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어느덧 7주기… 故 설리의 죽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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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좀 예뻐해주세요”… 故 설리의 눈물
매년 10월 중순이 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2019년 우리 곁을 너무 일찍 떠나버린 가수 겸 배우 고 설리(본명 최진리)다.

2009년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걸그룹 f(x)로 데뷔한 설리는 당대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비주얼과 특유의 화사한 매력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아역 배우로 시작해 아이돌 그룹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으며 무대 위를 누볐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무게는 어린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무거웠다.
2019년 10월 14일, 대중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비보를 접하게 된다.
설리의 매니저는 전날 오후부터 연락이 닿지 않던 설리가 걱정돼 자택을 찾았고 극심한 우울증을 앓던 그가 연락 두절 상태임을 경찰에 신고했다. 곧바로 소방대원이 출동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그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향년 25세. 너무나 젊고 아름다운 나이에 전해진 급작스러운 소식에 유족과 팬들은 큰 슬픔에 빠졌다.
현장에서 타살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경찰은 유족의 동의를 얻어 진행한 부검에서도 타살 정황이 없음을 확인하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현장에는 유서 대신 평소 마음을 적어 뒀던 다이어리 메모가 발견됐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비공개로 처리됐다.

사망 전날까지도 광고 촬영 일정을 차질 없이 소화하고 인스타그램에 평소와 다름없는 게시물을 올렸기에 비보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실시간 검색어는 온통 그의 이름으로 도배됐고 언론은 연일 관련 속보를 보도했다.
장례 절차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비공개로 발인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일부 언론에 의해 장소가 노출되면서 언론과 일반인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에 소속사 측은 팬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별도의 조문 장소를 마련해 이틀간 조문객을 받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비보 이후 설리의 과거 발언과 행보가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는 생전 '악플의 밤'에 출연해 "사람 최진리의 속은 어두운데 연예인 설리로서 밖에서는 밝은 척해야 할 때가 많다. 내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다"고 털어놓으며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던 고충을 고백한 바 있다.
또한 f(x) 탈퇴 후 첫 공식 행보로 팝업스토어를 열었던 웹 예능 '진리상점' 역시 사후 재평가를 받았다. 기획 초기에는 온갖 비난과 편견 어린 악플이 쏟아졌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그가 대중에게 다가가 오해의 색안경을 벗겨내고자 진심으로 소통하려 했던 모습이 뒤늦게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특히 방송 말미, 눈시울을 붉히며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주세요, 시청자님들 저 좀 예뻐해주세요"라고 나지막이 호소하던 그의 모습은 대중이 가했던 무분별한 시선과 비난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가 남긴 눈물 어린 호소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 거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터넷 댓글 창을 둘러싼 거대한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설리 사망 그 후, 변화된 사회적 제도와 ‘사이버 렉카’의 등장
설리의 비극적인 사건이 있고 나서야 우리 사회는 비로소 온라인 공간의 잔혹성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주요 포털 사이트들이었다. 2019년 10월 카카오(다음)가 연예 뉴스 댓글 잠정 중단 선언을 시작으로 2020년 네이버와 네이트 역시 연예 기사 댓글 서비스를 전면 폐지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악의적인 댓글 판을 깔아주던 장벽 하나가 비로소 허물어진 순간이었다.

이어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실검)' 차트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마녀사냥을 부추기고 여론 왜곡 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실시간 검색어의 폐지는 온라인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악성 댓글 작성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정체성 확인 요건을 높이는 일명 '설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발의가 잇따라 추진되며 제도적 보완책이 논의됐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댓글창이 닫히고 실검이 사라졌다고 해서 타인을 향한 언어폭력이 뿌리 뽑힌 것은 아니었다. 악의적인 화살은 곧바로 또 다른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해외 서버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로 무대를 옮긴 악플은 오히려 더 자극적으로 진화했다. 이른바 '사이버 렉카'의 등장이다.
사이버 렉카들은 유명인의 사소한 언행이나 허위 루머를 조작·부풀려 자극적인 썸네일과 영상으로 제작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조회수 수익을 올렸다. 포털 연예 기사의 댓글은 사라졌지만 유튜브 영상 아래 달리는 수천 개의 악성 댓글과 억측은 당사자들에게 과거보다 더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사이버 렉카의 대표적인 폐해로 손꼽히는 사건이 바로 걸그룹 아이브(IVE) 멤버 장원영과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벌인 유튜브 채널 '탈덕수용소'와의 법적 투쟁이다. 탈덕수용소 운영자는 장원영을 비롯한 수많은 연예인들에 대한 악의적인 허위 사실을 지속적으로 유포하며 인격을 모독했고 이를 통해 억대의 수익을 창출했다.
이에 장원영과 소속사는 미국 법원으로부터 정보공개 명령을 받아내는 등 적극적인 법적 대응 끝에 해당 운영자의 신원을 확보하고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했다. 나아가 해당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형사 재판에 넘겨지며 법적 대가를 치르게 됐다.
사이버 렉카뿐 아니라 SNS의 발달로 타인의 사생활에 접근하고 소통하는 일이 쉬워지면서 익명성에 기대 무분별한 비난과 악성 댓글을 퍼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상 명예훼손과 모욕 범죄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사건은 잠정 1만 2900건으로 집계됐다. 별도 집계를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전년 1만 1931건보다 8.1% 늘었다.
검거 건수 역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지난해 검거 건수는 잠정 1만 262건으로 전년 1만 22건보다 2.4% 증가했으며 검거 인원은 1만 1454명으로 나타났다. 2014년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는 3702건에서 1만 2900건으로 248.5% 증가, 검거 건수도 2744건에서 1만 262건으로 274% 늘었다.
악플은 '표현의 자유'인가… 말에 따르는 엄중한 책임
사이버 렉카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악플 문제가 논란이 될 때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이들이 있다.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이라면 대중의 평가와 비판 역시 감내해야 한다는 이른바 '유명세' 논리다.

그러나 이는 자유의 본질을 왜곡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근본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기본권과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누릴 수 있는 상대적인 권리다. 건전한 비판과 의사 표현은 보장돼야 마땅하지만 무분별한 비난, 인격 모독과 허위 사실 유포, 악의적인 혐오 발언은 자유의 범주에 들어설 수 없다.
자유가 폭넓게 보장된다고 알려진 미국 등 서구 사회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타인에게 모욕이나 증오 발언을 할 수 있는 면죄부를 의미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발언 자체를 사전 차단하지 않더라도 그 발언으로 인해 타인이 입은 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포함해 혹독한 법적 책임을 묻는다. 즉 진정한 자유에는 언제나 그에 상응하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익명 뒤에 숨어 타인에게 비난을 퍼붓는 악플러들과 사이버 렉카들은 자신의 언행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질 의사가 없다. 그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이익에만 몰두할 뿐이다. 따라서 이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닌 폭력을 숨기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악플이 가져오는 폐해는 비단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교 폭력, 직장 내 괴롭힘, 일반인 대상 사이버 불링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수많은 평범한 이웃들 역시 타인이 던진 무심한 말 한마디, 댓글 한 줄에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고 삶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
타인을 향한 악의적인 비난은 결코 정당한 표현이 될 수 없다. 한 청춘을 떠나보낸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우리가 고 설리를 기억하며 되새겨야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