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칼은 '이 각도'로 숫돌에 대고 당겨 보세요…토마토 껍질이 스르르 썰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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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막대로 문질러도 안 드는 칼은 숫돌 차례다.
400/1000 겸용 숫돌과 15~20도 각도, 양면 갈기와 토마토 시험까지 정리했다.

토마토를 썰려는데 칼날이 껍질 위에서 미끄러지고, 양파는 썰리기보다 으깨진다. 칼이 무디면 힘을 더 주게 되고, 힘이 들어간 칼은 미끄러질 때 손을 다치기 쉽다. 김장철이 다가와 무와 배추를 썰 일이 늘기 전에 칼부터 점검해 볼 만한 시기다.
쇠막대로 문지르면 무딘 칼이 다시 선다는 통념
주방 서랍에 쇠막대 하나쯤은 있다. 칼과 함께 들어 있는 연마봉이나 샤프너라고 부르는 막대로, 쓱쓱 문지르면 칼이 새로 선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막대는 칼날을 새로 만들지 못한다. 쓰는 동안 한쪽으로 눕거나 휘어진 날을 바로 세워 정렬하는 도구라서, 이미 완전히 무뎌진 칼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칼 관리에는 두 가지 작업이 있다. 날을 곧게 세우는 것이 호닝(honing)이고, 숫돌로 금속을 아주 조금 깎아 새 날을 만드는 것이 샤프닝(sharpening, 날갈이)이다. 쇠막대는 앞쪽을, 숫돌은 뒤쪽을 맡는다. 막대로 문질러도 썰림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날이 정렬 문제가 아니라 닳은 상태일 가능성이 크고, 이때는 숫돌 차례다.

집에서는 400/1000 겸용 숫돌이면 충분하다
숫돌은 입자 굵기를 번호로 표시한다. 번호가 작을수록 거칠다. 가정용 주방칼에는 한쪽 면이 400, 반대쪽 면이 1000인 겸용 숫돌이 무난하다. 400번 면은 무뎌진 날을 복구하는 용도이고, 1000번 면은 거칠게 간 날을 다듬어 매끈하게 마무리하는 용도다.
그래서 순서는 400번 면으로 먼저 날을 살린 뒤 1000번 면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숫돌 하나로 두 단계를 모두 처리할 수 있어 좁은 아파트 주방 서랍에도 부담이 적다. 사용할 때는 숫돌 표면을 물에 적셔 쓴다.
숫돌은 젖은 행주 위에 올려 미끄러짐부터 막는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숫돌 고정이다. 물에 적신 숫돌 아래에 젖은 행주를 깔아 두면 칼을 밀고 당길 때 숫돌이 밀리지 않는다. 싱크대 옆 작업대나 넓은 도마 위처럼 평평하고 물이 튀어도 괜찮은 자리에 펼쳐 두면 된다. 숫돌이 움직이는 상태에서 각도를 잡으려 하면 손이 먼저 흔들린다.
갈기 전에 현재 칼 상태를 확인해 두는 것도 요령이다. 사과나 토마토를 가볍게 썰어 보고 껍질에서 미끄러지는지, 눌러야 들어가는지 기억해 둔다. 갈고 난 뒤 같은 재료로 다시 시험하면 달라진 정도가 바로 비교된다. 칼날이 향하는 쪽에 손가락이 놓이지 않도록 칼등과 손잡이 쪽을 잡는 습관도 이 단계에서 잡아 둔다.

15~20도를 유지한 채 날밑에서 끝까지 끌어당긴다
각도가 숫돌 갈기의 핵심이다. 칼날을 숫돌에 대는 각도는 대략 15~20도다. 직각이 90도이므로 15도는 직각의 6분의 1 정도, 즉 숫돌 면에서 칼등을 아주 살짝만 들어 올린 모양이다. 칼날을 너무 세우면 날이 뭉툭해지고, 너무 눕히면 날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각도를 잡았다면 칼날을 몸 쪽으로 끌어당기며 숫돌을 가로질러 간다. 이때 칼의 손잡이 쪽 날밑에서 시작해 칼끝 쪽까지 한 번에 훑어 내려오게 한다. 한 번 긋는 동안 각도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요령이며, 힘을 세게 주는 것보다 같은 자세를 반복하는 쪽이 결과가 좋다. 칼 길이가 길면 한 번에 다 훑기 어려우므로, 칼끝으로 갈수록 손목 높이가 낮아지지 않게 의식한다.

양면을 같은 횟수로 갈고 토마토 껍질로 확인한다
칼은 양쪽 날면을 갈아야 하므로 한쪽만 계속 갈지 않는다. 한 면을 정해 둔 횟수만큼 갈았다면 뒤집어서 같은 횟수를 갈고, 짝수 횟수로 양면을 번갈아 반복한다. 몇 번을 갈아야 하는지는 칼이 얼마나 무뎌졌는지에 따라 다르므로 정해진 숫자를 외우기보다 양면의 횟수를 맞추는 원칙을 지키면 된다. 400번 면에서 날이 어느 정도 살아났다고 느껴지면 같은 방식으로 1000번 면에서 마무리한다.
다 갈았으면 칼을 물로 헹구고 물기를 닦는다. 숫돌 가루가 칼에 남아 있으면 첫 사용 때 찜찜하다. 마지막 검증은 토마토다. 힘을 거의 주지 않아도 껍질이 걸리지 않고 썰리면 성공이다. 갈기 전 같은 재료로 해 둔 시험 결과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사용한 숫돌도 물기를 닦고 말려 두면 다음에 꺼낼 때 깔끔하다.
평소에는 쇠막대로 정렬하고 본격 연마는 한두 번이면 된다
숫돌을 매주 꺼낼 필요는 없다. 날을 정렬하는 호닝은 매일 또는 자주 해도 괜찮고, 이렇게 해 두면 날 상태가 오래 유지된다. 반면 숫돌로 금속을 깎아내는 본격 샤프닝은 쓰는 양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년에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
그러니 루틴은 간단하다. 평소에는 쇠막대로 날을 가볍게 세우고, 막대로도 썰림이 돌아오지 않을 때만 숫돌을 꺼낸다. 날을 자주 깎으면 칼이 그만큼 빨리 닳으므로 아끼는 편이 좋다. 칼을 쓰는 횟수가 많은 집은 연말 김장 전, 적게 쓰는 집은 연초에 한 번 같은 식으로 날짜를 정해 두면 잊지 않는다.

이가 나갔거나 각도를 못 잡겠다면 전문가에게 맡긴다
숫돌이 만능은 아니다. 칼날이 깊게 이가 나갔거나 심하게 손상됐다면 집에서 갈 때 오히려 날 모양이 더 틀어질 수 있다. 각도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마찬가지로 전문 연마 업체에 맡기는 쪽이 낫다. 손에 익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갈면 칼이 숫돌에서 튀어 손을 다칠 위험도 있다.
일반 숫돌은 보통 쇠로 된 칼을 위한 도구다. 세라믹 칼이나 톱니가 있는 빵칼처럼 날 구조가 다른 칼은 같은 방식이 맞지 않을 수 있으니, 사용 설명서를 확인하거나 업체에 문의한다. 값비싼 칼일수록 시험 삼아 갈아 보지 말고 싼 칼로 각도 감각부터 익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