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반도 둘러싼 '크림 전쟁' 알아보니

2014-03-0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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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위키피디아]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을 러시아 군대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러시아 의회가 이 지역에 대한 군사개입을 승인한 가운데 과거 '크림 전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크림 전쟁은 1853년 10월부터 1856년 2월까지 계속된 러시아 제국과 연합국과의 전쟁이다.

 

당시 이 전쟁의 발단은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 제국 내 그리스 정교회 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배경은 팔레스타인의 성지를 둘러싼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권한 다툼이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따라서 연합군으로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 통일전 사르데냐 왕국, 오스만 투르크가  참전했다. 사실 사르데냐 왕국은 크림 반도에 이권이나, 러시아 제국과 특별히 대립 관계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 통일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을 계산으로 참전했다.

 

이 덕에 오스만 투르크는 앞서 18세기에 벌어진 제 1ㆍ 2차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다가 크림 전쟁에서는 연합국의 지원으로 유일하게 러시아 제국에게 이겼다.

 

사실 이 전쟁이 '크림 전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전투가 대부분 크림 반도에서 일어나서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알마 강 전투, 발라클라바 전투, 인케르만 전투, 세바스토폴 포위전 등 크림 전쟁에서 벌어진 4번의 전투에서 완패했다.

이 전쟁으로 러시아는 50만이 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오스만이 40만, 프랑스가 10만, 영국이 2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 수치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기록된다.

 

결국 이 전쟁은 1856년의 파리 조약으로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이 조약의 결과로 러시아 제국은 다뉴브 하구와 흑해 인근에서 영향력을 잃게 되었고, 이후 흑해는 모든 국가에 대해 군함 통과와 무장이 제한돼 중립이 선언됐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근대 전투 의료체계가 확립되는데, 당시 영국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과 38명의 영국 성공회 수녀 출신 간호사들이 활약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나일팅게일의 선서'를 하게 됐으며, 군인들이 이전보다 개선된 의료서비스로 군인들이 병이나 부상으로 죽는 비율이 낮아지게 됐다.

한편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은 원래 러시아 영토였다가 소비에트 연방(구 소련) 후르시초프 서기장 시대인 1954년 우크라이나에 편입됐다. 

[부상 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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