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유럽 오페라 데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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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악계 개척자, 유럽 무대서 30년 활동하다

한국 성악계의 1세대 해외 진출자로 꼽히는 메조소프라노 김청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난 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다.

제자와 유족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이날 오후 3시 40분께 경기 용인시 성루카병원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

김청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연합뉴스
김청자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연합뉴스

1944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김 전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였다. 동생 김석호씨에 따르면 춘천에서 중학교에 다닐 당시 음악교사의 권유와 외국인 신부와의 인연이 음악가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김씨는 "중학교 음악교사가 성악을 배우라고 권한데다 당시 아일랜드 출신 신부님이 '언제든 성당 피아노를 쳐도 좋다'고 해주신 게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서울 진명여고를 졸업한 김 전 교수는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에 건너갔다. 낯선 환경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도 음악 공부를 이어갔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한 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까지 졸업하며 전문 성악가로 성장했다.

유럽 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1970년이다. 김 전 교수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고 스위스 베른오페라단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후 독일 카를스루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했으며 스위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지의 무대에 섰다. 약 16년간 현지에서 활동하며 독일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여러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 뉴욕과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도 독창회를 열었다.

오페라 활동과 함께 국내에서는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73년부터 1978년까지 중앙대와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후배 성악가들을 가르쳤다. 한예종은 2011년 김 전 교수와의 인연을 계기로 말라위에서 음악·무용·영상 분야 실기교육 워크숍과 현지인 합동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년퇴임 이후의 삶은 무대와 강의실 밖에서 이어졌다. 김 전 교수는 2009년 말라위 카롱가 지역을 찾았다가 고아들을 돌보는 '루스빌로(희망) 공동체'를 접한 뒤 현지 봉사를 결심했다. 2010년 한예종을 떠난 뒤에는 말라위에 정착해 고아들을 돌보고 음악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가져간 키보드와 드럼 등 악기를 활용해 연주와 성악, 음악이론을 가르쳤으며 아이들과 생활을 함께했다. 현지 공동체에서는 그를 '뮤직 디렉터'라고 불렀고, 지역 추장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라는 뜻의 '루세케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 전 교수는 현지 생활 중 한국에서 후원금을 모아 우물 42개를 파는 활동도 진행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만났다"고 말했다.

2011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전에는 예술가로서 나 자신을 주장하고 살았지만, 말라위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서서히 나 자신을 지우는 영적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말라위에서의 생활은 유방암 진단으로 중단됐다. 김 전 교수는 2022년 10월 유방암 2기 판정을 받은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경기 남양주 자택에서 요양하다 병세가 악화됐고,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용인 성루카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그의 음악 인생과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은 2014년 출간된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출판사)에 담겼다. 책에는 30년간 성악가로 활동한 과정과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며 지낸 이야기가 기록됐다. 음악가로서 유럽 무대를 개척한 뒤 교육자로 활동하고, 은퇴 후에는 아프리카에서 봉사자로 살아간 삶의 궤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안드로메다 챔버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활동하고 있는 아들 다니엘 글라첼이 있다. 빈소는 6일 오전 11시부터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1호실에 마련됐다. 장례미사는 8일 서울 개포동성당에서 치러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