이 담겼다. 다만 운영 초기 남아를 가장 먼저 받게 되면서 남자 아동 그룹홈을 이어가게 됐다. 이 원장은 "막상 운영하니 남자아이들도 못지않게 예쁜 것 같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다. 아버지가 교도소에 간 아이, 부모의 이혼 뒤 고령의 조부모 손에 길러지다 양육이 어려워진 아이, 처지가 어려운 미혼모가 낳은 아이, 입대한 아버지로 인해 홀로된 아이 등 원가정으로부터 안전하고 지속적인 돌봄을 받지 못했다.
올해 3월 앤하우스에 오게 된 민휘(가명)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다. 오자마자 귀여움을 잔뜩 받는 막내자리를 차지했다. 이 원장은 "경기 안성에 계시던 친한 그룹홈 원장님이 퇴원하시면서 아이를 특별히 제게 부탁하셨다. 애교가 너무 많고 예쁘다"고 말했다.
민휘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생후 2개월부터 시설에서 길러졌다. 원장님들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붙임성도 좋았다. 아이는 이날 기자에게도 "초콜릿 좋아하느냐"면서 자신이 먹고 있던 과자를 내밀었다. 개인 서랍장 속 과자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여주기도 했다.
바로 위에 형은 성민이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성민이는 졸지에 막내 자리를 뺏겼다. 이 원장은 "막내가 밝고 예쁘니 자기도 보면 밉지는 않지만, 또 질투가 있기도 하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성민이는 본래 해외입양이 예정됐던 아이였다. 위탁모에게 길러지다 미국으로 가기 전, 근육이 소실되는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아 입양되지 못했다. 성민이를 받기까지 이 원장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감내하기로 했고 7살에 만난 성민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다.
이 원장은 "(성민이의 병이) 낫는 병이 아니라 지금은 더 심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합병증 위험 때문에 소아신경과 말고도 안과, 치과, 이비인후과 등 여러 곳을 돌아가며 검진받다 보니 한 달에 한 번씩은 병원에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3교대로 아이들 돌봐…더불어 성장하는 아이들이 '원동력'
이 원장은 출퇴근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학원에 다녀온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퇴근 시간을 넘기는 일도 부지기수다. 세 명의 종사자는 3교대로 나눠 근무한다. 두 명이 2.5일씩 평일을 맡고 다른 한 명이 주말을 담당하는 식이다.
운영이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기도 하고, 물건을 훔쳐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적도 있다. 그럼에도 이 원장은 그룹홈 운영을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이 원장은 "가족을 어느 순간 없앨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가족이 힘들다고 해서 이제 우리 가족 파하자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선생님들이 서로 도와서 함께 하니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종사자들도 가족이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다. 10년째 함께하며 고모로 불리는 성경숙(64) 씨도 "(돌봄 과정에서) 판단이 안 설 때가 있다. 아이들이 규칙을 어길 때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싶다. 이럴 때면 '내 자식이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렇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런 노력을 아는지 아이들도 서로를 도와간다. 특히 몸이 불편한 성민이가 외출할 때면 다른 아이들이 가서 업거나 부축하기도 한다. 이 원장은 "그런 모습을 보면 (운영의) 원동력이 온다"고 말했다.
경숙 씨 역시 "아이들이 어디 가면 '고모 생각나서 가져왔어요' 할 때가 있다. 아이들에게 정말이냐고 (짓궂게) 물어보지만 내심 참 뿌듯하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은 닥쳐오고 있는 정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설장의 경우 65세가 되면 인건비 지원이 끊기고 자격을 이어가기 어렵다. 종사자 경숙 씨 역시 당장 내년이 정년이다. 아이들의 환경이 불가피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시설장이) 퇴직할 나이가 되면 (그룹홈이) 자연스럽게 폐원의 길을 걷기 쉽다. 그래서 70세까지는 연장해달라고 많이들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둥지 날아오를 아이들…"이곳의 삶이 추억되고 밑거름되길"

보호 아동들은 만 18세 이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다만 본인이 희망한다면 25세까지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지자체에 따라 1000만 원~2000만 원 수준의 자립정착금을 지원받고 사회에 나선다. 그룹홈 아이들도 머지않아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이 원장은 아이들에게 "떠나더라도 또 다른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는 "몸은 다른 곳으로 가도 우리는 늘 가족이라고. 성인이 돼서 사회에서 좋은 관계로 만나자고 한다"고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다만 이 시기 아이들에게 원가정 문제가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부모가 자립정착금이나 주거 지원 등의 경제적 기반을 노리고 접근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이 원장은 "이때부터 원가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을 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지만 막상 부모가 나타나면 돈을 빼앗기더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돈을 갈취당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그룹홈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 원장이 아이들에게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힘든 상황은 극복하고 이곳에서 행복을 하루하루 쌓자고. 그러면 이곳의 삶이 추억이 되고 밑거름이 돼서 언젠가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지역 사회에서 여러 도움을 받는다.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받는 것들이 있으니 나중에 갚아야 한다고도 가르침을 준다"면서도 "(주변에서) 시설 아이라고 낙인찍는 경우가 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는 "이 아이들이 잘못해서 상황이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라며 "보듬고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