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뛰다 죽어도 “개인보험으로 처리하라”… '무늬만 보험'으로 달리는 마라톤

Google 검색에서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주요 마라톤대회 15곳 살펴봤더니… 질병사망 보장 확인된 대회 단 2곳뿐
보험사 인수 제한에 개인정보 관리 부담… 참가자 안전망 확대 '높은 문턱’

결승선까지 남은 거리는 500m. 서울 도심 마라톤 하프코스 20.6㎞ 지점에서 쓰러진 20대 여성 러너는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그가 출전한 대회의 참가 유의사항에는 "사망, 상해, 기타 보험은 개인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부상하거나 사망하면 개인보험으로 해결하란 얘기다.

도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러너들이 달리고 있는 모습.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도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러너들이 달리고 있는 모습. /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

마라톤 대회 참가자가 크게 다치거나 숨져도 충분한 보험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를 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다. 1만 명 넘는 러너가 도심 도로를 메우는 대형 대회에서도 참가자가 기댈 보험은 허술하다. 주최 측이 드는 보험은 대개 주최 측 과실이 인정돼야 보상하는 배상책임보험이다. 보상받으려면 주최 측 잘못부터 입증해야 하는 구조다.

20대 여성 A씨는 11일 열린 ‘2026 서울레이스(서울달리기)’ 하프코스(21.0975㎞)에 출전했다. 국내 대학원에서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연구하는 A씨는 SNS로 러닝 훈련 과정을 공유해 왔다. 지난 2월 한 마라톤 대회에서는 여자부 1위를 차지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A씨는 오전 8시 49분쯤 종각역 인근 청계천로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현장 관계자의 신고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12일 오후 1시쯤 끝내 숨졌다.

서울레이스 조직위원회는 12일 홈페이지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 필요한 후속 조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올렸다. 서울레이스는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한 행사다.


소송 거쳐 주최 측 과실 밝혀야 보상… ‘배상책임’의 높은 문턱

유가족이 대회 보험으로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보상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레이스 공식 홈페이지의 참가 유의사항에 따르면 조직위원회가 가입한 보험은 참가자 개인을 직접 보장하는 상해보험이 아니다. 주최 측의 배상 책임을 보장하는 '영업배상책임보험'이다. 두 보험의 보상 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대형 마라톤 대회의 보험을 다수 맡아 온 한 보험업계 실무자는 위키트리에 "영업배상책임보험은 원칙적으로 주최 측에 법률상 손해배상책임이 생겼을 때 그 손해를 약관 범위 안에서 보상하는 보험"이라며 "이와 달리 단체상해보험은 주최 측 과실 유무보다 피보험자에게 약관에서 정한 상해나 질병사망 등 보험사고가 발생했는지가 핵심이다. 상해보험은 주최 측의 법률상 과실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요건만 맞으면 약정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결정적인 차이"라고 했다.

영업배상책임보험만 가입한 대회에서는 참가자가 사고를 당해도 주최 측의 법적 배상 책임이 인정돼야 보상받을 수 있다. 마라톤 도중 심정지 사고가 났다면 주최 측의 응급처치가 적절했는지, 자동심장충격기(AED) 투입이나 구호 인력의 대응이 늦지 않았는지 따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주최 측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의 인과관계가 핵심 판단 기준이 된다.

영업배상책임보험과 단체상해보험의 보상 기준 차이.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영업배상책임보험과 단체상해보험의 보상 기준 차이.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

반면 단체상해보험은 주최 측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약관에서 정한 사고와 보장 요건을 충족하면 보험금이 나온다. 보장 범위와 지급 기준은 가입한 상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영업배상책임보험만 가입한 대회에서 사고가 났을 때 현실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는지 변호사와 손해사정사 자격을 함께 보유한 조민우 법무법인 주성 변호사에게 물었다.

조 변호사는 "주최 측 과실이 인정돼야 보상이 가능한 영업배상책임보험의 특성상 사고 이후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마라톤 도중 발생한 심정지나 급사 사고는 주최 측 과실뿐 아니라 참가자의 기존 질환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따져야 해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더 복잡해진다는 설명이다.

조 변호사는 "분쟁의 여지가 있고 해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과실이 인정돼 배상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과실상계나 책임제한으로 그만큼 보상금이 깎이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보상 과정은 더 복잡하다. 마라톤은 신체에 큰 부담을 주는 운동이어서 참가자가 갑자기 쓰러져도 주최 측의 관리 소홀을 곧바로 확인하기 어렵다. 사고 원인이 개인의 건강 문제인지, 주최 측의 안전관리 미흡인지 가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조 변호사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주최 측 과실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며 "대부분 소송을 포기하거나 보험사와 정상적인 보상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에 합의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참가자 개인을 직접 보장하는 보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해보험은 급격하고 우연한 외래의 사고에 대해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주최 측 과실을 입증하지 않아도 약관상 요건만 충족하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어 러너에게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서울레이스 유의사항
서울레이스 유의사항

서울레이스 접수 규정의 보험 안내에는 "사망, 상해, 기타 보험은 개인보험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부상, 탈진, 심정지 등 중대한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니 참가자가 스스로 건강을 확인해야 하며 주최 측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교통통제가 풀린 뒤 계속 달리다 생긴 사고는 사무국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문구도 들어 있다.

위키트리는 유족 지원 현황과 참가자 보험 적용 여부를 서울레이스 조직위 측에 문의했다. 조직위 측은 "응급상황 발생 후 비상연락망에 기재된 보호자 대표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며 유가족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며 후속 조치에 임하고 있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이번 사고의 보험 처리 계획이나 보상 기준, 참가자 상해보험에 별도로 가입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주요 마라톤 15곳 분석… ‘심정지·질병사망 보장’ 단 2곳뿐

강원권 대형 A 마라톤 공식 유의사항. 주최 측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급성심근경색·뇌출혈 등 ‘마라톤 특정 질병’ 사망 시 최대 1억 5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구체적인 상해보험 약관이 명시돼 있다. / 대회 공식 홈페이지 캡처
강원권 대형 A 마라톤 공식 유의사항. 주최 측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급성심근경색·뇌출혈 등 ‘마라톤 특정 질병’ 사망 시 최대 1억 5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구체적인 상해보험 약관이 명시돼 있다. / 대회 공식 홈페이지 캡처

서울레이스만의 문제일까. 취재진은 최근 열렸거나 개최를 앞둔 전국 주요 마라톤 대회 15곳의 공식 참가 약관과 보험 규정을 분석했다.

참가자 보장 항목과 지급 조건을 구체적으로 밝힌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강원권의 대형 A 마라톤은 참가자 전원을 피보험자로 한 '마라톤 상해보험' 가입 사실과 보장 내용을 유의사항에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상해 사망이나 후유장해는 물론 급성심근경색증·뇌출혈·열사병 등 '마라톤 특정 질병'으로 숨졌을 때도 최대 1억5000만 원을 지급한다.

보장 기간은 대회 출발부터 완주 후 해산 전까지다. 주최 측 과실을 입증할 필요 없이 사망진단서 등 서류만 확인되면 유족에게 약정 보험금이 지급된다.

심근경색·뇌출혈 등 경기 중 발생 가능한 질환에 대해 5000만 원의 질병사망 특약 제공을 명시한 충청권 B 마라톤 보장 규정. / 홈페이지 갈무리
심근경색·뇌출혈 등 경기 중 발생 가능한 질환에 대해 5000만 원의 질병사망 특약 제공을 명시한 충청권 B 마라톤 보장 규정. / 홈페이지 갈무리

충청권에서 열린 B 마라톤도 참가자 전원에게 '마라톤 질병사망 5000만 원' 특약을 기본으로 제공했다. 풀·하프 코스 참가비가 4만 원대인 지역 대회지만 심근경색, 뇌출혈, 호흡곤란 등 경기 중 자주 발생하는 내과 질환을 명시했다. 주최 측 과실과 상관없이 사망 시 5000만 원을 지급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춘 것이다.

두 대회를 제외한 대다수 마라톤에서는 참가자 보장 내용과 지급 조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높은 배상책임 한도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주최 측 과실이 인정돼야 보상하거나 참가자에게 개인 상해보험 가입을 권하는 등 보장 방식과 수준이 제각각이었다.

대인 1인당 3억 원의 보상 한도를 명시했으나, 실제로는 주최 측의 과실이 인정되어야 보상이 가능한 주최자배상책임공제 가입 사실을 안내한 영남권 C 마라톤 유의사항. / 홈페이지 갈무리
대인 1인당 3억 원의 보상 한도를 명시했으나, 실제로는 주최 측의 과실이 인정되어야 보상이 가능한 주최자배상책임공제 가입 사실을 안내한 영남권 C 마라톤 유의사항. / 홈페이지 갈무리

'대인 1인당 3억 원'이라는 높은 보상 한도가 실제 보장 범위를 오해하게 만드는 대회도 있었다. 최근 열린 영남권 C 마라톤이 대표적이다. 수억 원대 보상 한도를 안내하고 있지만 주최 측의 법적 배상책임이 인정돼야 보상하는 주최자배상책임공제여서 참가자가 기대하는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

주최자 배상책임보험 고지 및 구체적 보장 내용 없이 단순 단체·상해보험 가입 사실만 적어 둔 마라톤 공식 유의사항. / 홈페이지 갈무리
주최자 배상책임보험 고지 및 구체적 보장 내용 없이 단순 단체·상해보험 가입 사실만 적어 둔 마라톤 공식 유의사항. / 홈페이지 갈무리

참가자에게 상해보험에 직접 가입하라고 안내하는 대회도 적지 않았다. 수도권의 D 마라톤과 영남권 주요 대회 3곳 등은 공식 안내에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본인 비용으로 대회 기간 상해보험에 가입하라"며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생긴 위험에 대해 주최 측은 응급조치 외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수도권의 E 하프마라톤은 유의사항으로 "개인의 질병 및 신체 이상 등으로 발생한 사고는 보상 범위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F 대회와 언론사 주관 G 마라톤도 "참가자 전원을 위해 상해 보험을 가입하지만 외래적 부상 이외 개인 질병이나 건강상의 부상에 대해 주최 측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보험 가입 사실만 알릴 뿐 보장 내역은 알 수 없는 대회도 있었다. H, I 마라톤 등은 보장 금액이나 지급 조건 설명 없이 '단체보험 가입' 또는 '영업배상책임보험 가입(과실 심의 후 보상)'이라는 문구만 적어 놨다. 참가자로서는 어떤 사고에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미리 알기 어렵다.

가입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마라톤 안전망의 구조적 한계


마라톤 자료 사진. / 뉴스1
마라톤 자료 사진. / 뉴스1

대형 마라톤 대회에서 참가자 상해보험이 빠진 데는 주최 측의 선택만이 아니라 보험 상품 설계와 인수 과정의 현실적인 여건도 맞물려 있다. 수만 명이 신체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 특성상 보험사도 돌연사나 질병사망 담보를 인수하는 데 부담이 크다.

현장에서는 참가자를 위한 보험 보장을 넓히고 싶어도 가입 조건을 맞추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의 보험업계 실무자는 "대회를 준비하는 많은 주최 측 관계자도 참가자 보호를 위해 충분한 보험에 가입하길 원하고 더 나은 보장 조건을 찾아 달라는 요청도 꾸준히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가입 과정에서는 제약이 많다. 이 실무자는 “2009년 실손의료비 제도 개편 이후 과거 취급되던 마라톤 전용 특약이 대거 축소되거나 판매가 중단됐다”며 "대규모 인원이 몰리는 대회의 심정지 같은 질병사망 담보는 사고 위험과 손해율이 높아 보험사들이 인수 심사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상해보험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참가자 개인정보 처리도 걸림돌이다. 영업배상책임보험과 달리 참가자 개인을 피보험자로 하는 단체상해보험은 상품과 가입 방식에 따라 개인별 명단과 식별정보를 내야 할 수 있다. 일부 가입 절차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등 고유식별정보를 처리해야 해 관련 법령에 따른 적법한 근거와 절차를 갖춰야 한다.

참가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 대회에서는 이 정보를 정확히 모아 보험사에 넘기는 것부터 상당한 행정 부담이다. 피보험자 명단을 전산에 입력해 누락이나 오류를 확인해야 한다. 참가자 변경이나 취소가 생기면 정보도 고쳐야 한다. 수집한 개인정보의 보관과 관리, 유출 위험까지 따져야 한다.

이 실무자는 이를 단순한 행정업무 증가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정보를 적법하게 수집하고 제공할 절차를 마련하는 것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험 가입 뒤에도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할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영업배상책임보험만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주최 측이 참가자 보호를 소홀히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보험사의 인수 여부와 상품별 보장 조건, 대규모 명단 관리 등 가입 과정의 제약과 대회별 준비 여건을 함께 살펴야 한다.

다만 현실적 제약이 보장 공백을 그대로 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본 것처럼 일부 대회는 보험사와 협의해 급성심근경색증이나 뇌출혈 등 특정 질병으로 인한 사망까지 보장하는 단체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개별 주최 측의 노력에만 기대서는 참가자 보호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험사의 인수 기준과 보장 항목, 대규모 피보험자 명단 관리, 개인정보 처리 절차를 함께 개선할 방안이 필요하다. 주최 측과 보험업계가 이런 제약을 줄여 참가자에게 실질적인 보장을 제공할 보험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공시설 승인 늘었지만… 지자체도 법률도 ‘보험 규정’ 사각지대

서울 도심에서 달리는 러너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서울 도심에서 달리는 러너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 뉴스1

마라톤 대회 참가자 보험에 공백이 생기는 데는 지자체의 행정적 관리 범위와 제도적 한계도 자리 잡고 있다. 지자체는 도심 마라톤 개최를 위한 공공시설 사용을 승인하고 사용료를 걷는다. 하지만 참가자 개인을 위한 상해·질병사망보험 가입 여부와 보장 범위까지 확인하게 하는 제도적 기준은 없다.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가 출발·도착지 장소 사용을 승인한 마라톤 대회는 2024년 53건에서 2025년 94건, 2026년 117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이 의원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다.

장소 승인이 급증한 이면에는 쏠쏠한 지자체 수입이 있다. 서울시는 관련 조례에 따라 공원과 광장 부지를 빌려줄 때 사용료 외에도 참가비 총액의 10%를 '입장권 수입료' 명목으로 걷는다. 서울시가 최근 5년간 거둔 수입은 약 33억 원에 이른다. 올해는 8월 기준으로 이미 12억 원을 넘어섰다.

수십억 원대 수입을 거두면서도 주최 측이 든 보험이 러너를 보호할 실질적인 안전망인지 검증하는 행정 절차는 전혀 없다.

현행 제도상 마라톤 대회 개최 자체가 지자체의 인허가나 승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 등을 출발·도착지로 쓸 때 거치는 지자체 심의는 '공공시설 장소 사용 조례'에 따른 대관 절차에 불과하다.

지자체는 장소 사용 요건과 사용료 납부만 확인되면 승인을 내준다. 주최 측이 낸 안전관리계획서 속 보험이 실질적인 상해보험인지, 형식적인 배상책임보험인지까지 따질 법적 의무도 근거도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상위 법률인 국민체육진흥법의 입법 공백이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과 시행령은 1000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체육행사의 주최자가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고 관계 기관 협조 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전관리계획 필수 요건 어디에도 참가자 본인을 위한 상해·질병사망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조항은 없다.

주최 측이 참가비를 걷으면서도 참가자 상해보험 없이 법률상 과실이 입증돼야만 작동하는 영업배상책임보험으로 안전 요건을 갈음해 온 이유다. 법적 의무가 없다 보니 "사망·상해 시 개인보험 처리"라는 약관을 내걸고 참가자에게 안전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이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체육계와 러너들 사이에서는 상업성에 치우친 대회 운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은 최근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돈이 된다니까 사업적으로 대회가 엄청나게 열리고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치가 안 된다"며 "응급조치가 바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대회냐"고 말했다.

러닝 열풍 속에 주최 측은 수억 원대 참가비를, 지자체는 수십억 원대 사용료 수입을 챙기는 동안 참가자의 생명을 지킬 최소한의 장치는 빠져 있었다. '개인보험 처리'라는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대규모 스포츠 행사 주최자에게 참가자 상해·질병사망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