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소방관들, 추모 리본 달고 부산에서 '100층'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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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흉터 드러낸 58세 소방관도 도전

부산 해운대 엘시티에서 열린 전국 소방공무원 계단 오르기 대회에 12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001년 화재 현장에서 화상을 입은 58세 유장열 소방경도 방화복을 입고 100층 완주에 나섰다.

22일 연합뉴스가 생생한 현장을 전했다.

무거운 방화복과 소방 장비를 착용한 채 부산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 100층까지 계단을 오른 소방관들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끈 참가자가 있었다. 흰머리와 주름이 깊게 자리 잡은 대구소방서 유장열 소방경(58)이다. 완주를 마친 그가 땀에 젖은 방화복을 벗자 티셔츠에 적힌 ‘KOREA’라는 글자와 목과 팔에 남은 화상 흉터가 드러났다. 2001년 화재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구하다 입은 상처다.

유 소방경은 22일 부산 해운대구 엘시티 랜드마크타워에서 열린 ‘2026년 전국 소방공무원 엘시티 계단 오르기 대회’에 참가했다. 방화복과 소방 장비를 착용한 소방관들이 고층 건물 화재 대응에 필요한 체력과 정신력을 겨루는 행사다. 유 소방경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현장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에 투입되는 베테랑 대원이다.

완주에 기뻐하는 소방관 / 뉴스1
완주에 기뻐하는 소방관 / 뉴스1

그는 대형 화재 현장에서 체력 소모가 얼마나 큰지 설명하며 이번 대회에 참가한 이유를 밝혔다. 유 소방경은 “대형 화재에 출동하면 체력 소실이 심하다. 오늘 100층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며 “적지 않은 나이에 체력 관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체력 유지를 위해 오늘 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떠올린 것은 자신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유 소방경은 고 김진석 소방위 등 순직한 동료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어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동료와 구조를 기다리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완주 메달을 든 그는 쑥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엘시티 계단 오르기 대회는 전국 소방공무원의 고층 빌딩 화재 진압 대응 능력을 높이고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 마련됐다.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는 높이 411m로,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다. 1층에서 100층까지 계단은 총 2372개다.

참가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2022년 670명으로 시작한 대회에는 2023년 895명, 2024년 965명, 2025년 979명이 참가했다. 올해는 역대 최대 규모인 1200여 명이 출전했다. 참가자들은 고 김진석 소방위를 추모하는 근조 리본을 달고 계단을 올랐다.

엘시티를 오르며 힘을 내는 소방관 / 뉴스1
엘시티를 오르며 힘을 내는 소방관 / 뉴스1

대회는 방화복 개인전과 간소복 개인전, 단체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방화복 개인전에서는 서울본부 대통령경호처소방대 임건엽 소방관이 19분 11초를 기록했다. 간소복 개인전에서는 경기북부 일산소방서 변정원 소방관이 14분 19초로 최고 기록을 세웠다. 단체전 최고 기록은 부산본부 북부소방서가 세운 17분 30초였다.

임 소방관은 2024년에 이어 두 번째로 대회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록이 좋아서 제가 1등이지만, 전국 모든 소방공무원 누구나 현장에 구할 사람이 있다면 101층을 여러 번 올라갈 체력이 있다”고 말했다. 순위와 기록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구조를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올해 대회에는 주한미군 대구기지사령부 소방대장인 후안 P. 로드리게스도 참가했다. 대회에 출전한 첫 미국인 소방관이다. 그는 보름 전 미국 시카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언급하며 이번 계단 오르기가 그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소방대장은 “30층을 지나서 왼쪽 다리 경련으로 포기하고 싶었지만, 뒤에 오던 참가자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서 계속했다”고 말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지만 완주를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 것이다.

완주 이후 힘들어하는 소방관 / 뉴스1
완주 이후 힘들어하는 소방관 / 뉴스1

고층 건물 화재에서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다. 소방관은 방화복과 헬멧, 공기호흡기 등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이동해야 하며, 화재가 발생한 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장비 무게와 열기, 연기, 긴장감이 더해지는 현장에서는 평소 체력과 지구력을 유지하는 일이 구조 활동과 직결된다.

계단 오르기 대회는 이러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고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자리다. 특히 고층 건물은 층수가 높을수록 현장 접근에 시간이 걸릴 수 있어, 소방관에게는 반복적인 계단 이동을 견딜 수 있는 체력과 위급한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신력이 요구된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대회와 함께 부산의 안전 취약지역 지원을 위한 고향사랑기부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가족이 함께 부산 갈맷길을 걷는 ‘119 FAMILY WALK’도 마련해 소방공무원뿐 아니라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 / 뉴스1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소방관들 / 뉴스1

이진호 부산소방재난본부장은 이번 대회가 기록과 순위를 겨루는 데 그치지 않고 초고층 재난 현장에서 필요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며 전국 소방공무원의 협력과 화합을 다지는 자리라고 밝혔다. 부산소방재난본부는 대회의 내실을 다져 전국을 대표하는 소방 행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올해 참가자들은 2372개 계단을 오르며 각자의 체력과 한계를 시험했다. 58세 유장열 소방경에게도 이번 완주는 개인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2001년 화재 현장에서 입은 화상 흉터를 안고 지금도 현장에 투입되는 그는 동료와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계단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