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레이스 마라톤서 쓰러져 끝내 사망한 유지원 씨... 전설급 마라톤 선수, 이런 입장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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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마라톤 대회 사망 사고 안 일어나려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감독이 잇따르는 마라톤 대회 사망 사고의 원인을 짚고 재발 방지를 당부하는 영상을 13일 유튜브에 올렸다. 서울 도심 마라톤 대회에서 쓰러진 20대 아마추어 러너 유지원씨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이다. 황 감독은 무리한 기록 경쟁이 사고로 이어진다며 경종을 울렸다.

숨진 유지원씨. / 유씨 인스타그램
숨진 유지원씨. / 유씨 인스타그램

유씨는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2026 서울레이스' 하프코스에 출전했다. 오전 8시 49분쯤 20.6km 지점인 종각역 인근 청계천로에서 쓰러졌다. 결승선까지 500m도 남지 않은 곳이었다. 대회 관계자가 119에 신고하고 심폐소생술(CPR)을 했다. 유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서울레이스 조직위원회는 12일 홈페이지 공지문으로 참가자 사망 사실을 알렸다.

유씨는 카이스트(KAIST) 대학원에서 인공지능 반도체를 연구하던 학생이다. 하프 1시간 22분대, 풀코스 2시간 56분의 기록을 가진 아마추어 여성 러너로 동호인들 사이에서 주목받았다. 사고 당시에도 하프 여자부 상위권에서 달리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사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황영조 감독. / '영조형' 유튜브 채널
황영조 감독. / '영조형' 유튜브 채널

황 감독은 유씨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 '영조형'에 '마라톤 대회 사망 왜 일어날까?'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선 유씨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상 설명란에 "작년에도 같은 내용으로 마라톤 대회 중 사망 사고에 대해 영상을 올렸다. 1000만 러닝 인구 시대에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 주최 측은 어떤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적으며 간접적으로 유씨 사망 사고를 언급했다.

황 감독은 "최근에도 많은 마라톤 대회에서 사망 사고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며 "건강을 위한 러닝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러닝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심정지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는 얘기가 계속 들려온다"며 "날씨가 더운 날 경기가 있으면 더 많다"고 전했다.

황 감독은 "운동을 할 때는 지금 내 몸이 뛸 수 있는 상태인지, 마음의 준비는 돼 있는지 먼저 느껴야 한다"며 "일반 러너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대회에 많이 참가해 뛰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선수 시절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선수 때 최대 심박수가 215까지 올라갔다. 그만큼 심장에 무리가 오지만 선수였기 때문에 평소 그런 훈련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인은 잠도 충분히 못 자고 업무 스트레스에 훈련도 안 된 상태로 대회에 나갈 수 있다"며 "그럴 때 사고로 이어진다"고 했다.

황 감독은 "엘리트 선수들도 기권을 많이 한다"며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잘 뛰는 사람이다. 멈출 줄 안다는 건 자기를 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대회 몇 달 전 신청만 해놓고 준비 없이 출전하는 경우도 지적했다. 황 감독은 “5km 정도 가볍게 뛰어야 할 몸인데 하프코스 번호표를 달고 하프를 뛴다”며 "그런 사람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이어 "준비가 안 됐을 때는 과감하게 코스를 줄여야 한다"며 "기록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훈련하는 날‘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레이스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황 감독은 거리를 늘리는 기준도 내놨다. 5km를 30분 안에 뛰면 10km에, 10km를 1시간 안에 뛰면 하프코스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하프코스를 2시간 안에 뛴 뒤에야 풀코스를 준비하라고 했다. 황 감독은 "나이가 많거나 체중이 많이 나가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은 1년, 2년이 걸릴 수도 있다"며 "기준은 내 몸"이라고 말했다.

황 감독은 "뛰다가 평소와 다른 호흡, 심장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며 "평소 거리와 평균 속도, 날씨, 코스를 고려해 그날 몸 상태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는 기록, 순위, 욕심, 무리한 레이스에서 생긴다"고 했다.

숨진 유지원씨. / 유씨 인스타그램
숨진 유지원씨. / 유씨 인스타그램

마라톤 대회 주최 측도 비판했다. 황 감독은 "돈이 된다니까 사업적으로 대회가 엄청나게 열리고 있다"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가 돼야 하는데 안 된다. 구급차 한 대 불러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감독은 구급차를 5km 대회에 2대, 10km 대회에 4대, 하프코스 대회에 8대, 풀코스 대회에 10대 배치하자고 제안했다. 출발선과 도착 지점에 기본으로 두고 코스 중간에도 세워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응급조치가 바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대회냐"며 "뛰는 사람도 자기 몸을 알고 뛰어야 하지만 대회 측도 안전을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SNS에 기록을 자랑하는 문화도 짚었다. 그는 "요즘 자기가 뛰는 모습을 SNS로 자랑하는 사람이 많다"며 "건강을 위한 달리기가 돼야 하는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려고 무리하게 뛰다 보니 심장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 감독은 아마추어 기록이 최근 크게 빨라졌다고 했다. 러닝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풀코스를 3시간 안에 들어오는 이른바 '서브3'를 달성했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러닝화 성능이 좋아진 점도 배경으로 꼽았다. 황 감독은 매일 달리고 주말마다 토요일, 일요일 연달아 기록을 재며 뛰는 습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황 감독은 "빨리 뛰는 게 잘 뛰는 게 아니다. 좋은 자세로 뛰는 사람이 잘 뛰는 것"이라며 "완주를 목표로 달려라"라고 했다. 어떤 날은 5km, 어떤 날은 7km나 10km를 뛰고, 기분이 내키면 하프코스를 한 번씩 뛰고, 1년에 한두 번 풀코스를 즐기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도 했다.

황 감독은 영상 말미에 "동호인에게 러닝은 취미이고 건강"이라며 "빨리 뛰는 게 아니라 즐겁게 뛰는 게 잘 뛰는 것이고, 부상 없이 뛰는 게 잘 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너무 경쟁하고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뛰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영조 감독이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