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철 역사 '부여에서 포스코까지'
2014-02-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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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용광로 / 사진=연합뉴스] 인류역사의 원동력 - '철(鐵)'기술기원전 2000년

[포스코 용광로 / 사진=연합뉴스]
인류역사의 원동력 - '철(鐵)'기술
기원전 2000년경 인류가 발견한 철(Fe)은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군사, 경제, 생활 전반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물질이었다.
지구 총 중량의 34.8%를 차지한다는 철. 철은 라틴어 'Ferrum'에서 딴 Fe를 원소기호로 쓰지만, 정작 Ferrum이 어떤 의미인 지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주기율표 8족 4주기에 속하는 철족 원소로 원소 기호 Fe, 원자량 55.845g/mol, 녹는점 1538℃, 끓는점 2862℃, 밀도 7.874g/cm3 이다. 사진은 세계 철광석의 40% 이상을 생산하는 최대 철광석 매장지인 호주 서부 필바라 지역 / 사진=로이터]
철은 전쟁터에서는 무기가 되고, 농업에서는 도구가, 생활에서는 교통수단과 빌딩을 짓는 핵심소재가 됐다. 이는 산업혁명을 일으킨 동력원이 되기도 하고, 철제 농기구 발달로 농업 경영자가 모계 중심에서 부계중심으로 옮겨 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철은 또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 제련기술의 패권을 쥔 자의 손에 패권을 쥐어주는 냉혹한 국가체제 경쟁을 가속화했다. 그러한 철 기술경쟁 속에서 우리 한민족이 걸어 온 길을 더듬어 보자.
한민족 철의 기원, 삼한과 부여, 고구려
고구려인들은 철을 다루는 장인을 농사 신, 달의 신, 제륜신(수레바퀴 신) 등과 함께 '야철신(冶鐵神)'으로 신격화했다. 이는 고구려 벽화들에서 잘 나타난다.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시에 있는 오회분 4호묘의 '야철신(冶鐵神)' 벽화. 고구려인들은 철을 다루는 신의 모습을 무덤 벽화에 그려 넣을 정도로 철을 중시했다. / 사진=네이버지식백과]
그들에게 철을 잘 다루는 일은 생존을 보장하는 첩경이었다. 그 결과, 고구려인들은 당대 최고의 야철기술을 터득함으로써 동아시아 최고의 강자로 군림했다.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 역시 철(鐵)에 의해 좌우되어 왔다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한민족 철기 역사는 변한을 중심으로 한 삼한시대와 함께 고구려 직전 BC. 2세기에 세워진 부족국가 부여(夫餘)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부여를 세운 퉁구스계 부여족은 인류 최초로 철기문화를 형성한 알타이 유목민인 파지리크인들과 친연관계가 멀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인들에 대해 '오랜 옛날 다른 곳에서 옮겨온 사람들의 후예"라 기록했다. 또 '위략(魏略)'에는 '부여가 북쪽 탁리국에서 이주해 온 시조 동명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한다. 현 중국 지린성 쑹화(松花)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의 철기문화는 기원전 2세기~기원후 3세기까지 형성된 이른바 포자연(泡子沿)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철제 농기구 등으로 입증됐다.
그 연원을 차치하더라도 부여인들의 초기 철기문화 개척은 고구려를 통해 활짝 꽃 핀다. 화살촉, 창, 철갑옷 등 유물에서 증명된 고구려 제철기술은 경쟁국인 한나라나 수나라, 당나라를 훨씬 뛰어넘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을 강성하게 한 힘의 원천이었다.
만주와 한반도 지역 철기문화는 현 네이멍구 서쪽에 위치했던 연(燕)나라를 거쳐 전파돼 중국보다 늦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하지만 고구려 개마무사의 갑옷과 방패 등을 볼 때 제철기술만큼은 한나라와 수,당을 압도했다는 증거가 넘쳐난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