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동안 아무도 몰랐다' 어느 '50대 주차 알바'의 죽음

2015-12-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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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죽어서 불쌍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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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아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죽어서 불쌍하고 마음이 더 안 좋아."

얼마 전 갑자기 아들을 잃은 김모(77·여)씨는 죽은 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쉰 살이 넘은 아들이지만 부모에게 자식의 죽음은 비극 그 자체다. 김씨는 "돈 없는 엄마라 미안하다"고 돈이 없어 고생만 하다 간 아들을 두고 속상해했다.

김씨의 아들 박모(53)씨는 지난달 14일 아르바이트 도중 갑작스레 쓰러져 숨졌다. 박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예식장에서 주말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날 저녁 8시40분쯤 예식장 지하 1층 주차장에 딸린 화장실로 향하는 박씨의 모습이 주차장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박씨는 그곳에서 쓰러져 숨졌다. 그가 발견된 것은 다음날 오전 6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박씨는 10시간을 꼬박 홀로 쓰러져 있었다. 검안의는 박씨의 사인을 '급성심근경색'으로 추정했다. 박씨의 사망 추정시간은 그날 자정 무렵이었다.

아침에 멀쩡하게 나갔던 아들이 죽어서 돌아왔다는 것은 김씨에게 통탄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김씨는 아들 박씨가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도 몰랐다. 과묵한 박씨는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자신이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알리지도 않았다. 두번의 이혼으로 박씨는 올해 9월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아왔다.

사업실패와 대출 등으로 3000만원이 넘는 빚을 진 박씨는 주중에는 의류유통 일을 해왔지만 그마저도 불경기 등으로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주말에도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로 틈틈이 빚을 갚아나가고자 일을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 용역업체에서 자신을 고용해주지 않을까 걱정한 박씨는 자신이 아닌 동생(47)의 이름으로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마저도 매일 새 계약서를 쓰면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였다.

어렵게 일을 시작한 박씨는 웨딩홀로부터 온갖 푸대접을 당했다. 박씨와 함께 일을 했던 동생은 "형이 회사에서 천한 대접을 받았다"고 분노했다. 박씨는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부터 일했지만 쉬는 시간은 점심을 먹는 고작 10~20분 정도였다고 했다.

화장실 이용조차 차별을 받았다. 박씨는 관리인으로부터 "너희는 손님 보기에 흉하니 가급적 지하 1층 화장실만 이용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동생은 말했다. '가급적'이라고는 했지만 하루하루 계약해서 일을 하는 처지에 관리부장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었다. 박씨의 동생은 "정직원은 자유롭게 화장실을 이용했지만, 파견직원에게만 차별이 있었다"고 밝혔다.

어머니 김씨는 박씨가 열악한 근무환경때문에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한 날 박씨는 비를 많이 맞았다. 유족은 박씨가 일한 주차장이 비를 막지 못하는 철골 구조물로 돼 있는 데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도 없고 휴게시간조차 없어 하루종일 덜덜 떨면서 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회사에서 제공한 기름진 중국음식이 박씨 사망에 결정적인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장실 이용에 대한 차별이나 웨딩홀 측의 미숙한 시설관리도 박씨 사망의 요인이라고 유족들은 주장했다. 김씨는 박씨가 지하 1층이 아닌 지상의 다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좀 더 일찍 구조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 큰 건물에 사람이 쓰러진 것을 10시간 동안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관리인은 왜 순찰을 돌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족은 "예식장과 파견업체는 조문은 커녕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며 "비인간적인 처사"라고 화를 냈다. 박씨의 동생은 "정직원이 아니라 회사에서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족은 산재처리 등을 요구했지만, 예식장 측은 "산재처리는 제1당사자인 파견업체에서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책임을 피했다. 예식장 관계자는 "화장실 이용에 차별을 둔 적 없다"며 "가급적 정직원이나 파견직원 모두 지하 1층 화장실을 쓰라 했다"고 말했다. 해당 파견업체 측과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씨의 사망에 대해 조사한 서울 종로경찰서는 "범죄와 연관됐을 가능성이 없어 보여 박씨의 행적에 대한 추가 조사 후 내사 종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열악한 근무 환경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을 가능성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범죄와 관련성이 없어 보이고 유족도 원하지 않아 부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의학적 소견이 좀 더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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