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지면에 섹스 칼럼을 실은 지 언 6년. 젊은 청춘들 혹은 여성들의 은밀한 상담자가 되어
현정
지면에 섹스 칼럼을 실은 지 언 6년. 젊은 청춘들 혹은 여성들의 은밀한 상담자가 되어준 '언니'
패션지 코스모폴리탄과 대학 매체에 연애와 섹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섹스칼럼니스트 현정(34) 씨를 인터뷰했다.
'여성'이 '섹스'에 대해 말한다? 뭔가 미지의 세계를 경험했을 것이란 환상, 어쩐지 모든 연애를 술술 풀어갈 것 같은 '섹스칼럼니스트'
이에 대해 현정 씨는 "이왕 쓰는 글이라면 섹시하게 읽히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섹스와 연애에 대해 집중했을 뿐 "나도 못하는 것 나도 어려운 일을 마치 레벨 업한 언니모드로 쓰고 싶진 않다"라고 말했다.
또 "내면의 욕구를 알아나가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관계에 대한 성찰을 돕는 것이 '섹스칼럼'이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현정 씨는 섹스라이프가 진화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여성의 성욕에 대한 각종 오해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성욕을 긍정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고민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섹스칼럼니스트가 무엇인지 또 그들에 대한 오해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 자신에 대해 소개해달라. 또 현재 뭐하고 지내나
섹스칼럼니스트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라는 책을 썼다. 코스모폴리탄과 각종 대학 매체에 연애와 섹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현재는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세 번째 책은 섹스와 자존감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각종 섹스 상황에서 겪게 되는 여성의 감정에 대해 다룬다는 점에서 앞선 책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좀 더 굳건히 자신에게 몰입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으로서의 섹스를 제안하고 있다.
2. 2009년 남성 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현정 씨 글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섹스 칼럼을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부터 ‘섹스’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 마음 먹은 것은 아니었다. 치유와 동시에 나를 직면해야만 하는 도구가 글이었다. 그렇기에 연애를 하는 동안 ‘나와 그의 문제’를 글로 풀어내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채로 터져 나오는 것을 쏟아내기만 했다. 글을 다루는 재주가 아예 없진 않았던 덕분에 흥미롭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글을 올려둔 블로그를 눈 여겨 봐주신 에디터의 청탁을 받아 지면에 ‘섹스칼럼니스트 현정’이라고 새겨지게 됐다. 이를 시작으로 다른 매체들의 청탁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고 있다.
손쉽게 포르노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텍스트로 섹스를 말하는 것의 효용에 대해 누가 물은 적이 있다. 섹스에 대한 글이라면 읽는 이의 성적 충동을 일으키고 흥분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 같다. 섹스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꼭 그런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이왕 쓰는 글이라면 섹시하게 읽혀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섹스칼럼이 글쓴이의 특이하고 일탈적인 성적 경험을 과시하는 것에서만 끝난다면 여타의 자극적인 성적 콘텐츠에 밀릴 수밖에 없다.
'섹스칼럼'은 각자의 성적 태도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규제되고 억압되는 것이 아닌, 특히 여성에게 있어서는 죄책감을 안겨주는 행위나 수동적 태도로 임해야 하는 섹스가 아니라 내면의 욕구를 알아나가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탐구와 관계에 대한 성찰을 돕는 것이 '섹스칼럼'이어야 하지 않을까.
4.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와 현재, '섹스 칼럼'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인식차가 있다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앞서 ‘섹스’에 방점이 먼저 찍히는 경우가 많아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들은 존재한다. 케이블이긴 해도 방송 매체에서 성에 대한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곤 했지만 그럼에도 ‘여성’이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된 편견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5. 섹스칼럼니스트이기 때문에 겪고 있는 특별한 상황들
기대하고 물어본 것일테지만 '섹스앤더시티'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진 않는다. 섹스칼럼니스트라는 유혹적인 타이틀을 이용해 남자를 후리고 다니지도 않고. 파티걸도 아니다. 술자리에서 주제가 섹스로 이어지곤 하지만 음담패설이나 하자고 모여서 수다 떠는 모임에도 자리를 오래 지키는 편은 아니다.
'섹스'에 대해 쓰고 있을 뿐 글 쓰는 사람들의 성향과 비슷하다. 곧잘 예민해지기 때문에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을 때는 조용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6. 젊은이들의 연애, 섹스에 대한 고민을 듣고 조언해준다고 했다. 요즘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왜 우리의 섹스라이프는 진화하지 않는 것일까? 요즘 어린 친구들의 섹스 고민을 들으면 십여 년 전에 나와 내 친구들이 하던 고민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성교육은 어쩜 이토록 정체되어 있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섹스를 하는 연령대는 점점 어려지는데 어찌하여 피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없는 것인지, 남자친구가 콘돔을 쓰기 싫어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질문은 연재하는 대학 매체가 바뀔 때마다, 강연을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온다.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올바른 섹스와 관계 맺음에 있어서는 기초부터 잘못된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성의 성욕에 대한 각종 오해들. 여성 스스로 자신의 성욕을 긍정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고민을 자주 받곤 한다. 성적 욕구를 남자친구에게 드러내면 헤프고 쉬운 여자로 여겨질까 봐 걱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는 섹스를 감내하는 일에 대한 상담이 많다.
기본적으로 내게 섹스는 안전함이 바탕이 된 상태에서 최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다.섹스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두 요건이 충족되어야 좋은 섹스가 될 수 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요구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7. 본인만의 칼럼 특징이 있다면
어릴 때 읽었던 책에서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곧잘 성급하게 감정을 일으키곤 하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꽤나 인상 깊게 박힌 문장이라 내 글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관능적인 묘사가 필요하고 고조되는 느낌을 줘야 할 때 담담하게 풀어내는 것 같다. 조언을 하는 류의 글에선 톡톡 튀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쓸 땐 그런 점이 도드라지지 않나 싶다.
8.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부분은?
아무래도 직접적인 것은 나의 연애일 것이다. 나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나도 어려운 일을 마치 레벨 업한 언니모드로 글을 쓰고 싶진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연애를 하면서 취약한 점을 직면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다. 그런 것들이 글의 소재가 될 때가 많다.
에로틱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면 깊이 내려가서 글 쓰기 방식에 대해서 자극을 받고 싶을 때는 소설가 아니 에르노, 고이케 마리코, 기리노 나쓰오, 에리카 종의 글을 읽곤 한다.
9. 현정 씨가 생각하는 섹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
첫 번째는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여전히 품게 되지만 사랑과 연애, 섹스는 모두 별개의 일이다. 그럼에도 뒤죽박죽 뒤섞인 감정으로 이 일들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그 개별성을 헷갈리지 않는다면 섹스로 인한 감정적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상처받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여성의 성적 욕망에 대한 것이다. 사회 문화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억압받을 뿐이지 여성도 남성과 다름없이 성적 존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섹스에 대한 주체적인 욕구가 있고 남성이 섹스를 제안할 때 거절할 수도 있다. 그 단순하고도 명확한 사실이 왜 받아들여지지 않고 여성의 성적 태도가 왜곡돼야 하는지 모르겠다.
10. 트위터(@F_ckingSpecial)에 원고료에 이야기가 더러 있더라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전해달라
원고 청탁을 받을 때 청탁서를 제대로 못 쓰는 매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게 안타깝다. 청탁을 요구하는 메일을 받으면 분량과 마감은 언급하면서 원고료를 한 번에 밝히는 매체가 손에 꼽힌다.
글을 싣는 매체가 글 쓰는 사람의 가치,글 값에 대해 인식이 박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원고료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원고지 1매당 1만 원 이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값이라는 것도 내가 학부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시절에도 그 정도 값이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십여 년이 지난 지금, 새우깡도 2배나 오른 지금에도 글 값은 오르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게 일이니 작가에게 손쉬운 것 아니냐 생각하는데 작가에게 글을 쓰는 일이 엄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지나치게 희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 입장에 대해 토로했는데 다른 작가님들의 공감을 받아서 더욱 슬펐다. 나만 겪는 치욕이 아니라 글 쓰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제 글 값을 못 받는 상황이라니. 그런 점을 매체에 전달했고 그들이 쉽게 생각하고 간과한 글의 가치라는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받았다.
11. 남성 섹스칼럼니스트는 왜 드문가
'섹스에 대해서 글을 잘 쓰는 남자는 왜 드물까' 저도 늘 생각해보곤 하는 문제인데, 남자들은 성에 대해 무수히 말들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욕망 그 자체를 이야기하거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를 이야기하지 자신의 성적 경험에 대한 진정한 성찰은 정말이지 보기가 드문 것 같다.
성적 주체화가 여자보다 어렵지 않은데도 그러한 점이 항상 의문이다. 정확한 답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자기반성이 잘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섹스라는 것에 한정 지어 보면 뻔뻔한 남자들이 많은 게 아닌가 한다.
12. "나도 섹스칼럼 써보겠다"라는 이들에게
자신의 섹스라이프에 대해서 글을 쓰고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는 건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섹스칼럼'은 글을 통한 자기 과시나 자아도취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것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건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하루키가 말한 대로 "자기표현이 정신의 해방에 기여한다는 것은 미신이며, 호의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신화이다. 적어도 문장에 의한 자기표현은 누구의 정신도 해방시키지 못한다. 만일 그러한 목적을 위해 자기표현을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런 생각을 단념하는 게 좋다. 자기표현은 정신을 세분화시킬 뿐이며, 그것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만일 뭔가에 도달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사람은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쓰는 것 자체에는 효용도 없고, 그에 따른 구원도 없다."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건 직접 덤벼보면 알겠지만, 결코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닌데 섹스 역시 그러하다. 섹스를 많이 경험할 만큼 매력적이라서 섹스칼럼니스트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점들을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앞으로 "글과 강연을 통해 20대 친구들의 섹스 라이프에 대한 조언을 이어나가고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책 한 권을 완성할 것"이며 "(세 번째 책을 끝마치면) 그다음 책은 여성의 내밀한 욕망, 그 자체에 대해 파고들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대한민국에서 섹스에 대해 말하고 여성의 삶에 대해 들여다보면 볼수록 페미니스트로서의 자각과 실천도 병행돼야 하는 일 같다"며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게으르지 않게 할 생각이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현정 씨는 '남자친구가 콘돔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라는 문제는 가장 많이 해오는 질문이자 이제 정말이지 답하는 것도 지긋지긋하고 지겨운, 싫은 질문이기도 하다며 "섹스를 하고 싶으면 제발 콘돔 좀 쓰시라! 여성들은 임신의 위험 없이 안전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섹스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라고 제자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