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노공업, 수출로 일군 세계 경쟁력…장기 노사갈등이 성장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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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반기 매출 2429억원·영업이익 1208억원…수출 비중 83.7%
- 에코델타시티 신공장 투자 본격화…반도체 부품 생산능력 확대
- 노사 잠정 합의에도 최종 교섭 결렬…상급단체 의사결정 구조 도마 위
[부산=위키트리 최학봉 선임기자] 부산에서 출발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 뿌리를 내린 리노공업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수입에 의존하던 반도체 검사용 부품을 국산화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해 매출의 80% 이상을 수출로 벌어들이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50%에 육박했다. 부산 에코델타시티에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신공장 투자도 진행 중이다. 기술력과 수출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부산의 대표적인 반도체 부품 기업이 또 한 번의 도약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의 중요한 길목에서 노사갈등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지난 3월 노동조합 설립 이후 임금과 성과급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장기 파업으로 이어졌고, 노사가 상당한 접점을 찾았던 협상마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지난 9월 23일 노조가 62일간의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생산 현장에 복귀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리노공업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지금의 상황은 더욱 아쉽다.
리노공업은 반도체 검사에 사용되는 테스트 소켓과 검사용 핀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과거 해외 제품에 의존하던 부품을 자체 기술로 개발해 국산화했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고객사를 확보하면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웠다.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제작하는 다품종 주문생산 방식이 강점이다. 생산 제품이 3만여 종에 달할 만큼 기술과 제조 경험을 축적했다.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정밀한 품질과 납기 준수가 중요한 만큼 오랜 기간 쌓아온 생산기술과 고객사의 신뢰가 경쟁력의 바탕이 됐다.
실적도 이를 뒷받침한다.
리노공업의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매출액은 2429억5860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2%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208억1433만원으로 36.7%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49.7%에 달한다. 매출 100원 가운데 약 50원을 영업이익으로 남긴 셈이다.
상반기 수출액은 약 203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83.7%를 차지했다. 주력 제품인 테스트 소켓 매출은 166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8.48%에 이른다. 부산에 생산 기반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세계 반도체 시장을 상대로 경쟁하는 수출기업이다.
리노공업은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부산 강서구 에코델타시티에 신공장을 추진하고 있다. 공장 신설과 장비 구입에 투입되는 투자 규모는 토지 취득비를 제외하고 971억8200만원이다. 올해 6월 말까지 785억5378만원을 집행했다.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해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다. 하지만 대규모 설비투자가 진행되는 시기에 노사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생산 현장의 안정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리노공업 노조는 지난 7월 23일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임금과 성과급 지급 방식, 근로조건 개선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노조는 회사가 높은 경영 성과를 거둔 만큼 노동자들에게도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는 성과급을 고정적인 임금체계로 전환할 경우 반도체 경기 변동과 관계없이 인건비 부담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연구개발과 설비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면서 근로자 보상과 주주가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장기업의 경영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고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9월 부산고용노동청 중재로 진행된 특별교섭에서 노사는 정기상여금 연 900만원 신설, 상반기 성과급 300%, 한시 특별상여금 200만원 지급 등에 의견을 모았다. 장기간 대립했던 임금과 보상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최종 합의안 문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시 이견이 불거졌다. 회사는 노조 측의 추가 수정 요구와 새로운 요구사항으로 합의가 무산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교섭위원들이 서명한 잠정 합의 사항을 사측이 번복했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주장은 엇갈리지만 상당한 수준까지 접근했던 협상이 마지막 단계에서 결렬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교섭의 의사결정 구조다.
리노공업 노조는 기업별 독립노조가 아닌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소속 지회다. 현장 교섭과 별개로 상급단체와의 협의 및 내부 의사결정 절차가 존재하는 조직이다.
상급단체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교섭을 지원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정당한 활동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해당 기업의 경영 상황과 생산 현장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 결정돼야 한다.
현장에서 어렵게 합의점을 찾아놓고도 내부 보고와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교섭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 교섭위원들에게 실질적인 협상 권한이 얼마나 주어져 있는지도 짚어볼 문제다.
위키트리는 앞서 9월 23일 기자수첩에서도 상급단체와의 협의 및 내부 절차가 현장 교섭의 또 다른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물론 이번 특별교섭이 상급단체의 개입 때문에 결렬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회사와 노조가 합의안 문구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임금과 성과급 등 핵심 쟁점에서 의견을 좁히고도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교섭 구조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리노공업의 경영 환경과 근로자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결국 현장에서 함께 일해 온 노사 당사자들이다. 상급단체의 역할을 존중하되 현장 노사가 책임 있게 판단하고 합의할 수 있는 교섭 구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리노공업처럼 해외 고객사의 주문에 맞춰 다양한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생산의 연속성과 납기 준수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수십 년에 걸쳐 쌓아온 기술력과 해외 고객사의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9월 23일 노조는 62일간의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현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이를 요구사항 철회나 투쟁 포기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추가적인 조합원 피해를 막기 위한 '전술 변경'이라는 취지로 복귀 배경을 설명하면서 부분파업 등 추가 대응 가능성도 남겨뒀다.
전면파업은 끝났지만 노사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닌 셈이다.
다만 올해 상반기 실적은 전면파업 이전에 거둔 성과다. 따라서 장기 파업이 이후 생산과 수출 실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향후 공시자료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파업에 따른 구체적인 경영 손실을 단정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리노공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하는 중요한 시기에 노사갈등이 장기화됐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기업 성장에 기여한 근로자들에게 합당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조 역시 반도체 산업의 치열한 경쟁 환경과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 여력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반드시 충돌하는 목표가 아니다. 기업이 성장해야 안정적인 일자리가 유지되고, 생산 현장이 안정돼야 해외 고객사와의 신뢰도 이어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현장 노사가 실질적인 교섭의 주체로 나서 책임 있게 타협점을 찾는 일이다. 상급단체와의 협의가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현장 노사의 자율적인 판단과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리노공업은 기술력으로 수입품의 벽을 넘었고, 수출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제 에코델타시티 신공장을 통해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생산시설을 갖추더라도 이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세계 반도체 기업들과 경쟁해야 할 리노공업이 내부 갈등으로 성장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62일간의 전면파업은 끝났지만, 진정한 노사 정상화는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