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까지 몇 초에?" 제로백 시험하는 사람들
2015-09-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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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김일창 기자 = "보는 사람의 염통까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김일창 기자 = "보는 사람의 염통까지 쫄깃쫄깃하다. 체감속도 200㎞/h는 가뿐히 넘겨 주는 것 같다."
6000여만원에 달하는 고급 외제차가 경기도 파주 인근에 위치한 편도 4차선 고속도로 갓길에 멈춰 있다. 한 손에는 운전대, 다른 한 손에는 카메라를 쥔 운전자는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가속페달을 힘껏 내밟는다.
신나는 힙합 음악으로 가득 찬 외제차는 가속페달에 힘입어 불과 몇초 만에 차량 수십대를 추월한다. 시속 100㎞/h 도달까지 채 10초가 걸리지 않은 이 차량은 순식간에 시속 220㎞/h를 돌파했다.
운전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같은 모습이 담긴 영상을 올리며 "자동차 개조를 통해 목숨을 건 과속을 하고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이는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제로백'이다. '제로백'이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h까지 얼마나 빨리 도달하는지를 시간으로 나타낸 것이다. 제로백이 짧을 수록 엔진출력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제로백'은 연비, 디자인 등과 함께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차량을 선택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지만 최근 이를 장난삼아 시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본인의 생명은 물로 타인의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제로백'으로 인해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제로백을 시험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와 관련한 영상은 온라인 자동차 관련 사이트 혹은 영상 업로드 사이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자동차시험 전용도로가 아닌 다른 차량들이 함께 달리는 일반 국도 혹은 고속도로에서 제로백을 시험하고 있었다.
한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 온 영상 속 운전자는 "제로백을 시험하겠습니다. 수동모드에 놓고 할겁니다. 몇초나 걸리는지 보겠습니다"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일반 도로에서 비상등을 켠 채로 있던 운전자는 옆 차선에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계기판 분당회전수(RPM)가 순식간에 7000을 가리키더니 10초가 채 되지 않아 속도가 100km/h를 돌파했다.
또 다른 운전자는 배기량 1000cc의 경차를 몰고 편도 2차선 국도 갓길에서 '제로백'을 시험했다. 틈틈이 주변을 엿보던 운전자는 몇 대의 차들이 지나가자 슬그머니 2차선으로 진출, 도로 한복판에서 차량을 멈추더니 "제로백을 시험하겠다"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엔진 출력이 낮은 차인만큼 치고 나가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지만 15초가 지나자 시속 100km/h를 훌쩍 넘어섰고, 운전자는 멈추지 않고 더 속도를 내며 차를 몰았다.
한 겨울 눈이 쌓인 도로에서 '제로백'을 시험하는 운전자도 있었다. 한 중고차매매 사이트에 올라온 영상에서 운전자는 소형차를 몰고 제로백을 시험했다. 한 손에 카메라를 들고 계기판을 집중적으로 찍던 운전자는 시속 100㎞/h에도달하자 카메라를 창밖으로 돌렸다.
그러나 이같은 위험천만한 영상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동조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제로백 영상에 "이런 시승기는 어떤 경로로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관심이 간다"는 댓글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 역시 "보는 사람의 염통까지 쫄깃 쫄깃하다. 체감 속도 200㎞/h는 가뿐히 넘겨 주는 것 같다", "운전자 전혀 미동도 없다. 저 속도면 살짝만 차가 흔들려도 바로 '목숨 아웃'일 텐데 대단하다"라며 흥미로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이같은 영상에 대해 하나같이 "위험하다",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영상을 본 김모(27·여)씨는 "차량 통행이 적은 도로나 눈길을 저렇게 달리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며 "경찰 단속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비상식정인 행동에 대해 어떻게 한국사람들은 감탄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반도로에서 저런 시험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해 우려된다"는 댓글을 달았다.
또 다른 네티즌도 "저런 정신나간 짓은 하지말라"며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영상을 찍어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일반도로에서 '제로백'의 위험성에 관한 연구나 사고 사례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제로백의 위험성은 알고있다"면서도 "정지상태에서 급가속하는 것에 대한 직접적 입증이 어려워 단속이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속도위반 외에 '제로백'을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며 "급가속으로 인한 사고 위험성이 큰 만큼 운전자들의 시험 자제가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교통안전공단 역시 '제로백'이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나 사례에 대한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제로백의 위험성에 관한 실험은 아직까지 없다"면서도 "급가속인만큼 시속 100km/h로 일정하게 주행하는 것보다 사고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원인이 꼭 '제로백'으로 인한 것인지 규명하기 어렵다"며 "대부분 과속으로 집계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시속 100km/h의 속도로 주행하다가 사고가 나면 상처를 입을 확률이 시속 56km의 3%보다 33배 높은 99.9%라고 밝혔다.
또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동일한 속도로 주행할 경우 운전자는 축구장 길이의 절반에 해당하는 55m 거리를 눈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