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 영아 살해 사건 속 '혈액형의 비밀'
2015-07-03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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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com 우리가 혈액형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상식에

우리가 혈액형에 대해 알고 있는 상식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상식에 대한 맹신은 더욱 무섭다.
지난달 25일 MBC '경찰청사람들2015'는 2011년 충청도에서 발생한 친모 영아 살해 사건을 소개했다. (바로가기)
발단은 '내 자식은 절대 O형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남편의 의심과 분노였다.
AB형 남편 ㄱ씨와 O형 아내 ㄴ씨 사이에서 O형 아이가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으론 AB형과 O형 사이에서 태어날 수 있는 아기의 혈액형은 A형 또는 B형뿐이다.
ㄱ씨도 그 상식에 의존해 아기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단정지었고, 바람핀 것이 아니냐며 아내를 강하게 의심했다. 의사가 O형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아기를 빨리 입양 보내라. 안 보내면 우리 가족도 죽고 아기도 죽고 네 부모도 죽일거다"
이 말을 반복하며 ㄱ씨는 아내 ㄴ씨를 협박했다. 두려움에 떨던 ㄴ씨는 아이만 없다면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ㄴ씨는 집에서 아기를 살해한 후 재래시장 화장실에 유기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태어난 지 15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친모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ㄱ씨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소위 '혈액형 유전 법칙'으로 외우고 있는 내용이 틀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AB형과 O형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가 A형, B형뿐만 아니라 O형, AB형으로도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AB형이 시스-AB(Cis-AB)형일 경우에 그렇다.

서울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성문우 교수에게 그간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스 AB형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 교수는 "1929년 O형과 AB형인 부모 사이에서 O형 자녀가 태어나는 특이한 유전 현상이 처음 보고됐다"며 "국내에서는 1968년 처음으로 발견됐으며 현재까지 수백 가족이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부모가 시스 AB형을 가졌을 경우 자녀가 이를 물려받을 확률은 25%다"라며 "가족중에 시스-AB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나머지 가족들도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시스 AB형은 적혈구 수혈 시 혈청학적 표현형에 따라 달리 수혈해야 한다"며 "수혈 전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성 교수는 시스 AB형 외에도 자신과 가족의 혈액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A형과 B형의 아형(공유하는 성질을 지니면서 일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여러 형질)도 혈액형 검사 시 결과 해석에 혼동이 있을 수 있다"며 "이때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부모 자식 간의 유전 양상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특히 신생아는 ABO 혈액형 항원이 어른보다 덜 발달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시스 AB형에 관한 일문 일답이다. 서울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김형석, 성문우, 한규섭 교수가 공동으로 답변에 응했다.
-시스 AB형은 언제 처음 발견됐나
▶ 1929년 코소비치(Kossovitch)가 O형과 AB형의 부모 사이에서 O형의 자녀가 태어난 특이한 유전현상을 처음 보고했고, 1965년에 야마구치(Yamaguchi)가 이러한 유전양상을 정립해 시스-AB형이라고 명명했다.
국내 사례는 1968년 마드센(Madsen)이 첫 증례를 보고했으며 현재까지 수백 가족이 보고됐다.
-우리나라에서 시스 AB형인 사람들이 몇 명쯤 될까
▶ 전세계적으로 시스-AB 혈액형의 정확한 빈도는 조사된 바 없지만 극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서남부 호남지역과 일본 큐슈 지방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보고됐다.
2003년 광주·전남 지역 헌혈자 1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연구에서 시스-AB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0.0331%였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CIS AB형 일 때, 자녀가 물려받을 확률은?
▶ 시스-AB 유전자는 A와 B 유전자의 정보가 분리되지 않은 채 유전되므로 부모가 시스-AB를 가진 경우 자녀가 이를 물려받을 확률은 25%이다.
가족 중에 시스-AB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나머지 가족들은 검사를 통해 혈액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시스 AB형이 수혈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 시스-AB 혈액형은 적혈구 수혈 시 혈청학적 표현형에 따라 달리 수혈해야 하므로 주의를 요한다. 수혈 전 정확한 검사를 통해 수혈의학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야 한다.
-일반 AB형과 시스-AB형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ABO 유전자는 9번 염색체에 존재한다. 일반적 AB형은 한 쌍의 9번 상염색체에 A 유전자와 B 유전자가 각각 존재한다.
하지만 Cis-AB형의 경우 유전자변이로 인해 A 유전자와 B 유전자의 정보가 혼재되어 cis-AB 유전자의 형태로 하나의 9번 상염색체 안에 모두 담겨 있다.
또한 CIS-AB형은 ABO 혈액형 검사 시 약한 반응을 일으켜 결과 해석에 혼동을 줄 수 있다. 확진을 위해서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cis-AB 유전자의 유무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시스 AB형은 자신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지내는 경우도 많을 것 같다. 혹시 시스 AB형 외에도 자신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나
▶유전자 변이로 인해 A 항원과 B 항원이 개별적으로 약하게 발현되는 A형과 B형의 아형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로 ABO 혈액형 검사 시 결과 해석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부모자식 간에 상식적인 유전 양상을 벗어나는 경우도 많다.
이때 불필요한 오해로 갈등을 유발할 수 있으나 섣불리 단정 짓지 말고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또한 출생 직후 신생아기에는 ABO 혈액형 항원이 성인에 비해 덜 발달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하며, 추적 검사를 통해 결과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