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 속 태조 왕건 피임 이야기
Google 검색에서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
선호 출처로 추가하면 Google 주요 뉴스에 위키트리 기사가 더 자주 표시됩니다.
곰TV,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태조는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므로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돗자리에 사정했으나 왕후가 즉시 이를 자신의 몸속에 넣었다. 마침내 왕후는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다."
태조 왕건의 큰아들 무의 출생에 관해 '고려사'에 서술된 내용이다. 고려사는 조선 세종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해 1451년 완성된 고려 시대 역사서다.
지난 3일 KBS '역사저널 그날'은 '태조 왕건 29명의 부인을 얻다' 편에서 왕건이 추진했던 동맹 혼인 배경과 왕비들 비화를 알아봤다.
방송은 태조 왕건과 그의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 오 씨와 관련한 은밀한 일화를 전했다.

이하 KBS 1TV '역사저널 그날'
'고려사'에는 "태조는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므로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돗자리에 사정했으나 왕후가 즉시 이를 자신의 몸속에 넣었다. 마침내 왕후는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다"라고 기록된 부분이 있다.



이 서술과 관련해 '역사저널 그날' 패널들은 "점잖은 조선 학자들이 저런 표현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익주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는 "이 이야기에 대한 소문이 있었고, 세종이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역사적 사료로서 고려사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