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이 무죄 선고받은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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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 “지가 다 잘난 줄” 녹취, “건방지다” 조작 지시 진술이 갈랐다

명태균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후원자에게 비용을 대신 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판결문을 보면 2심 재판부는 명씨와 후원자 김한정씨의 통화 녹취, 명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 업체 직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후 중구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후 중구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전날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사업가 김씨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여론조사의 의뢰와 대납 요청이라는 핵심 쟁점에 대한 직접 증거가 명씨 진술이 유일하다"며 "명씨의 진술은 전체적으로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MBC가 확보해 전날 보도한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재판부는 2021년 3월 6일 명씨와 김씨가 나눈 통화 녹취를 근거로 명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명씨는 수사기관에서 오 시장이 김씨를 직접 소개해 줬다고 진술했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의뢰하면서 비용을 요청하러 김씨를 직접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녹취에서 명씨는 김씨에게 "오 시장이 직접 소개시켜 준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씨는 "나는 시장한테 직접 얘기를 들은 것도 없고 철원이가 얘기해서 본 것"이라고 답했다. 명씨에게 김씨를 소개한 사람이 오 시장이 아니라 강 전 부시장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최소한 김씨는 명씨의 연락처를 오 시장이 아닌 강 전 부시장을 통해서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주일 뒤인 같은 달 13일 김씨와의 통화에서 명씨는 오 시장을 향한 불만을 쏟아냈다. 명씨는 오 시장을 가리켜 "지가 다 잘난 거고 지가 다 챙기려고 한다"고 했다. 명씨는 자신과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오 시장을 만들었다며 오 시장이 김 위원장에게 무릎 꿇고 만들어 달라고 애원해야 하는데 왜 자기를 설득시키라고 하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재판부는 "명씨는 오 시장이 소위 '울면서 매달렸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오 시장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 탄핵증거로 채택된 명씨와 김씨의 통화 녹음에는 명씨가 김씨에게 "하여튼 오세훈이는 몰라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말하는 대목도 담겼다. 오 시장 측은 이 대목이 공소사실과 배치된다고 주장해 왔다.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후 중구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으로 기소돼 2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오후 중구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 뉴스1

조선일보가 확보해 전날 보도한 판결문에는 오 시장이 명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할 이유가 없었다는 재판부 판단도 담겼다. 명씨는 2021년 1월 22일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장이 모는 차를 타고 경남 진해 장복터널을 지나던 중 오 시장에게서 전화를 네 차례 받았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이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이기는 것으로 여론조사가 나온다며 나 의원을 이기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던 오 시장이 당원보다 일반 국민 지지도가 더 높게 나오는 상황이었다고 봤다. 오 시장이 나 의원을 이기는 여론조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오 시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로서는 오 시장이 명씨에게 당장 여론조사를 의뢰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명씨가 오 시장에게 불리하도록 여론조사를 조작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판결문에 담겼다. 명씨가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에서 일했던 강혜경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오 시장이 1위로 나온 조사를 나 의원이 1등 한 것으로 바꾼 조사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강씨는 그 무렵 강 전 부시장이 명씨에게 조사를 안 해도 자신들이 1등이라고 말하던 시기였다고 했다. 강씨는 명씨가 오 시장이 1등 하는 조사를 가져다주면 안 된다며 "건방지다"고 말하면서 조작을 지시한 경우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명씨의 전문성도 낮게 봤다. 재판부는 당시 국민의힘 주변의 평가를 들어 명씨가 "선거의 구도, 전략, 여론조사 판세 분석이 뛰어난 사람일 뿐 여론조사와 관련한 어떤 전문성을 갖췄다고 볼 사정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명씨는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정치적 격변 상황에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김 위원장에게 접근해 특정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그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후원자인 김씨와 오 시장의 관계도 다시 따졌다. 재판부는 김씨가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오 시장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자발적으로 내걸면서 오 시장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봤다. 김씨는 후원금을 내는 등 후원자 역할을 했지만 2021년 보궐선거 때까지 캠프에서 역할이나 보직을 받지 못했다. 2021년 1월 1일부터 4월 15일까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는 5건이었다. 김씨가 그해 2월 텔레그램에 가입한 뒤 주고받은 메시지 18건 가운데 2건을 빼면 모두 김씨가 보낸 것이었다. 오 시장은 3월 31일 "고맙습니다 ㅎㅎ"라고 한 차례 답장했을 뿐이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불법 정치자금을 요구할 정도의 친밀한 관계라거나 다른 후원자들보다 각별한 사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불법적인 여론조사 비용의 대납을 김씨에게 대놓고 직접 요청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명씨의 진술 태도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명씨 진술에 대해 "직접 경험한 사실과 단순히 추측에 근거하나 과장되게 진술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며 "자신이 기존에 한 진술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오 시장이 명씨를 고소하겠다고 밝힌 뒤에야 명씨가 본격적으로 혐의를 진술하기 시작한 점, 공개적으로 오 시장을 어떻게 엮는지 보라는 취지의 위협적인 말을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명씨가 오 시장 측과 사이가 틀어진 뒤 당선 이후 자신의 기여를 인정받지 못했다며 섭섭한 감정을 품은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

재판부는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면 유죄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피고인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수사기관의 수사와 기소를 통해 억울하게 처벌받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오래된 형사법의 대원칙"이라고 밝혔다.

앞서 1심은 명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메시지 내역, 만남 시기, 여론조사 자료 공유 내역 등을 토대로 일부 진술을 믿을 만하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1심은 지난 7월 여론조사 5건과 관련한 2100만원의 대납을 인정해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했다. 강 전 부시장에게는 벌금 300만원, 김씨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오 시장은 선고 뒤 취재진에게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게 돼서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했다"며 "오세훈의 결백을 믿어 주시고 오세훈이 다시 서울시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투표를 해 주신 서울시민 여러분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건희 특검팀(특별검사 민중기)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상고해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박노수 특검보는 "명씨의 진술뿐만 아니라 공소사실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증거들이 있다"며 "그런 결정적인 증거에 대해서 오늘 재판부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 시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씨에게 여론조사 10회를 의뢰하고 김씨에게 조사비 3300만원을 대신 내게 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불구속 기소됐다. 정치자금법은 정치자금 부정수수죄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5년간 공직에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 형량이 그대로 확정됐다면 오 시장은 서울시장직을 잃게 될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