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박지성 때는 전혀 문제없었는데…손흥민 리더십, 결국 곪았던 문제가 터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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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59호골 대기록 직후 터진 후배들의 은퇴 신호, 무엇이 문제였을까
지난 6일 치러진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은 한국 축구에 두 가지 장면을 동시에 남겼다. 하나는 손흥민이 A매치 통산 59호 골로 한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쓴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가 끝난 뒤 텅 빈 잔디 위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풍경이다. 2-0 승리로 마무리된 경기 직후 대표팀 중추인 1996년생 세 선수가 보인 행보가 축구계 전체로 파문을 번지게 했다.

전반 6분 프리킥, 47년 10개월 만에 깨진 차범근의 기록
이날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손흥민은 전반 6분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골 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로 상대 골문 오른쪽 구석을 향해 슈팅을 날렸고, 우즈베키스탄 골키퍼가 쳐내려 했지만 공은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은 손흥민의 A매치 통산 59번째 득점이다.
기록의 무게는 숫자에 담겨 있다. 종전 한국 선수 A매치 최다골은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58골이었다. 차 전 감독은 1978년 12월 방콕 아시안게임 중국전에서 자신의 마지막 A매치 골인 58호 골을 넣었고,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을 끝으로 국가대표 생활을 마쳤다. 그 기록이 손흥민에 의해 47년 10개월여 만에 깨졌다.
출발점도 선명하다. 손흥민의 A매치 첫 골은 자신의 세 번째 A매치 출전이었던 2011년 1월 18일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인도전에서 나왔다. 데뷔골로부터 약 15년 8개월 만에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A매치 득점을 올린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축구의 상징으로 오랜 시간 뛰어온 이력이 숫자로 증명됐다.
승리 뒤 텅 빈 잔디에서 벌어진 일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분위기는 달라졌다. 취재진은 믹스트존에서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 세 선수는 라커룸을 나와 인터뷰 구역이 아닌 관중이 빠져나간 그라운드로 향했다. 셋은 서로를 끌어안고 머리를 맞댄 채 사진을 찍었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자세로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세 선수는 자정이 넘을 때까지 경기장에 남아 대한축구협회(KFA) 고위 관계자들과 장시간 만났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앙일보 등이 세 선수에게 국가대표 은퇴 의사가 있다는 취지로 보도하면서 팬들의 충격이 커졌다. 전해진 내용은 구체적이다. 세 선수는 라커룸에서 일부 동료에게 '바뀌는 게 없다'는 이유로 대표팀을 떠날 뜻을 비쳤다고 한다. 다만 은퇴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믹스트존에 나선 황인범이 대표팀을 향한 헌신의 의지를 다시 밝히면서 논란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축구협회 측은 세 선수와 계속 면담하며 설득과 수습에 나선 상황이다.

베네수엘라전이 예고편이었나
사실 이상한 조짐은 나흘 전부터 있었다. 지난 2일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비긴 직후 김민재는 수비수들이 불쌍하다며 다 같이 싸우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팀 전체의 헌신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발언이다. 황인범도 대표팀 9년 차인데 여러 부분에서 변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답답함을 털어놨다. 우즈베키스탄전 직후 세 선수가 내비친 '바뀌는 게 없다'는 말은 이 발언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보도된 내용을 종합하면 불만의 뿌리는 경기장 안팎에 걸쳐 있다. 공격진의 수비 가담이 부족하고 에너지 레벨이 떨어지면서 수비진과 중원의 부담이 쌓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에 이전부터 1992년생 최고참 라인(손흥민, 이재성 등)과 1996년생 주축 라인 사이에 문제 해결 방식과 이슈 대응을 두고 시각차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팀을 다독이고 하나로 묶어야 할 주장의 소통 역할에 아쉬움이 남았다는 평가도 따라붙었다.
하필 그날, 하필 그 주장
공교로운 대목은 시점이다. 이날은 9년째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는 손흥민이 한국 선수 A매치 최다골이라는 대기록을 쓴 날이다. 가장 환호받아야 할 주장의 하루에 후배들의 이례적 행보가 겹쳤다. 물론 1996년생 세 선수의 장면을 손흥민을 향한 비판과 곧바로 연결할 수는 없다. 다만 주장이 축하받는 순간에 동생들의 은퇴 시사 소식이 함께 전해졌다는 사실은 묘한 잔상을 남긴다.
2026 북중미 월드컵 당시 역시 손흥민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은 몇 차례 나온 바 있다. 이전 주장들과 달리 후배들을 대하는 손흥민의 태도가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모든 인과관계를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같은 질문이 다시 떠오르는 상황 자체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손흥민은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오래 주장을 맡은 선수다. 2018년 9월 7일 파울루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었던 코스타리카전부터 본격적으로 완장을 찼고, 어느덧 8년이 흘렀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주장으로 나서 한국 선수 최초로 2회 연속 월드컵 주장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새 사령탑 시대, 과거를 복기할 시간
대표팀은 새 사령탑을 맞았다. 스페인 출신 로베르토 모레노 감독이다. 모레노 감독은 9월부터 11월까지 A매치 6경기를 지휘한다. 계약에는 경기력과 결과를 종합 평가해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막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까지 동행할 수 있다는 조건이 포함됐다. 한국 축구가 새 출발선에 섰다. 새 출발을 하려면 과거를 돌아보는 과정이 먼저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확인하는 작업에는 대표팀 주장도 예외일 수 없다.
위대한 '선수'가 무조건 위대한 '주장'일까
손흥민은 아시아 선수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며 오랫동안 유럽 무대에서 한국 축구의 이름을 알렸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축구를 잘하는 것과 선수단을 하나로 묶어 이끄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위대한 선수가 곧 위대한 주장이라는 공식이 무조건적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
주장 완장을 찬 8년 동안 대표팀 내부 문제는 여러 차례 표면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이후 알려진 이른바 '2701호 사태'다. 축구협회가 2023년 1월 공개한 입장에 따르면 대표팀 일부 선수가 손흥민의 개인 트레이너였던 안덕수 씨를 협회 의무 스태프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협회는 안씨가 공개 모집에 지원하지 않았고 요구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부 선수가 안 씨를 장비 담당 등 다른 직책으로 등록한 뒤 의무 활동을 하게 하자는 방안까지 제안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협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 직책을 조작하면서까지 규정 위반을 묵인할 수는 없었다는 취지다. 동시에 협회는 선수들의 요구를 충분히 듣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자신들의 대응이 미흡했다고 인정했다.
선수가 의무팀 운영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최상의 몸 상태로 뛰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선수의 요구와 공적 조직이 지켜야 할 절차는 별개의 문제다. 이 사태를 손흥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공개된 자료만으로 손흥민이 선수단의 요구를 주도했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다만 주장에게는 선수단을 대표하는 역할이 있다. 선수단과 협회가 정면충돌하는 국면에서 주장단이 어떤 역할을 했고 갈등을 조정하려고 무엇을 했는지는 돌아볼 수 있는 문제다.
2024년 2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요르단과의 준결승을 하루 앞두고 손흥민과 이강인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이강인은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고 손흥민을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손흥민 역시 자신의 행동이 모두 옳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당시 손흥민은 자신의 행동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강인을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이강인에게 잘못이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표팀 선배와 몸싸움까지 벌인 행동은 분명 부적절했고 본인도 인정했다. 그런데 당시 비난의 상당 부분은 이강인 한 명에게 쏠렸고, 그의 이름 앞에는 '하극상'이라는 단어까지 붙었다. 선수단 내부에도 이 사건을 이강인 개인만의 잘못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모든 책임을 주장에게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선수단 관리의 최종 책임은 감독과 코칭스태프에 있다. 그러나 주장은 선수단의 리더다. 중요한 대회 도중 선수끼리 물리적으로 부딪힐 만큼 팀이 갈라졌다면 주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월드컵에서도 되짚을 대목이 있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돌아볼 일이 있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국내 취재진 중 한 명이 손흥민에게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현장 취재진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 의사를 전했고, 협회도 해당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하며 취재진에 유감을 표했다. 협회는 선수에 대한 존중과 보호가 우선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후 선수단은 국내 취재진을 상대로 한동안 인터뷰를 거부했다. 손흥민은 박항서 전 단장을 통해 몇 가지 요구사항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적절한 발언의 피해자이자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주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다만 주장의 역할이 피해를 전달하는 데서 끝나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홍명보 전 감독도 선수단 관리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선수에게 부당한 일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야 하고, 그것은 주장의 몫이기도 하다. 손흥민은 해야 할 일을 했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동료를 설득해 하나의 방향으로 이끄는 일 역시 리더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다. 대응 방식을 둘러싸고 선수단 안에서 이견이 생겼다면 주장이 그 과정을 어떻게 조율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박지성의 완장과 손흥민의 완장
비교 대상으로 가장 자주 소환되는 이름이 박지성이다. 박지성은 고참과 신예 사이에서 헌신적으로 중심을 잡으며 세대 갈등을 중재하고 팀 통합을 이끈 주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9년째 주장을 맡은 손흥민은 세계적 위상에도 장기간 쌓인 선수단 내부의 불만과 온도 차를 끝내 봉합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부 언론에서 나온다. 박지성 시대에는 큰 잡음이 없었는데 손흥민 시대에 반복해서 문제가 터진다는 대비가 붙는 이유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다. 선수들의 이력, 해외 활동 비중, 대표팀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바뀌었다. 두 사람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공정한지는 별개의 논쟁이다. 그럼에도 축구계에서는 주장 개인의 스타일 문제를 넘어 고참의 부담을 덜고 팀 내 소통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함께 나온다. 한 사람에게 모든 조율을 맡기는 방식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다.

손흥민 이후, 'NEXT'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현실적인 판단도 필요하다. 손흥민은 여전히 대표팀에서 활용 가치가 큰 공격수이고, 그가 그라운드에서 쌓은 경험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34세다. 2030년 월드컵이 열릴 때는 38세가 된다. 철저한 몸 관리로 4년 뒤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핵심 자원일 것이라는 전제로 팀을 설계하는 것은 위험하다.
당장 대표팀 앞에는 2027년 1월 아시안컵이 있고, 그 너머에는 2030년 월드컵이 있다. 언젠가 대표팀은 '손흥민 없는 시대'를 맞는다. 그 준비를 언제 시작할지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이다.
물론 손흥민의 경험은 여전히 귀하다. 그는 네 차례 월드컵을 포함한 A매치 147경기에서 득점을 쌓아 이날 59호 골에 닿았다. 한국 선수 가운데 A매치에 가장 많이 출전한 기록도 갖고 있다. 새 주장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손흥민은 2030년 월드컵을 향하는 대표팀에서 중요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새 주장이 선임된다면 최장수 주장으로서 쌓은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도 맡을 수 있다.
최종 선택은 모레노 감독의 몫
주장 인선은 모레노 감독이 결정할 사안이다. 다만 협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지난 대표팀 운영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선수단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관한 객관적 사실을 새 코칭스태프에 전달해야 한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모레노 감독이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판단하면 된다. 국민적 사랑을 받는 위대한 선수라는 이유만으로 반복된 문제를 논의조차 하지 않던 시기는 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