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번째' 헌혈 중이던 남성이 중환자실로...원인은 간호사가 몸속에 주입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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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간격으로 반복된 헌혈 사고, 치명적인 실수가 부른 참사
126번이나 헌혈한 50대 남성이 127번째 헌혈을 하던 중 다량의 항응고제가 몸속으로 들어가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는 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불과 20일 뒤 다른 헌혈의 집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됐다.
8일 JTBC 뉴스룸이 단독보도한 사건이다.
헌혈은 혈액이 필요한 환자에게 자신의 혈액을 나누는 대표적인 생명나눔 활동으로, 대한적십자사는 일정 횟수 이상 헌혈한 사람에게 헌혈유공장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30회는 은장, 50회는 금장, 100회는 명예장, 200회는 명예대장, 300회는 최고명예대장 대상이다. 100회 이상 헌혈자는 헌혈 명예의 전당에도 등록할 수 있다.
이번 사고의 피해자는 이런 다회헌혈자였다. 지난해 5월 헌혈을 위해 헌혈의 집을 찾은 이 남성은 문진과 안내를 받은 뒤 헌혈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채혈을 시작한 지 약 5분 만에 팔에 통증을 호소했다.

현장에서 곧바로 채혈을 중단했지만 상태는 빠르게 악화됐다. 남성은 10초 넘게 강직성 경련을 보인 뒤 의식을 잃었고, 맥박과 호흡에도 이상이 나타났다. 의료진은 응급조치를 시행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고, 남성은 기관 내 삽관을 한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닷새를 보냈다.
이후 일반 병실로 옮겨져 열흘가량 더 치료받은 뒤에야 퇴원할 수 있었다. 단순히 헌혈 직후 어지럼증이나 일시적인 불편을 겪은 사례와 달리 중환자실 치료와 기도 확보가 필요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던 것이다.
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담당 간호사가 항응고제와 식염수를 혼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헌혈 과정에서는 채혈한 혈액이 굳지 않도록 혈액백에 항응고제가 들어가도록 하는데, 당시 연결이 잘못되면서 항응고제가 혈액과 섞이는 대신 헌혈자의 몸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투여된 항응고제는 134cc에 달했다. 항응고제는 채혈된 혈액의 응고를 막기 위해 사용되는 물질이지만 혈관 안으로 과량이 들어가면 혈중 칼슘 농도 등에 영향을 미쳐 저칼슘혈증, 근육 경련, 부정맥 등 심각한 이상을 일으킬 수 있다.
피해자는 당시까지 모두 126차례 혈액을 기증한 헌혈자였다. 100회 이상 헌혈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장을 넘어 꾸준히 헌혈에 참여해온 사람이었지만, 이 사고 이후 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게 됐다.
헌혈 현장에서는 헌혈자가 이상 증상을 느끼면 즉시 의료진에게 알리도록 안내한다. 실제 헌혈 전 문진 과정에서도 최근 치료나 약물 복용 여부 등을 확인하고, 헌혈 중 입술이나 손끝이 떨리거나 얼얼한 느낌, 어지럼증, 통증 등이 나타나면 바로 알리도록 안내한다.
문제는 첫 번째 사고가 발생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는 점이다.

첫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20일 뒤 서울의 다른 헌혈의 집에서 또 다른 남성이 헌혈을 하다가 이상 증상을 보였다. 이번에는 30대 남성이었으며, 헌혈을 시작한 지 약 2분 만에 구역질 등의 증상을 호소해 채혈이 중단됐다.
조사 과정에서 이 사고 역시 항응고제와 식염수의 연결이 뒤바뀌면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로 다른 헌혈의 집에서 같은 종류의 실수가 짧은 기간 안에 반복된 것이다.
첫 사고 이후 대한적십자사가 전국 일선 헌혈의 집에 해당 사례를 공유하거나 동일한 실수를 막기 위한 별도의 주의 공지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를 일으킨 업무 담당자들은 이후 경고 조치를 받았다.
대한적십자사는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현재는 식염수와 항응고제의 포장재 모양을 바꿨다고 밝혔다. 작업자가 두 제품을 시각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현장의 물품 관리 방식을 변경한 것이다.

헌혈 과정에서 항응고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헌혈자가 채혈된 혈액을 혈액백에 담으면 혈액이 몸 밖에서 굳지 않도록 혈액백에 들어 있는 항응고제와 혈액이 일정한 비율로 섞인다. 이 물질은 혈액 보관과 수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성분이지만, 정상적인 채혈 과정에서 혈액백으로 들어가야 할 물질이 헌혈자의 혈관으로 직접 들어가면 전혀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식염수는 의료현장에서 수분과 전해질을 보충하거나 혈관을 확보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용액으로, 항응고제와 용도가 다르다. 두 용액의 연결을 잘못하면 헌혈자가 받아서는 안 되는 물질이 혈관으로 주입될 수 있기 때문에 연결 상태와 투여 경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사고에서 가장 큰 문제로 남은 부분은 단순한 한 차례의 작업 실수가 아니라 같은 유형의 실수가 다른 장소에서 반복됐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고에서는 헌혈자가 중환자실 치료를 받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두 번째 사고에서도 헌혈자가 증상을 호소하면서 채혈이 중단됐다.
헌혈의 집에서는 채혈 전 문진부터 채혈 과정, 헌혈 이후 휴식까지 여러 단계로 헌혈자를 관리한다. 헌혈 중 통증이나 이상 증상이 나타날 경우 즉시 채혈을 중단하는 것도 사고 확대를 막기 위한 절차다.
이번 사례는 헌혈자의 안전을 위해 마련된 절차와 함께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식별과 연결 과정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대한적십자사는 두 사고 이후 항응고제와 식염수의 포장재를 변경해 작업자가 두 물품을 구별하기 쉽게 조치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다회헌혈자의 헌혈 참여를 기념하기 위해 30회 은장, 50회 금장, 100회 명예장, 200회 명예대장, 300회 최고명예대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기존 헌혈유공장이 헌혈유공패 형태로 전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