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소방 예산 34억5000만원 삭감... 노후 소방차 교체 예산까지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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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소방관 추모비까지 끊어

소방이 재정 빨대라고 말한 추미애 경기지사가 소방 예산을 30억원 넘게 삭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는 지난 8월 도의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에서 소방 예산 34억5000만원을 감액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항목별로는 노후 소방차 교체 예산이 26억5000만원, 전문구급장비 보강 예산이 4억원, 구조장비 보강 예산이 3억원, 순직 소방관 추모 행사비가 1억원이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추 지사는 소방이 재정 빨대라는 발언에 대해 해명하며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 나온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장 장비와 순직자 예우 예산을 깎은 셈이다.

순직 소방관 추모 예산 삭감 사실은 소방노조인 미래소방연합노동조합이 16일 공개하면서 알려졌다. 삭감된 예산은 순직 소방공무원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경기소방 119메모리얼데이' 사업비 1억원 전액이다. 이 행사는 지난해 처음 열렸다. 경기도는 당시 행사를 매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행사성 사업을 정비하더라도 순직 소방관 추모와 유가족 예우에까지 같은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며 예산 복원을 요구했다.

경기도는 재정 위기 속에서 민생 필수 예산을 확보하려고 불필요한 행사성 예산을 줄였다고 했다. 기존 계획대로라면 1억원을 들여 소방차 30대로 카퍼레이드를 하고 외주 용역에만 7000만원이 든다는 설명이다. 경기도는 필요한 행사는 기관 사무관리비로 치르겠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 출석했다.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이 소방 예산 문제는 국비 지원 확대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자 추 지사는 "소방이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답했다. 이어 경기도 소방 인건비만 2027년에 1조1000억원을 "잡아먹는다"고 말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소방 재정의 대부분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가가 부담한 몫은 지방 소방 예산의 10.7%, 국가직 소방공무원 인건비의 8.6%에 그쳤다.

발언 영상이 SNS로 퍼지자 양대 노총 소속 소방노조가 잇달아 성명을 내고 사과를 요구했다. 경기도는 14일 국가직 전환 이후에도 지자체가 소방 재정 대부분을 떠안는 구조를 지적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추 지사는 직접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소방통합공무원노조는 15일부터 경기도청 앞에서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16일 경기 부천의 한 금속부품 도장 공장에서 불이 났다. 진화 작업을 벌이던 김진석 소방위(44)가 중태에 빠져 17일 새벽 끝내 숨졌다. 김 소방위는 퇴근을 20여분 앞두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섯 살 딸이 있다. 이 화재로 소방관 5명이 다쳤다. 이 가운데 2명은 중상을 입었다. 정부는 고인을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17일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추 지사는 16일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화재 발생 약 3시간 만인 오전 11시20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추 지사가 격려의 말을 건네는 동안 일부 소방관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추 지사는 '빨대' 발언에 대한 소방노조의 반발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을 끊고 "그런 얘기 하지 마시죠"라고 말했다.

추 지사가 입을 닫은 사이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사과했다. 이용우 민주당 대변인은 16일 서면브리핑에서 추 지사의 표현으로 "상처받은 소방공무원과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김민석 민주당 대표는 "앞으로 당 소속 공직자의 부적절한 발언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깊은 숙의를 거쳐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추 지사의 직접 사과는 발언 나흘 만인 17일 나왔다. 추 지사는 경기 부천 순천향대 부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소방위의 빈소를 조문한 뒤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재정 문제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실수"라며 "사과를 바라시니까 정말 마음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됐다면 깊은 유감의 말씀을 드리고 마음을 다해 사과드리겠다"며 "소방관 폄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화재 현장에서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제(16일) 화재 현장에서도 사과 발언을 요구하셨지만 이 자리는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묻지 말아달라 한 것"이라며 "사과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빈소에서는 일부 소방관이 추 지사에게 "사진 찍으려고 왔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17일 경기 부천시 순천향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천 도장공장 화재 사망 소방관의 조문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

사과 이후에도 비판은 가라앉지 않았다. "사과를 바라시니까"라는 표현이 요구에 떠밀린 사과로 들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남이 하라고 해서 하는 사과는 진정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며 "자신의 언행이 소방공무원의 자긍심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스스로 반성하라"고 촉구했다.

여당 안에서도 쓴소리가 이어졌다. 일부 민주당 권리당원은 추 지사의 출당을 요구했다.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17일 페이스북에 '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를 인용하며 "말의 본뜻이 그게 아니라고 해명할 일이 아니라 상처받은 분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먼저 하는 게 도리"라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소방 예산 삭감을 고리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추 지사는 12억원짜리 관사에 들어가고 새 차를 샀다"며 "도민 혈세를 빨아먹는 재정 빨대는 추 지사 본인"이라고 말했다. 장 대표는 삭감된 소방차 구입 예산 26억5000만원이면 소방차 25대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추 지사는 앞서 13일 국정감사에서 관사와 관용차 논란에 대해 "관사는 전세 계약이어서 호화·사치로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어 "관용차는 전임 지사가 매입 결정을 한 것이며 친환경차 도입으로 유지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추 지사가 9년 전에는 소방 인력 확충을 강하게 주장했던 사실도 다시 회자되고 있다. 추 지사는 민주당 대표이던 2017년 12월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뒤 "시급히 전문 소방인력을 확충하고 그 소방인력들이 꾸준히 기량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불이 난 금속 공장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상과 업무상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금속 세척 과정에서 생긴 유증기에 불꽃이 옮겨붙어 불이 났을 가능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