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CCTV 조사도 하지 않고 덮었던 '채단비씨 사망 사건' 대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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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혐의없음'으로 덮은 사건, 공소청이 혐의 입증해 재판에 넘겨
경찰이 '혐의없음'으로 덮었던 사건을 공소청이 다시 들여다봤다. 경찰이 끝내 확보하지 않았던 CCTV 원본과 휴대전화가 결정적 증거가 됐다. 성폭행 피해를 호소하다 숨진 20세 대학생 채단비씨가 지목한 주점 업주가 결국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방공소청 안산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곽계령)는 주점 업주 A씨(40대)를 준강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기소는 지난 7일 이뤄졌다. 채씨가 숨진 지 7개월여 만이다.
공소청은 이달 2일 검찰청이 폐지되면서 새로 출범한 기소 전담 기관이다. 1948년 문을 연 검찰청은 78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형사사법 개편에 따라 검찰이 맡던 기능은 둘로 나뉘었다. 부패·경제 범죄 등 중대범죄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 맡는다. 공소청은 재판에 넘길지를 판단하고 공소를 유지하는 일을 한다. 영장 청구와 형 집행 지휘도 공소청의 몫이다. 공소청은 경찰과 중대범죄수사청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이 진행해 온 이 사건의 보완수사 결과도 공소청 출범 이후 기소로 이어졌다.
A씨는 지난해 12월 28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일본식 주점에서 아르바이트생 채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공소청은 채씨가 당시 술과 복용 중이던 약물의 영향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한 차례 종결됐다. 채씨는 사건 당일 오후 인근 파출소를 찾아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경찰은 채씨를 한 차례 조사했다. 경찰은 올해 2월 19일 증거가 부족하다며 A씨를 불송치했다. 주점 CCTV에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움직이는 모습이 담겼다는 점이 근거였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채씨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고 봤다.
채씨는 불송치 결정 이틀 뒤인 2월 21일 숨졌다. 채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이의신청서가 발견됐다. 이의신청서에는 성관계에 동의한 적이 없고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이 크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유족에 따르면 채씨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변호사가 꼭 이의신청을 해달라는 문자메시지도 남겼다. 시민단체가 반발하자 경찰은 이 이의신청서를 정식 문건으로 보고 사건을 당시 검찰에 넘겼다.

경찰 수사에 허점이 많았다는 사실은 이후 하나씩 드러났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압수수색 영장을 한 번도 신청하지 않았다. CCTV는 A씨 측이 일부 구간만 골라 임의제출한 영상 파일이 전부였다. 저장장치 원본은 확보하지 않았다. A씨의 휴대전화도 압수하지 않았다. 채씨가 사건 직후 받은 산부인과 진단서와 의무기록도 수사에 반영되지 않았다. 유족이 압수수색을 하지 않은 이유를 따지자 경찰이 "번거롭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경찰은 임의제출도 강제수사의 한 방식이며 CCTV라는 객관적 증거가 있어 A씨 휴대전화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완수사는 경찰이 놓친 지점을 파고들었다. 검찰은 A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지난 6월에는 CCTV 저장장치를 확보했다. A씨와 채씨의 휴대전화도 확보해 포렌식을 진행했다. 경찰이 판단 근거로 삼았던 CCTV는 원본을 다시 분석하자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줬다. 범행 직전 A씨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채씨를 뒤에서 붙잡아 CCTV가 비추지 않는 가게 안쪽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확인됐다.
채씨의 몸 상태도 과학적으로 따졌다. 혈액과 소변 감정 결과를 검토하고 의료기관 자문도 받았다. 그 결과 채씨가 당시 복용하던 약과 술이 함께 작용하면 항거불능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의견을 얻었다. 공소청은 채씨가 사건 당시 스스로 걷기조차 어려운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채씨가 만취 상태였다는 정황은 앞서 수치로도 확인됐다. 사건 당일 오후 채혈 검사에서 채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5%로 나왔다. 운전면허 취소 기준을 넘는 수치다. 범행 추정 시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농도가 2배 이상이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두 사람의 관계도 경찰 판단과 달랐다. A씨는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해 왔다. 휴대전화 대화 내용을 분석한 결과 두 사람은 평소 이성적 호감을 나누던 사이가 아니었다. 채씨가 사건 직후 지인에게 전화해 울면서 피해를 털어놓은 녹음 파일도 확보됐다.
공소청은 채씨의 항거불능 상태와 사건 전후 정황을 종합해 A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결론 내렸다. 수원지방공소청 안산지청 관계자는 "억울한 피해자가 없도록 송치되는 성폭력 사건을 더 면밀히 살피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지난 8월 15일 방송에서 다루면서 널리 알려졌다. 방송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영업이 끝난 뒤 주점에서는 A씨와 채씨를 포함한 직원 5명의 회식이 열렸다. 직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오전에는 A씨와 채씨 두 사람만 남았다. 채씨는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A씨를 밀쳐낸 뒤 가게 밖으로 뛰쳐나온 것만 기억난다고 진술했다. A씨가 사건 열흘 전 채씨에게 입을 맞추는 등 평소에도 불쾌한 행동을 했다는 내용도 방송에서 전해졌다.
방송은 경찰이 고용 관계를 이용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를 검토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만취 상태였던 피해자에게서 진술을 한 번만 받고 50일 가까이 추가 조사 없이 사건을 끝낸 점도 도마에 올랐다. 검사 출신인 오선희 변호사는 방송에서 준강간 피해자는 술에 취해 있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걸어 다녔다는 이유로 항거불능이 아니라고 단정할 게 아니라 술에 취하지 않았어도 그런 행동을 했겠느냐는 관점에서 수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씨는 생전에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경찰관이 되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