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로드먼의 '친구' 착시효과
2014-01-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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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부터 리설주와 김정은, 그리고 로드먼 / 이하 사진=바이두닷컴] '더 나쁠 게 없
'더 나쁠 게 없는' 두 사람의 선택
로드먼의 북한 방문에 대해 작년 3월 당시 미국 뉴스위크는 "로드먼이 한 일 중 가장 똑똑한 일"이라며 커버스토리로 다뤘었다. 그만큼 로드먼이 자신의 삶에서 일관되게 멍청했다는 걸 이 매체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멍청하기만 했던 로드먼이 이번엔 정말 잘 했을까? 제법 상황과 때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수백만 달러 재산을 다 탕진하고 미국 스포츠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로드먼과 핵실험에 이은 고모부 장성택 처형으로 지구촌 외톨이 독재자 길에 막 들어선 김정은의 만남. '더 나쁠 게 없는' 선택이었다.
계산은 쉽게 섰을 것이다. 시선을 끄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겐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사실 로드먼은 경제적, 사회적 파산 직후 김정은을 '친구'로 택해 마지막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영화에 출연하고 여장(女裝)까지 해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대중들이었다. 그런 로드먼이 이번 평양에서 제대로 스포트를 받았다. 김정은 역시 막혔던 숨통이 뚫리는 듯한 상쾌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 생일 축가를 부르는 로드먼]
더 기대할 건 없는 도박
어차피 기인(奇人)인 데다 충동적인 로드먼은 더 잃을 게 없고, 제법 쥘만한 평양무대 출연(?)료를 챙기는 데서 만족해야 할 듯하다. 자신의 배역이 더이상 국제시장에서 흥행이 어려운 김정은이란 이유다. 그래도 로드먼은 이번에 양주, 크리스탈 등 1만 달러에 달하는 김정은 생일 선물도 준비했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무대는 짧게만 보자면 괜찮은 내용이다. 우선 국면전환을 하기 위한 국제사회를 향한 제스처로서 그렇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대가 로드먼이라는 이유로 역시 내용은 허전할 뿐이다.
지난 번 평양 방문 직후엔 '김정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전화를 기다린다'며 평양의 메신저 역할을 자처하던 로드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바마가 지금 로드먼 말을 듣고 평양에 전화를 걸 분위기가 아니란 것조차 로드먼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엔 단지 1회용 이벤트로 만족할 분위기다.
"두 사람, 잃은 건 정말 없을까?"
이런 몇 가지 점에서 보자면 이번 두 사람의 만남은 본전보다는 남는 장사처럼 보인다. 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걸 두 사람은 간과하고 있다.
우선 로드먼은 이번 방북으로 인해 북한말고는 나머지 자신의 삶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더 잃을 게 없고, 자살 소동까지 벌였던 그인 지라 '아니면 말고' 식일 수도 있지만, 그의 나이는 아직 52살이다. '쥐구멍에 볕 든 꼴'이라는 비유는 안 맞다. 볓 든 쥐구멍 출구가 더 좁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지금 앞으로 얻고, 뒤로 크게 밑지는 걸 알지 못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로드먼으로 인해 한 순간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철천지 '원쑤'의 나라에서 온 이상한 농구선수 때문이다. '미제를 까부수자'라던 구호를 어제도 오늘도 외치던 그들에게 코, 입에 피어싱을 한 괴상한 미국인이 어떻게 비칠 것이며, 생일날 그와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원수' 김정은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을 가질까, 김정은이 깊이 고려하지 않은 변수다. '원쑤와 원수'의 조합은 맞지 않다.
이러한 김정은의 무리수는 '시진핑이나 오바마가 놀아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가 논평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두 사람은 외로움 때문에 착시효과에 따른 절박한 우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더 오래 평양에 갇힐 지, 그것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