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였다니…횡단보도 신호등 숫자가 딱 ‘6초’까지만 표시되는 이유

Google 검색에서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빨간불이 켜진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숫자는 분명 줄어들고 있는데 어느 순간 표시가 사라지고, 초록불이 켜질 때까지 깜깜한 상태가 이어진다. 3초, 2초, 1초까지 보여주면 더 편할 것 같은데, 신호등에는 왜 6초까지만 표시되고 마지막 5초는 안 뜨는 것일까. 여기에는 보행자의 안전과 직결되는 설계 의도가 있었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기사 내용 토대로 AI툴 활용해 제작한 자료사진.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이란

먼저 해당 신호등이 무엇인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은 보행 신호등에서 녹색 신호의 남은 시간뿐 아니라 적색 신호의 남은 시간까지 알려주는 장치를 가리킨다. 기존 보행 신호등이 초록불이 꺼지기까지 남은 시간 위주로 정보를 제공했다면, 이 신호등은 빨간불 상태에서도 초록불이 켜지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숫자로 보여준다.

최근 전국 곳곳의 횡단보도에서 이런 신호등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데에는 제도 변화가 있었다. 경찰청은 2022년 2월 횡단보도에 적색신호 잔여시간 표시장치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보행신호등 보조장치 표준지침'을 개정했다. 지침이 바뀌면서 지방자치단체가 보행자 편의와 교통안전을 목적으로 해당 장치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먼저 쓰이고 있었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은 적색 잔여시간 표시 방식을 일찍 도입했고, 실제로 교통사고 발생이 줄어드는 효과를 봤다. 국내 도입은 이들 국가보다 늦었지만 설치 속도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빨라지는 흐름이다.

국내에서 이 신호등을 가장 먼저 설치한 곳은 경기 의정부시였다. 의정부시가 8월에 설치한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부산시가 무단횡단으로 인한 교통사고 다발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도입했다. 부산시가 설치 장소를 사고 다발 지역으로 잡았다는 점은 해당 장치의 목적이 단순한 편의 제공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무단횡단 사고가 잦은 곳에 먼저 투입했다는 것은 사고 예방 수단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기다림의 답답함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보행자는 빨간불 앞에서 언제 신호가 바뀔지 알 수 없을 때 조급함을 느끼기 쉽다. 남은 시간이 숫자로 보이면 기다릴지 말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 무단횡단을 시도하려는 충동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해당 장치가 보행자의 답답함을 해소하고 무단횡단을 예방하는 효과를 노리고 설치되는 이유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 뉴스1
적색 잔여시간 표시 신호등. / 뉴스1

잔여시간이 '6초'까지만 표시되는 이유

그렇다면 가장 궁금한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하필 마지막 6초는 표시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보행자의 예측 출발을 막기 위해서다. 적색 신호 종료까지 남은 시간이 6초 이하가 되면 신호등은 시간 표시를 멈춘다.

만약 3초, 2초, 1초까지 숫자가 그대로 보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행자는 초록불이 켜지기 직전에 미리 도로로 발을 내딛는 예측 출발을 하게 된다. 숫자가 0에 가까워질수록 서둘러 움직이려는 심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시점에 도로 위 상황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기 직전에는 우회전 차량이나 신호 꼬리물기 차량이 교차로 안에 남아 있을 수 있고, 이들과 충돌할 위험이 매우 커진다.

그래서 마지막 5초 동안은 숫자를 숨긴다. 보행자가 초록불로 바뀌는 순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에 건너도록 유도하는 안전 설계다. 숫자에 의존해 타이밍을 계산하는 대신 실제 신호 변화를 보고 움직이게 만든다는 뜻이다. 표시를 일부러 끊는 방식으로 보행자의 행동 습관을 안전한 쪽으로 바꾸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횡단보도. / 뉴스1
횡단보도. / 뉴스1

매일 건너는 횡단보도 신호등, 알고 보면 모르는 내용 '톱3'

3위. 보행자 초록불 시간은 수학 공식으로 정해진다

신호등 숫자와 관련해 또 하나 알아둘 만한 내용이 있다. 보행자 초록불이 켜져 있는 시간은 감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경찰청 표준 매뉴얼에 명시된 계산 공식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 도로의 기준은 이렇다. 보행자가 도로로 들어서는 기본 진입시간 7초에 횡단보도 길이 1미터당 1초를 더한다. 성인의 평균 보행 속도를 초당 1미터로 보고 만든 공식이다. 공식으로 정리하면 기본 7초에 횡단보도 길이(m)를 더하는 방식이다.

15미터 횡단보도를 예로 들면 7초에 15초를 더해 총 22초가 된다. 같은 공식을 다른 길이에 적용해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20미터 횡단보도는 27초, 30미터 횡단보도는 37초가 보행자에게 주어진다. 횡단보도가 길어질수록 초록불 시간도 1미터당 1초씩 늘어나는 구조다.

교통약자 보호구역은 계산 방식이 다르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보호구역에서는 보행 속도가 느린 교통약자를 배려해 보행 속도를 초당 0.8미터로 낮춰 적용한다. 1미터를 건너는 데 1.25초를 부여하는 셈이어서 일반 도로보다 여유가 크다. 공식은 기본 7초에 횡단보도 길이를 0.8로 나눈 값을 더하는 방식이다.

같은 15미터 횡단보도에 적용하면 7초에 18.75초를 더해 약 26초가 나온다. 일반 도로의 22초와 비교하면 약 4초 더 길게 유지되는 것이다. 20미터 횡단보도라면 7초에 25초를 더해 32초로, 일반 도로 27초보다 5초가 길다. 횡단보도가 길수록 두 기준의 격차도 함께 벌어진다.

2위. 초록불이 깜빡일 때 건너면, 보행자 과실로 잡힐 수도 있다

신호등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초록불 점멸에 관한 것이다. 많은 보행자가 초록불이 깜빡이면 속도를 내서 뛰어 건너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실제 의미는 다르다.

도로교통법상 녹색 점멸은 이미 횡단 중인 보행자는 신속히 건너고, 아직 길을 건너지 않은 보행자는 진입하지 말라는 경고다. 이미 깜빡이고 있는 상태에서 횡단보도로 뒤늦게 뛰어나갔다가 신호가 적색으로 바뀌어 차량과 사고가 나면, 법적으로 보행자에게 30~40% 상당의 과실이 참작될 수 있다. 초록불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 뛰어든 행동이 사고 이후 책임 문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서 앞서 살펴본 6초 숨김 설계와 연결되는 지점이 나온다. 빨간불이 끝나기 직전에 미리 출발하는 행동도, 초록불이 깜빡일 때 뒤늦게 뛰어드는 행동도 모두 신호의 정해진 의미를 벗어난 움직임이다. 신호등은 보행자가 신호의 시작 시점에 출발하고 점멸 시점에는 진입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적색 잔여시간 표시가 마지막 6초에서 끊기는 것은 시작 시점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장치이고, 녹색 점멸 규정은 끝 시점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규정이다.

1위. 신호등 색 '순서'에도 이유가 있다

신호등 색상 배치에도 오해가 있다. 신호등 색깔의 순서가 무작위 배치이거나 디자인 취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3색과 4색 신호등에서 맨 왼쪽, 세로형 신호등이라면 맨 위는 예외 없이 적색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시선 이동의 원리다. 사람의 시선은 글을 읽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이 특성을 고려해 가장 치명적이고 중요한 정지 신호를 가장 먼저 인지하도록 적색을 맨 앞에 둔 것이다.

둘째는 가림 현상 방지다. 가공선이나 가로수 가지가 신호등 오른쪽, 즉 녹색 쪽을 가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도로 중앙에 가까운 왼쪽의 적색등은 이런 경우에도 끝까지 노출되도록 배치했다. 가려지더라도 정지 신호만큼은 보이게 하겠다는 설계다.

셋째는 색약과 색맹 운전자에 대한 배려다. 색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운전자도 가장 왼쪽이 정지라는 위치 규칙만 알면 안전하게 정차할 수 있다. 색이 아니라 위치로도 신호를 읽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횡단보도 건너는 시민들. / 뉴스1
횡단보도 건너는 시민들.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