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안 써도...” 요즘 너무 싸서 한국인들이 미친듯이 사두는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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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엔화 사둘까”…18년 만에 최저치, 웃는 투자자와 속 타는 수출기업

엔화 가치가 원화 대비 18년 9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엔화를 미리 사두려는 개인 투자자가 늘고 있다.

반면 일본 기업과 해외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수출기업은 가격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어 부담이 커졌다. 같은 엔저 현상이라도 투자자에게는 저가 매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기업에는 수출과 수입 실적에 따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친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이달 7일 기준 1조1545억 엔으로 집계됐다. 8월 말 1조827억 엔보다 718억 엔 늘어난 규모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6055억원이 증가했다. 엔화 가치가 낮아진 시기를 이용해 향후 환율이 오를 때를 대비하거나 일본 여행 경비를 미리 마련하려는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100엔에 843원대…엔화 가치가 왜 이렇게 떨어졌나

이날 오후 3시30분 하나은행 고시 기준 원·엔 환율은 100엔당 843.29원이었다. 2009년 3월 2일 1610.89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이다. 원·엔 환율은 원화로 엔화를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환율이 100엔당 1000원에서 800원으로 내려가면 같은 100엔을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200원 줄어든다. 원화 기준으로 엔화가 저렴해졌다는 의미다.

이번 엔저 현상에는 원화 강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원화 강세는 원화의 가치가 다른 통화에 비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한국 기업이 반도체 등을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거나 국내에 달러 공급이 늘어나면 달러를 사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아질 수 있다. 달러를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줄어들면서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고 원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7원 내린 1335.1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달러 1달러를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줄었다는 뜻이다.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강세를 보이더라도 국내에서 달러 공급이 늘고 수요가 줄면 원·달러 환율은 내려갈 수 있다. 국제시장에서 달러가 강한지뿐 아니라 국내에 달러가 얼마나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환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역대급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역대급 엔저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엔화 자체의 약세도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은행(BOJ)이 기준금리를 올리더라도 엔화 가치가 곧바로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는 현재 금리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다른 나라의 금리 수준, 앞으로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지에 대한 기대까지 고려해 통화를 사고판다. 일본의 금리가 올라도 다른 주요국의 금리가 더 높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면 투자 자금이 엔화보다 달러 등 다른 통화에 머물 수 있다.

우리은행 임환열 애널리스트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높은 금리 수준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효과가 줄었다고 진단했다. 기준금리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에 적용하는 정책금리로, 시중 대출금리와 예금금리에도 영향을 준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높은 통화는 투자 수익을 기대하는 자금이 유입될 수 있지만, 환율은 금리 외에도 경기와 정책 전망, 투자 심리 등에 영향을 받는다.

엔테크 열풍…싸게 샀다고 수익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엔화 가치가 낮아지자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는 ‘엔테크’가 관심을 얻고 있다. 엔테크는 엔화와 재테크를 합친 말로, 엔화를 저렴할 때 사들인 뒤 가치가 오르면 되팔아 차익을 얻거나 일본 여행에 사용할 목적으로 엔화를 보유하는 투자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0엔당 840원일 때 10만 엔을 사면 환전 수수료 등을 제외하고 84만원이 필요하다. 이후 환율이 100엔당 900원으로 오르면 같은 10만 엔의 원화 가치는 90만원이 된다. 이때 팔면 환율 차이로 6만원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이 800원으로 더 내려가면 원화 가치는 80만원으로 줄어든다. 엔화를 싸게 샀다는 사실만으로 수익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엔화 가치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투자했지만 오히려 하락하면서 손실을 본 사례도 나타났다. 엔화 움직임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TIGER 일본엔선물’의 올해 수익률은 원문 기준 마이너스 11.26%다. ETF는 여러 자산이나 특정 지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도록 설계돼 주식처럼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다. 엔화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상품은 엔화 가치가 예상과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상품 구조와 비용에 따라서도 실제 수익률이 달라진다.

엔화 예금과 엔화 관련 투자상품도 구분해야 한다. 은행의 외화예금은 엔화를 계좌에 보유하는 방식으로, 환율이 오르면 원화로 환산한 잔액이 늘어날 수 있지만 환율이 하락하면 평가금액이 줄어든다. 환전할 때 발생하는 수수료도 수익에 영향을 준다. 반면 엔화 선물이나 이를 추종하는 ETF는 가격 변동에 따라 손익이 발생하고 상품별 구조도 다르다. 엔화가 낮은 수준이라는 이유만으로 투자하기보다 투자 목적과 보유 기간,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가을은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 여행객들이 늘어나는 시기다. / AI 생성 이미지
가을은 일본으로 떠나는 한국 여행객들이 늘어나는 시기다. / AI 생성 이미지

엔화 대출도 증가…기업은 환율 반등 위험 살펴야

엔화 약세는 엔화로 돈을 빌리는 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엔화 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802억 엔으로 전월 말보다 약 10% 늘었다. 2024년 3월 말 805억 엔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화 대출은 엔화로 빌린 돈을 엔화로 갚는 방식이다. 엔화 가치가 낮을 때 대출을 받으면 원화로 환산한 초기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있다. 하지만 대출금의 원금과 이자를 갚을 때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원화로 환산한 상환 부담이 커진다. 금리가 낮거나 환율이 유리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선택하면 예상하지 못한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의 경우 매출과 비용이 어느 통화로 발생하는지에 따라 환율의 영향이 달라진다. 엔화로 매출을 올리는 기업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같은 매출을 원화로 환산했을 때 금액이 줄어들 수 있다. 반대로 엔화로 원자재나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같은 엔화 가격의 물품을 더 적은 원화로 살 수 있어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엔화 대출을 받은 기업은 엔화로 매출을 올리는지, 원화로 벌어 엔화로 갚아야 하는지에 따라서도 위험이 달라진다.

엔화 대출을 받는 이도 있다. / AI 생성 이미지
엔화 대출을 받는 이도 있다. / AI 생성 이미지

한국 수출기업은 부담…일본산 부품 수입업체는 유리

한국 수출기업이 우려하는 이유는 일본 제품과 가격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낮아지면 일본 기업은 해외에서 제품 가격을 낮추거나 가격을 유지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수익을 확보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반면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 한국 제품은 해외 구매자에게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 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기계, 철강 등 일본 기업과 수출시장이 겹치는 업종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해외 구매자가 품질과 기술 수준이 비슷한 한국산과 일본산 제품을 비교한다면 환율에 따른 가격 차이가 구매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실제 경쟁력은 환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제품의 품질과 기술력, 브랜드, 생산비, 현지 판매망, 계약 조건 등도 함께 작용한다.

반대로 일본에서 소재와 부품, 장비를 수입하는 국내 기업은 엔저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같은 가격의 일본산 부품을 구매하더라도 엔화 가치가 낮으면 원화로 환산한 수입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본산 원재료와 장비 비중이 높은 기업은 생산원가를 낮출 여지가 생긴다. 다만 수입 계약이 어떤 통화로 체결됐는지, 가격 조정 조건이 있는지, 환율 변화가 실제 납품 가격에 얼마나 반영되는지에 따라 효과는 달라진다.

엔화, 앞으로 더 떨어질까…전문가 전망도 엇갈려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지, 반등할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대가 이미 시장에 반영됐다며, 예상보다 강한 긴축 신호가 나오지 않는다면 엔화가 추가로 약세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제시한 관점에서는 원·엔 환율 840원대가 반드시 바닥이라고 볼 수 없다.

반면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국채금리 상승세가 둔화하면 엔화 가치가 오를 여력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국채금리는 정부가 발행한 채권에서 형성되는 금리로, 미국 국채금리가 오르면 달러 자산의 투자 매력이 높아져 다른 통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미국 국채금리 상승세가 약해지면 달러 자산의 상대적인 매력이 낮아지면서 엔화가 반등할 가능성도 생긴다.

결국 엔화 투자 수익은 현재 환율이 과거보다 낮은지뿐 아니라 앞으로 원화와 엔화의 가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달려 있다. 개인 투자자는 환전 수수료와 투자 기간, 손실 가능성을 따져야 하며, 기업은 수출 대금과 수입 비용, 외화 대출의 통화 구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엔저라도 투자자와 기업의 자금 흐름에 따라 이익과 부담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