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야해서 작가 구속됐을 정도... 27년 만에 무삭제 개봉되는 '전설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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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27년 만에 무삭제로 돌아온다
회초리, 철사, 대걸레 자루. 세기말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영화 속 소품들이다. 중년 조각가와 열여덟 살 여고생이 여관방을 전전하며 서로의 몸에 매질을 하는 이야기를 두고 나라가 둘로 갈라졌다. “음란물이냐.” “아니다. 예술이다.” 원작 소설을 쓴 작가는 법정에서 구속됐다. 영화는 심의 문턱에서 두 번이나 돌려보내졌다. 결국 일부 장면을 잘라내고서야 극장에 걸릴 수 있었다.
장선우 감독의 영화 '거짓말'이 잘려 나갔던 장면을 되살려 다시 관객 앞에 선다. 배급사 영화로운형제는 '거짓말: 4K 무삭제 완전판'을 오는 11일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상영 시간은 112분이다. 무삭제판이 국내 극장에서 상영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지 27년 만이다.

원작 작가는 음란문서 혐의로 실형
'거짓말'의 수난은 원작에서 시작됐다. 원작은 장정일 작가가 1996년 펴낸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다. 서른여덟 살 조각가 제이와 고교 3학년 와이의 가학·피학적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이 소설은 출간 직후 외설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은 이듬해 장정일 작가를 음란문서 제조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장정일 작가를 법정 구속했다. 소설에 쓴 내용 때문에 작가가 실형을 받고 수감된 것이다.
장정일 작가는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그러나 유죄라는 판단 자체는 뒤집히지 않았다. 대법원은 2000년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문학성 내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고,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있어도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예술적 가치가 있더라도 음란물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판결은 고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의 '즐거운 사라' 사건과 함께 한국 문학의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베니스 초청작, 국내선 '등급 보류'
장선우 감독은 이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1999년 제5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 영화가 이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른 건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이후 두 번째였다. 세계 3대 영화제가 경쟁작으로 불러들였지만 국내 사정은 정반대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그해 여름 이 영화에 등급 보류 판정을 내렸다. 제작사 신씨네가 재심을 신청했지만 영등위는 또다시 보류를 결정했다. 등급을 받지 못한 영화는 극장에 걸 수 없었다. 같은 해 바티칸 교황청까지 영화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면서 논란은 국경을 넘었다.

극장 대신 영화제가 먼저 문을 열었다.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는 등급 보류 상태인 '거짓말'을 18세 이상 관객에게만 상영했다. 등급을 받지 못한 영화가 국내 영화제에서 상영된 건 처음이었다. 예매가 시작되자 표는 20분 만에 동났다. 665석 상영관에 900명 가까운 관객이 몰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신씨네는 결국 문제가 된 장면 일부를 덜어낸 편집본을 다시 심의에 넣었다. 영화는 그제야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2000년 1월 극장에 걸린 '거짓말'은 원래 모습이 아니었다. 그사이 무삭제 원본을 복제한 불법 비디오와 CD가 이미 시중에 나돌았다. 극장에서 잘린 장면을 뒷골목에서는 볼 수 있었던 셈이다.
소설은 유죄, 영화는 무혐의 처분
개봉 뒤에도 소란은 이어졌다. 음란폭력성조장매체대책시민협의회는 제작사 신씨네와 단성사 등 상영 극장주들을 음화 반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지검은 같은 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영화가 원작 소설보다 표현 수위가 완화돼 처벌할 만큼의 음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검찰은 형사 처벌보다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는 취지도 밝혔다. 같은 이야기를 두고 소설에는 유죄 판결이, 영화에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논란은 오히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거짓말'은 서울에서만 3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래서 영화는 대체 얼마나 야했나
이 영화는 대체 얼마나 야했을까. 영화는 와이가 수화기 너머로 처음 들은 제이의 목소리에 빠져드는 데서 출발한다. 두 사람은 한 달 동안 전화로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다 처음 만난다. 그 뒤로는 여관방 장면이 거듭된다. 두 배우의 알몸이 수시로 화면을 채운다.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때리던 장난은 회초리와 철사, 대걸레 자루를 동원한 매질로 번진다. 때리던 제이는 나중엔 와이에게 매를 맞는 쪽으로 처지가 뒤바뀐다. 중년 기혼 남성과 여고생의 관계, 노골적인 노출, 가학적 성행위까지 당시 한국 상업영화가 금기로 여기던 요소가 한꺼번에 담겼다.
그러나 지금의 눈으로 보면 '이 정도로 그 난리가 났나' 싶은 대목이 많다. 조명은 거의 쓰지 않았다. 카메라는 대부분 손에 들려 인물을 쫓는다. 화면은 거칠고 투박하다. 제이 역의 이상현은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조각가였다. 와이 역의 김태연도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인이었다. 대사는 국어책을 읽듯 어색하다. 관능적이라기보다 차라리 건조하다. 매질 장면 역시 성적 흥분보다 학교나 군대의 체벌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이 많다. 야한 장면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다가 실소를 터뜨린 관객도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인터넷에서 성인물을 클릭 몇 번이면 볼 수 있는 지금과 달리 1990년대 말 한국은 성 표현에 유난히 엄격했다. 가정마다 초고속 인터넷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이 정도 수위의 영화가 극장 스크린에 걸린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사건이었다.
"치유하는 포르노"… 엇갈린 평가
장선우 감독은 베니스에서 자신의 영화를 "마음의 병을 치유해주는 포르노"라고 소개했다. 스스로 포르노라는 말을 꺼내 든 것이다. 당시 베니스 현지에서 영화를 본 서울신문 기자는 이 작품을 '새도매저키즘의 성적 허무주의'로 규정했다. 채워지지 않는 성적 갈증을 씻어내는 '씻김굿'에 가깝다는 해석도 내놓았다. 현지 영화인들 사이에선 신인 연기상 수상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실제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형식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는 극 중간중간에 배우들의 인터뷰를 끼워 넣는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일부러 흐리는 방식이다. 원작 소설 속 인물의 심리 묘사는 대부분 덜어냈다. 성애 장면을 제외하면 서사가 앙상하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대중에게는 '괴작'으로 통하기도 했다.
평단의 시선은 달랐다. 기존 한국 영화 문법에서 벗어난 실험적 연출을 높이 사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영화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 전 도쿄대 총장은 이 영화를 '동시대적인 생생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음악은 지금도 호평을 받는다. 전자음악가 달파란이 음악을 맡았다. '뽕짝 메들리'로 유명한 가수 이박사도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잘렸던 장면, 27년 만에 그대로 상영
'거짓말'이 발목을 잡혔던 등급 보류 제도는 2001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아 사라졌다. 이후 한국 영화의 성 표현은 눈에 띄게 과감해졌다.
이번 완전판은 한국영상자료원이 4K로 복원한 영상을 바탕으로 해외 배급 판본을 활용해 완성했다. 2000년 국내 개봉 때 잘려 나갔던 장면이 모두 들어갔다. 27년 전 두 차례나 등급을 받지 못했던 장면들이 이번에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그대로 관객과 만난다. 배급사는 재개봉에 맞춰 "진실과 기만 사이, 쾌락과 파멸을 오가는 인간 욕망의 기록. 당신은 이 낯선 욕망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가"라는 문구를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